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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하철입니다
김효은 글·그림/문학동네/어린이책 시민연대 광진지회 김희진 회원
 
디지털광진   기사입력  2019/07/03 [10:58]

매일 아침 붐비는 지하철 승강장에 헐레벌떡 들어서서 초조하게 열차가 올 방향을 쳐다보는 직장인들과 학생들도, 반가운 누군가와의 만남을 위해 모처럼 단장하고 여유로운 외출에 나선 이들도, 혹은 다른 여러 이유로 길 위에 선 사람들도 이미 그 마음은 목적지를 향해 멀리 앞서 달려가고 있다. 기다리는 그 모든 이들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길을 어김없이 달려와 주는 지하철. 바로 이 책의 화자이다.

 

▲ '나는 지하철입니다' 표지     © 디지털광진

표정을 알 수 없는 얼굴과 반쯤 투명한 몸으로 승강장에 서 있던 익명의 사람들이 지하철 열차에 올라타면, 지하철은 제각각 다른 얼굴과 이름을 가진 이들을 반기며 저마다의 사연을 들려준다. 한때는 달리기 일등이었지만 아침마다 어린 딸을 한 번 더 보고 나오느라 꼴등이기 일쑤인 완주씨의 바쁜 마음을 위해 지하철은 부지런히 달리고, 평생 제주 해녀로 바다의 지혜를 배우며 살아온 할머니가 딸과 손녀를 위해 보따리 속에 담아 온 바다내음 나는 선물의 기쁨을 싣고는 살랑살랑 지하철은 달린다. 또 겁보, 울보, 잠보 막내딸이 어느새 어린 두 아이를 들고 뛰는 엄마가 된 유선씨와 아이들을 위해서 지하철은 둥개둥개 달린다.

 

여기저기를 다닌 낡고 헤진 신발들의 훈장 같은 생채기를 수선하는 재성 아저씨의 눈길이 지하철에 올라탄 사람들의 신발 끝에 가닿는 한편, 하루 종일 학원을 오르내리지만 성적에 따라 기분도 덩달아 오르락내리락하는 지친 나윤이의 무거운 고개는 핸드폰에 고정된 채 좀처럼 올라오지 않는다. 구공철 아저씨가 파는 빨주노초파남보, 빠지는 색 하나 없는 장갑처럼 백이면 백 모두 다른 이야기와 마음을 싣고 이렇게 지하철은 덜컹덜컹덜컹 달린다. 그리고 그 덜컹거림은 이내 리듬이 되어 노곤함을 달래는 잠깐의 잠을 부르기도 하지만, 역에 다다르며 내는 요란한 덜커덩거림은 끝없을 것 같은 인생의 긴 길 마디마디에서 크게 휘청거려도 결국 견딜만했다는 듯 다시 몸을 추스려 가던 길을 향해 발을 내딛는 우리네 모습을 떠올리게도 한다.

 

작가는 3년간 지하철 안팎의 풍경을 담은 수많은 드로잉과 스케치, 판화작업에 이르는 사전 조사와 준비 기간을 가졌다고 한다. 하나하나 다른 표정과 자세, 심지어 피부색까지 고려한 인물들의 표현과 그들의 보이지 않던 마음을 읽어 담아낸 이야기는, 그렇기에 사실주의 그림이 아님에도 현실 속 나와 이웃의 모습으로 금새 다가온다. 또한, 제주도 해녀학교 체험과 해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싱싱하게 건져 올린 제주바다 장면과 입말, 자신의 구두를 모아 직접 찾아가서 보고 들은 것을 재현해내 우리를 순식간에 그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구두수선공 아저씨만의 허름하고 작지만 아름다운 세계, 그리고 학원가 밀집된 건물의 간판과 현수막까지 그린 세밀한 그림 등은, 평범하지만 자기의 세계에서만큼은 주인공인 보통 사람들의 소중한 삶을 따뜻하게 전달해주려는 작가의 노력과 의지의 결과물이다.

 

오랫동안 차를 몰고 다니다 최근 이런저런 이유로 지하철을 더 자주 이용하게 되면서 그동안 못 보던 것들이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 운전하며 누렸던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 대신, 지하철이라는 같은 공간과 시간을 잠시지만 공유하고 있는 옆 사람들의 존재가 더 크게 느껴진다. 그것은 아마 지하철이 있었기에 같은 생각을 나누는 사람들이 한마음이 되어 모였던 그 광장에 혼자서도 선뜻 갈 수 있었고, 그 길을 가고 오는 동안 지하철에서 만난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 걸까 궁금했기 때문일 테다. 그리고 예전보다 복잡해진 노선만큼이나 크게 달라진 것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열의 아홉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들에게 이 그림책을 읽어준다면 손안의 작은 세상에서 잠시 눈을 떼고 덜컹덜컹 같은 리듬으로 흔들리고 있는 옆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질까. 그리고 또 다른 나윤이는 한강 위를 달릴 때 펼쳐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마음이 붉게 물들까.

 

 글을 써주신 김희진 님은 어린이책시민연대 광진지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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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7/03 [10:58]   ⓒ 디지털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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