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산은 조선시대의 살곶이 목장이었다.
배봉산까지 펼쳐진 중랑천 일대는 한강물이 넘쳐서 농사짓기가 알맞지 않았다.
그래서 나라에서는 아차산에서 배봉산(동대문구 전농동 소재)까지를 말을 키우는 목장으로 사용하였다.
(馬)장안평, 마장동, 양마동 등의 동네이름은 이러한 살곶이 목장에서 유래하였다.
아차산을 타고 오르는 명마를 기다리는 사람들 옛날에는 지금의 아차산, 용마산, 망우산 모두를 아차산이라고 불렀다. 북쪽멀리 상봉동의 봉화산까지도 아차산봉수대라고 하였다. 이렇게 넓고 넓은 자연에서 그대로 놓아서 키우는 말들이야말로 잘 자라서 명마(좋은 말)가 되었다.
그러나 아차산의 정상에 오르는 명마는 없었다. 워낙 아차산은 바위산이라 말들이 싫어할 뿐만 아니라 잘못 오르다가 발목이라도 다치면 쓸모가 없어지므로 죽이는 수밖에는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안되는 일을 되게 할 수 있는 기적을 사람들은 바랬다. 그래서 언젠가는 아차산의 바위를 타고 오르는 명마가 나오기를 기대하였다.
바위로 덮힌 아차산을 오르는 명마가 나타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그러한 명마를 탈 수 있는 영웅이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전설의 홍길동이가 그러하였고, 양주골의 임꺽정이가 나타나서 불쌍한 백성들을 돌보아 주었듯이 온갖 고난을 겪었던 백성들은 명마를 타고 나쁜 탐관오리들을 혼내줄 영웅이 태어나기를 고대하였다.
부지런하고 착한 부부. 아이가 없어 매일같이 치성드려 아차산 서쪽 기슭에 젊은 농부 부부가 살고 있었다. 부지런하고 마음이 착해서 살림도 넉넉하였다. 하지만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아차산의 바위 봉우리를 바라보면서 매일 빌었다.
아차산 신령님, 아차산 신령님, 아차산 바위처럼 우직한 아들 하나만 우리부부에게 태어나게 하여 주십시오. 비나이다. 비나이다. 새벽이나 한밤중에도 거르는 날이 없이 빌었다.
별들이 총총이 빛나는 가을날 밤이었다.
그날따라 둥근 보름달이 아차산 너머로 올라섰다. 정말로 달덩이 같은 보름달이었다. 달덩이 같은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젊은 부부는 정성을 다하여 빌었다.
아차산에 걸린 보름달을 반기듯이 젊은 부부의 초가지붕에도 잘 익은 박들이 달님처럼 빛났다. 깨끗한 물을 떠놓은 정한수에도 보름달이 꽉 차 있었다. 이런 좋은날 밤은 소원이 꼭 이루어질 것 같아 젊은 부부는 빌고 또 빌었다.
어느덧 새벽을 알리는 첫 닭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서야 기도를 마친 젊은 부부는 일어섰다. 그때였다. 회오리바람이 몰아치면서 촛불을 꺼버렸다. 금새 하늘은 어두워졌고 하늘을 가르는 번개가 아차산에 다달았다.
이내 천둥소리가 아차산에 울려 퍼졌다. 장대 같은 빗줄기는 하늘이 터져 버린 것처럼 쏟아졌다. 젊은 부부는 겁이 났다. 정성이 모자라서 아차산 산신령의 노여움을 산 것이 아닌가 하고 벌벌 떨었다. 이때 떨고 있는 부부에게 떨어져 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비바람에 초가지붕 위의 박들이 굴러 떨어지는 것이었다.
놀란 부부는 그제서야 집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불길한 예감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렇게 사흘을 보냈다. 생각지도 않던 가을비는 사흘 후에야 그쳤다. 이러한 일이 있은 후부터 젊은 부부는 넋 잃은 사람처럼 하루하루를 보냈다. 옛날 옛적에 나쁜 인연이 있어서 자식 복은 없는 것이구나 하고 그렇게 보냈다.
