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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속에서 '국가는 민중의 적'인가.
<리바이어던-국가라는 이름의 괴물> 홉스 지음
 
디지털광진   기사입력  2008/01/31 [17:12]
▲ 심범섭 선생님     © 디지털광진
대선 이후… 글쎄요, 제가 불쑥 ‘아주 위험하고 해로운 사상’이란 걸 이야기하면 “그건 기우야…” 라고 고개를 저을지 모르겠네요. 하여간, 다들 말하는 그 ‘새로운 시대’ 다시 말해서 ‘이명박시대’ 그것이 저에게 떠올리는 것은 ‘공포와 그 유령’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불안이 저를 끌고 간 곳은 역사의 뒤 안, 신과 왕들의 무덤이 음산하게 널려있는 중세 유럽이었습니다.
 
거기서 제가 만난 것은 ‘호비스트’란 잡귀였지요. 지금 그 유령이 서서히 우리 앞으로 다가서고 있습니다. 그래선가요. 대선 이후 이미 우리들의 사고는 그 축이 흔들렸고 생각의 뿌리는 마치 물이 마른 연못의 바닥처럼 쩍쩍 갈라지고 찢어지고 있군요. 무슨 말이냐고요. 아직도 고개가 갸우뚱! 끄덕여지지 않는다면 근래에도 간혹 출몰하던 저 ‘국가보안법’이라는 괴물을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요.
 
하여간, 이 위험한 이야기 ‘리바이어던’의 배경은 중세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로 가자면 일단 그 때 그 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하나씩 들고 다니던 뭐 ‘기독교’라는 손가방 하나쯤은 꼭 챙겨 가야겠군요. 그게 조금 부담스럽다면 뭐 ‘종교’라던가 하는 것도 좋고 그것조차 거북스럽다는 생각이 들면 아예 알갱이는 빼 버리고 ‘신’이나 ‘귀신’ 같은 뭐 그런 껍데기로 대체하셔도 좋겠지요. 왜 그런 준비가 필요하냐고요. 그건 간단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마치 마법사의 거울처럼 입에 달고 다니는 유물론 그것이 또 거기까지 가서 말썽을 일으킬 위험한 물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아니 우리의 ‘새로운 시대’에서 그것이 그렇게 위험한 물질로 ‘국가보안법’이라는 감응장치에 노출돼서 많은 문제를 일으켰던 것처럼 말이지요. 사실 유물론은 중세까지 아주 오랫동안 역사의 골방에 쳐 박혀 있던 잡귀잡신에 불과했던 역사의 폐기물이었지요. 그런데 곳간에 쳐 박혀 있던 보잘것없는 이 놈을 아주 위험하기 짝이 없는 ‘땅 귀신’으로 변화시켜서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사람은 다름아닌 바로 홉스라는 사람이었습니다! . 허기야 그가 보잘것없는 이놈으로 신과 왕을 땅바닥으로 끌어내리고 반대로 땅바닥을 기어다니던 늑대를 끌어 올려 사람으로 만들었으니… 얼마나 놀랬겠어요. 자살한 교수까지 있었다니까요.
 
온통 위엄이 뚝뚝 떨어지는 신의 발 밑에서 세상의 모든 것이 숨조차 제대로 못 쉴 그런 때에 홉스는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고 신의 면전에서 소리쳤답니다. 왕과 왕의 신하들에게 마구 손가락질을 해대면서 ‘신과 왕은 물론 국가는 단지 인간의 욕망에 의해 창조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세상은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 이루어지는 약육강식의 처참한 싸움터일 뿐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인간에 대한 살육은 지극히 정당한 자유이며 권리’이고 이 ‘자연권’은 신성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런데 홉스는 다시 외칩니다. 인간은 위대하다. ‘늑대와 같은 인간들이 ‘계약’에 의해 이 자연권을 포기하고 국가라는 주체를 창조했기 때문이다’라고 선언합니다. 이어서 홉스는 무신론적 입장에서 기존의 지배권력을 향하여 ‘계약에 의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절대군주’가 기존의 ‘신권과 왕권을 리바이던 권력으로 폐기해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지금 우리가 막 우리 역사의 진보를 끝내고 거기서 우리 사회의 보수화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음을 확인한 이 때, 그 앞이 결국은 신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세계화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고, 그 길에서 우리를 비정규직, 부동산, 교육, 사회양극화라는 문제를 통해서 나락으로 내 몰고 있음을 직시 할 때, 이 약육강식이라는 ‘새로운 대자연’이야말로 우리를 홉스가 말하는 ‘늑대’의 본성으로 내 몰아 갈 수밖에 없고 그것은 결국 보수진영이 진보진영을 향해 휘두르는 ‘도덕과 윤리’라는 이름의 ‘리바이어던’ 권력일 수  밖에 없다면, 이제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어떤 계약과 더불어 홉스가 말하는 ‘자연권’에 대하여 ‘우리의 어떤 대답’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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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1/31 [17:12]   ⓒ 디지털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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