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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시대의 중독과 해독
'소통, 미디어로 세상과 관계 맺는 법' 정여울 지음 홍익출판
 
디지털광진
 
 결코 꿈이 아니다. 유비쿼터스의 시대가 시간과 공간의 질서를 허물고 우리를 신의 영역으로 안내하고 있다. 환상이 현실과 뒤바뀌면서 수십억의 초인이 등장했다.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명령은 가차없이 집행된다. 분명 그건 자연이다. 정보의 산과 들과 강과 바다이니 말이다. 이제 그건 또 하나의 자연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그 또 다른 세상은 분명 나의 것이다. 나는 거기서 초인이자 왕일 뿐만 아니라 신이니 말이다. 이제 우리는 그 또 하나의 세계에서 모든 불평등과 갈등과 고통과 불안에서 해방되고 있다. 세계는 이제 나와 단절되었다. 그 단절의 사이에 넓디 너른 우주를 설정했으니 말이다. 나는 설정된 그 매질을 통해 세상으로 나간다. 미디어는 나와 세상이 소통하는 새로운 우주의 출입구다. 
 
▲ 심범섭 선생님     ©디지털광진
지난 역사에 인류는 서양의 근대가 그렇게 떠받들던 이성의 노를 저어 거친 이념의 시대를 지나 신자유주의라는 대륙에 도착했다. 그러나 우리가 거기서 발견한 것은 모든 것이 깨지고 흩어진 뒤 남은 낱알뿐이었다. 모든 것이 해체된 뒤 남은 개인이었다. 당도한 신대륙은 이상이 아니라 뼈만 앙상한 세상의 모습과 모래알로 변한 개인들뿐이다. 사막화 된 땅이었다. 사막의 한 가운데 서서 한없는 외로움과 불안에 떠는 개인이 발견될 뿐이었다.
 
그래서 외친다. 오고 가야 한다고 주고 받아야 한다고 몸과 몸이 만나야 한다고 말과 말이 통해야 한다고 마음과 마음이 하나가 돼야 한다고…… 소통을 이야기했다. 글쎄 아직은 모르겠다. 그게 정말 사람을 그리워하는 건지 혹 그것조차 돈의 줄에 매달린 음모인지……
 
하여간 우리는 그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오프라인의 관계 맺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온라인의 관계 맺기로 진군했다. 진화는 빨랐다. 새로운 수단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새로운 관계 맺기의 신대륙도 발견되었다. 그걸 미디어라고 했다. 미디어의 전성시대가 예고된다.
 
핸드폰에 이어 인터넷이 등장하더니 스마트폰이 사람과 사이를 거미줄처럼 연결하고 이제 포털싸이트는 사람들을 안개 자욱한 운무에 가두고 묶는다. 빛과 소리 역시 사람들을 가두고 묶는다. 오디션 열풍이 불고 셀러부리티의 주자가 미루나무처럼 큰 키로 자라 그늘을 만든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문화적 코드가 나타나서 세상을 뒤흔들어 놓는다. 가히 지구촌은 문화의 진화를 넘어 문화혁명의 시대를 향해 나가고 있다. 이 책 소통은 우리를 문화혁명의 열풍을 뚫고 나가는 인류학적 모험으로 안내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문화혁명의 열풍은 촌사람으로만 살고자 했던 필자의 주변조차 가만 두지 않는가 보다. 티브이 앞을 떠나지 못하던 아내도 어느 날부터 스마트폰을 손에 들더니 도무지 놓지를 못한다. 수시로 주변사람들과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면 시집간 딸들이지만…….) 드라마 얘기와 영화 얘기에 폭 빠진다. 주인공 누구누구의 이야기가 화제다. 누가 어떻다느니 저떻다느니 하면서 수다를 떨다가 드디어는 드라마가 이래야 된다느니 저래야 된다니 하면서 새로운 기획에 도전하고 제작을 지휘하기에 이른다. 그런 수다가 정보의 바다를 건너 저쪽에 있는 오프라인의 제작진을 움직인다. 드디어 드라마의 이야기 방향은 수다가 가르치는 곳으로 전개된다. 즐거운 수다가 세상을 바꾼다.
 
사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내 나의 아내는 스마트폰에 대고 눈물을 쏟아 내다가 '만나자'고 좇아가기에 이른다. 드라마의 주인공과 자신들의 슬픔을 함께 위로한다. 시대에 한 참 뒤떨어져 살아가는 나는 뒷전이 아니라 아주 다른 세계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그들 주변의 사물로 전락한다. 가상의 힘이 현실을 누르고 오히려 현실이 되고 그 변화의 물결을 읽어내지 못하는 나는 옛날 속으로 들어가 반 강제로 유물이 되고야 한다.
 