치성끝에 생긴 아이. 하지만 아이는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린 아기장수. 긴 겨울이 지나고 새봄이 왔다. 젊은 부부에게 생각지도 않던 기쁜 일이 생겼다. 아내가 아이를 가진 것이다. 나쁜 일과 좋은 일은 돌고 돈다더니 작년의 나쁜 재수는 끝나고 올해는 바라고 바라던 자식이 생겨나는 것이었다. 신이 난 젊은 부부는 그저 아차산 산신령님께 고맙고 고맙다고 다시 빌기 시작하였다.
아차산 기슭에 우렁찬 아기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새해를 다시 알렸다. 아기는 무럭무럭 자랐고 젊은 부부는 신바람이 나서 더욱 열심히 일하였다. 부러울게 없는 가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었다. 젊은 부부는 아기를 눕혀 놓고 일을 하러 나갔다. 하지만 돌아와서 보니 누워 있어야 할 아이가 없었다. 걸음마도 떼지 않은 아이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방문도 잠긴 채로 있었고 싸립문도 들어올 때에 분명 닫혀 있었다. 날짐승이나 호랑이가 침범한 흔적은 없었다. 이상한 일이다 하여 부부는 온 집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아이는 없었다. 아이는 기어서 나갔을 것이므로 틈새가 있는 곳은 모두 뒤졌다.
한참을 정신없이 뒤지고 있는데 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쌔근쌔근 아이의 코고는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소리가 들려오는 곳은 높은 다락이었다. 젊은 농부가 발꿈치를 들고 손을 올려야 닿는 다락에서 아이의 숨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젊은 농부는 다락의 문고리를 잡아챘다. 어인 일인가?. 아기가 다락에서 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젊은 농부는 얼른 아기를 안고 내려왔다. 누가 장난을 하였는지는 모르지만, 아기를 찾았으니 그만 이었다.
그러나 다음 날도 그러한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 다음 날도 그랬다.
걸음마도 하지 못하는 아기가 높은 다락에 올라갈 수는 없는 일이다. 누군가 장난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젊은 부부는 어느 때처럼 아기를 눕혀 놓고 싸립문 밖으로 나가는 척 하였다. 그리고 이내 곁방으로 돌아와서 아기가 자는 방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잠시 후 아기가 눈을 번뜩 뜨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발로 이불을 걷어찬 후 두 손을 벌리고 움츠리고 펴는 것을 여러 번 하였다. 웬일인가. 겨드랑이가 넓어지면서 부채처럼 날개가 되었다. 그리고 박쥐처럼 날개짓을 하여 다락으로 날아오르는 것이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대체 저 아기가 우리의 자식이란 말인가. 젊은 부부는 근심에 쌓였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이야기 할 수도 없었다. 되려 소문이 날까봐 조심조심 지냈다.
어느새 아기는 걸음마를 하기 시작하였다. 눕혀둘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마루기둥에 묶어 두었다. 돌아와서 보니 기둥이 뽑혀 있고 아기는 지붕 위에서 잠자고 있었다. 내려놓으면 여느 집 아기처럼 본래의 모습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내는 아기의 곁을 떠나 있을 수가 없었다.
아기장수는 연자방아 웃돌을 아차산으로 끌고 올라가고... 다시 새봄이 오고 농사철이 되었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두렛일을 해야 했다. 농부의 아내는 모두가 하는 두렛일에 빠질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연자방아간에 묶어 두기로 하였다.
춘궁기라 연자방아간은 쉬고 있었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벌판에 있으니 안성마춤이었다. 소 두 마리가 끄는 연자방아를 네놈이 어찌하겠는가, 하고 아기를 연자방아의 후리채(방틀에 끼우는 단단한 나무. 여기에 끈을 달아 소에 맨다.)에 묶었다.
두렛일에 나온 사람들은 볍씨를 뿌린 모판을 만들고 있었다. 그때 우지끈 우지끈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연자방아의 웃돌이 아차산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두렛일을 하던 동네 사람들이 모두 놀라 굴러가는 연자방아의 웃돌을 쳐다보았다.
마치 둥그런 웃돌이 저절로 아차산을 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자세히 보니 어린아이가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모두들 하던 일을 멈추고 그곳으로 몰려갔다. 젊은 부부는 어쩔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을 체념한 듯이 그들을 뒤따라갔다.
