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향토문화연구발표회 향토사학자 김민수 선생 대상 수상 광진구의 대표적인 향토사학자이자 광진문화원 향토사분과위원장인 김민수 선생(54. 구의2동)이 제 15회 전국향토문화연구발표회에서 영예의 대상인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아차산(峨嵯山)에서의 고대사(古代史)의 제문제(諸問題)]로 논문부문 대상
지난 12월 7일 열린 전국향토문화연구발표회에서 김민수 선생은 [아차산(峨嵯山)에서의 고대사(古代史)의 제문제(諸問題)]라는 논문으로 고대 삼국시대 아차산의 지정학적위치와 역사적 사실을 밝혀 학계의 관심을 모으며 대상의 영예를 차지했다.
김민수 선생은 1990 「아차산성의 재발견과 간고]를 시작으로 지난 10 여 년 간 한강과 아차산을 중심으로 고대 삼국시대 역사를 연구하여 활발한 논술활동을 펼쳐온바 있다.
전국향토문화연구발표회는 15년전인 지난 86년 재야 향토사학자들이 새로운 자료를 찾는 연구에 정진하고, 향토문화의 저변확대를 이루기 위해 시작된 행사로 전국문화원연합회 주최로 해마다 열리고 있다. 이 행사에서 김민수 선생은 지난 1994년 「한강유역에서의 삼국사의 제문제」로 최우수상을 1995년 「한수의 개념과 고구려 남평양의 고찰」이라는 논문으로 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주최측인 전국문화원연합회는 이번 행사에 전국의 향토사학자들이 50여편의 논문을 제출했으며 논문의 체계, 사료의 근거, 학계에 이미 알려진 내용인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수상작을 뽑았다고 밝혔다.
(사진은 김민수 선생이 신라의 북한산성이라고 주장한 사적 아차산성)
다음은 논문인 [아차산(峨嵯山)에서의 고대사(古代史)의 제문제(諸問題)]의 주요 내용으로 김민수 선생의 수상소감 중 일부내용이다.
사적 아차산성은 신라의 북한산성이며 이곳에서 온달이 전사하였다.
『대동여지도』에서는 아차산에 두 개의 성곽을 표시하였다. 두 개의 성곽에 대한 『대동지지』의 해석은 풍납동토성과 마주하고 있는 한강 북(北)의 절벽에 양진성(楊津城)이 있고, 그 정상에는 아차산고성(峨嵯山古城)이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두 개의 성곽에 대한 관계를 설명한 『조선보물고적조사보고』에 의하면 고산성(古山城)은 사적 아차산성(阿且山城) 이다. 사적 아차산성은 필자가 향토사가의 발걸음을 내딛던 날부터 누누이 주장한 신라의 북한산성(北漢山城)이다. 고구려가 수륙 양면작전으로 공격한 신라의 북한산성은 한강의 수계에 있어야 한다. 또한 신라가 고구려를 정벌할 때의 전초기지를 한성과 북한산성으로 혼기하고 있다. 따라서 한성에서 강 건너 있는 사적 아차산성이 신라의 북한산성인 것이다. 근래에 『아차산성 지표·시굴조사보고서』에서 『북한(北漢)』이 양각된 명문와편들이 대량 출토된 사실이 이를 확인하고 있다. 그렇다면 신라의 북한산성(北漢山城)과 동북의 북안(北岸)에 있는 광장리 성지 또는 양진성(楊津城)은 백제의 아차성(阿且城)이다. 이곳에 지금은 선경그룹의 사저(私邸)가 있다.
온달(溫達)은 고구려 영양왕때의 장군이었다. 영양왕은 수(隋)나라의 대대적인 침입을 두차례나 막은 영걸이다. 그러나 신라와의 전투에서 참담한 패배를 단 한번 기록하였다. 바로 한강하류의 북한산성전투였다. 이때 패장 고승(高勝)은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한 고승이 온달이었을 것이라는 단서는, 온달전에서 평강공주의 혼처가 상부고씨(上部高氏)집안이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왕실의 혼사의 결정권이 당사자에게 없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또한 평강공주는 급박한 전장터에 와서 온달의 시신을 수습하는 데 어떠한 걸림이 없었다. 이러한 전황은 고구려가 수군작전을 감행하여 신라의 북한산성을 공격한 것이다. 북한산성의 전투를 아차성이라고 위작한 의도는 고구려의 국명을 전승한 고려가 광개토왕, 장수왕 때의 아차성을 환기시킴으로써 재기의 여력이 있음을 과시한 것이다. 또한 고승을 미천한 바보온달로 대치시킴으로써 일반 백성들도 나라를 위하여 충성 할 수 있는 여지와 부마에 버금가는 보은의 사례를 예시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