  저자의 말을 빌어 하나의 질문을 던져보자. 도대체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아직도 '무슨 소리야 정치와 경제는 절대적인 조건이야' 라고 주장하겠지만…… 그래서 군인의 시대는 아직 가지 않았다고 더구나 정치니 경제적 뭐니 하는 힘있는 것들의 시대는 저물지 않았다고, 일상으로 우리를 압박하는 교육문제도 아직은 우리의 내면에 엄연히 굳건하게 자리를 잡고 있지 않느냐고 강변할 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포기하라. 엔터테인먼트 사회의 주인공 과학기술은 이미 그런 보수의 곁을 떠나 미디어 시대의 섶다리를 놓고 있으니 말이다.
 
  생각을 화끈하게 바꿔보자. 우리는 역시 엔터테인먼트 시대를 사는 문화인이라는 데 고개를 끄떡여야 한다. 그렇다. 이미 우리는 스마트폰이나 셀러브리티, 포털싸이트, 오디션열풍이 터트리는 폭죽의 파편에 맞았고 그 세례의 축복을 받지 않았던가 이제 미디어는 우리의 삶을 완벽하게 장악했고 우리는 그걸 산소처럼 날마다 마셔야 한다. 그 깊은 중독은 우리를 놓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은 우리의 삶을 뿌리부터 흔드는 문화적 키워드로 안내하는 여행이다. 피곤한 일상으로 찌들어가는 현대인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우리 안의 시스템으로 안내하는 내시경 같은 길라잡이다.
 
 사실 개그콘서트 한 꼭지는 웬만한 스트레스쯤은 한 순간에 폭파시킨다. 온갖 방식으로 분열되면서 전문화되는 우리의 삶은 그 자체로 비인간화되는 슬픈 일이지만 너무나 복잡해서 피곤하다 못해 우울과 불안 속으로 빠트린다. 시시 때때로 우울이나 불안이 우리의 일상을 습격한다. 도피는 간단하다. 드라마나 영화나 연극 속으로 빠져들면 그만이니 말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울과 불안은 새파란 가을 하늘처럼 맑게 개인다. 영화뿐인가 다큐멘터리는 어떻고, 아직 살아내지 못한 현실 저 너머의 삶을 미리 예행연습으로 단단하게 다져준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통해 내 삶의 풍요를 가늠케 하면서 위로해 준다.
 
 이제 끝으로 저자 정여울이 왜 미디어에 미치게 되었는지 그래서 소통을 말하지 않으면 안되었는지 고백하는 한 꼭지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이 책의 저자 정여울은 원래 야심이 많은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오직 '정보의 달인이 되고자' 속독과 다독, 남독에 빠졌을 때 그래서 그 지식추구의 욕망이 내 뿜는 신열과 씨름을 할 때 그걸 잠재우고 '자신도 몰랐던 내 안의 의식의 잠금 장치를 풀었다'고 고백하는 역사가 제먼 데이비스의 말이다. '독서는 이론과 상상' 그리고 '사실로서의 역사와 가능성으로서의 역사' '문학과 철학' 자아와 타인' '과거와 현재' 심지어는 '윤리와 금기'의 경계를 허물고 뒤흔든다는 것이다. 저자 정여울이 그 말에 귀를 기울이자 마침내 여섯 개로 찢어져 있던 자신의 다중인격과 그리고 세상을 오직 '아군과 적군'으로만 나눌 수밖에 없던 마음속의 습관을 벗어 날 수 있었다고 했다.
 
하여간, 미디어는 아직 가보지 못한 세계를 드라마틱하게 그리고 즐겁게 또 멋지게 치환하는 진짜 같은 가짜다. 그러나 그 가짜는 어느새 우리의 내면으로 들어가 쌓이면서 나의 세계관을 형성하고 있다. 그래서 미디어는 우리가 찾아 나서야 할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는 삶의 즐거운 탐색이자 바로 그 세계와 맞서고 있는 나 자신의 세계를 뚫고 들여다 보는 내시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조심하라, 미디어는 마약이다. 소통의 저자 정여울의 말대로 꿈틀대는 인문학이지만 그러나 그건 분명 현실을 가리고 환상으로 들어가는 마약임이 확실이다. 모든 마약이 그렇듯 미디어 중독 또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 없다. 미디어 옆에 늘 나의 등불을 켜놓고 나를 비춰보는 성찰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미디어로 세상과 관계맺는 법     © 디지털광진



 
기사입력: 2011/10/21 [18:33]  최종편집: ⓒ 디지털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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