아기는 날개를 퍼득거리며 바위덩어리인 웃돌을 끌고 있었다. 아기의 걸음마다 깊게 패인 발자국이 아차산의 바위에 남겨졌다. 모두 놀라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어떤 이는 두손을 모아 아기에게 절까지 하였다.
뒤따라온 젊은 부부가 아이를 껴안고 울었다. 그제서야 아기는 멈춰섰다. 젊은 부부는 지나온 일들을 동네 사람들에게 모두 이야기해 주었다.
역적으로 몰릴것을 두려워한 마을사람들은 아기장수를... 이야기를 들은 동네 사람들은 걱정이 아차산 만큼이나 커졌다. 괴이한 장사가 태어나면 역적이 된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가족은 물론 온 동네가 곤욕을 치렀다. 더군다나 어린 아기장수가, 그것도 날개 달린 아기장수가 아닌가?.
숨길일이 따로 있지, 이러한 괴이한 일은 언제가는 알려지고 말 것이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하지 않는가. 동네 사람들이 서로 의논하였다. 결국 아기장수를 죽이는 것으로 결정났다. 이러한 결정을 전해들은 젊은 농부 부부도 어쩔 수가 없었다.
동네에서 제일 나이 많은 노인이 아기장수를 죽일 좋은 생각을 해냈다. 힘으로 아기장수를 죽일려다가는 되려 아기장수에게 큰 화를 당할 수 있다. 아기장수는 날개를 펴야 힘을 내는 것이다. 날개를 못쓰게 하면 된다.
연자방아의 밑돌 둘레를 볏집으로 높게 쌓게 하였다. 이내 연자방아의 밑돌은 우물처럼 둥그런 구덩이가 되었다. 그러한 구덩이 가운데 아기장수가 들어갈 곳만을 놔두고 다시 볍씨가 가득 찬 가마니를 쌓아 올렸다. 그리고 나서 젊은 부부에게 아기장수를 데려오게 하였다.
아기장수를 밑돌 구덩이에 넣고 볍씨 가마니의 매듭을 모두 풀고 나오라고 하였다. 젊은 부부는 노인이 시키는대로 하고 나왔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연자방아간을 둘러섰다.
잠시 후에 연자방아간에서 퍼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점점 퍼득거리는 소리가 커져가고 볍씨가 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아기장수가 날개짓을 할수록 가마니에서 볍씨들이 쏟아져 나왔고, 볍씨에 파묻힌 아기장수는 힘을 쓸 수가 없었다. 퍼득거릴수록 밀려오는 볍씨는 아기장수를 덮었다. 아기장수는 숨을 쉴 수 없어서 그만 죽고 말았다.
아기장수를 기다리던 용마는 한강물로 떨어져 용이되고. 그날 밤이었다. 아차산에서 말울음 소리가 들렸다. 말울음 소리는 점점 커져갔고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와 아차산을 바라보았다. 우렁찬 울음소리를 내던 말은 날개가 달린 용마(龍馬)였다.
아차산 제일 높은 바위에 오른 용마는 아기장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앞발을 들고 서서 날개를 치켜세운 용마는 밤새껏 그렇게 울었다. 동녘하늘에서 붉은 기운이 서려왔다 태양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날이 밝는 것이 못내 아쉬운 듯 용마는 아차산을 박차고 날았다. 용마가 아차산을 벗어날 즈음 태양이 떠올랐다. 용마는 그만 날개를 접고 떨어졌다. 용당산(현 한강호텔 자리) 앞 깊은 한강물에 떨어진 것이다.
전하여 오는 말에 용당산에 용이 살았다는 것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용마가 아닌가 싶다. 그 후로 아차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를 용마봉(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광진구의 향토사학자인 김민수 선생이 중곡동 양지노인회 어르신들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를 재구성 한 것입니다. [옛이야기 1]비낭고개의 며느리 바위 전설 [옛 이야기 2]곳집우물의 귀신 이야기 [옛 이야기 3]광나루 용당산의 전설 한강 남쪽 광나루 시민공원에서 바라본 구의, 광장동과 아차산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