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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렁바위와 두꺼비탈
[광진이야기]향토사학자 김민수 작, 고구려정 앞 벌렁바위 이야기
 
디지털광진
 
 이 이야기는 아차산일대에 단편적으로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들을 김민수 선생이 재구성한 설화로 순수 창작물로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고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 아차산 벌렁바위 전경. 사진 가운데가 젊은 사냥꾼이 벌렁 누웠다는 '벌렁바위' 오른쪽이 쌍머리 이무기 바위고 뒤쪽이 고구려정이다.     © 디지털광진


 하늘나라의 이야기입니다. 하늘나라에는 이 세상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옥황상제님이 계십니다. 그지없이 높고 끝이 없으신 분입니다. 이런 분이 사시는 하늘나라는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추운 겨울과 무더운 여름이 없습니다. 언제나 따뜻한 봄날입니다. 활짝 핀 꽃들은 비단 수를 놓은 것과 같았습니다. 우뚝우뚝 솟아오른 바위와 그 틈새에서 휘어질 듯 날개를 편 소나무 그리고 바람 따라 흐르는 구름, 계곡의 물소리에 장단 맞춰 지저귀는 새 소리, 나긋한 햇살을 사정없이 몰아치면 떨어지는 폭포, 거기에서 피어오르는 오색무지개, 그저 황홀한 세계입니다.

  황상제가 사시는 궁전에서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맡은 일을 하면서 즐겁게 지냈습니다. 옥황상제를 가까이 모시고 있는 사람들은 그 중에서도 빼어난 사람들입니다. 특히 시중을 드는 시녀(선녀)들은 너무 아름다워서 아래 나라 땅에 사는 우리들은 하늘나라의 선녀님이라고 부릅니다. 옥황상제께서 은밀히 일을 보시는 일을 거드는 시녀도 있었습니다. 옥황상제께서는 옥으로 된 요강에 오줌을 누셨습니다. 옥뇨(玉尿)라고 합니다. 옥뇨가 보이면 황금으로 만든 오줌장군(통)에 담아서 용이 끄는 수레에 싣고서 저 멀리 은하수에 두었습니다. 가뭄이 드는 곳에 조금씩 뿌려주면 단비가 되어 모든 생물들이 살아난다고 합니다. 

 
▲ 삽화-윤슬, 최택준    © 디지털광진

이 일을 맡아서 하는 시녀가 있었습니다. 이 시녀는 옥황상제의 옥체(몸뚱이)를 훔쳐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옥황상제께서 얼마나 귀여워하는 시녀였겠습니까. 어느 날 이 시녀는 옥뇨가 모인 요강을 안고 옮겼습니다. 옮기던 중에 잠깐 아래 나라 땅 위를 보니 금강산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금강산은 하늘나라보다도 더 아름다웠습니다. '아, 저기가 인간 세계의 신선들이 사는 곳이구나'하고 생각하니 발길이 저절로 멈췄습니다. 순간, 요강이 엎질러지면서 옥뇨가 쏟아졌습니다. 쏟아진 옥뇨는 금세 굵은 장대비가 되었습니다. 장대비는 석 달 열흘을 쉬지 않고 내렸습니다. 아예 금강산의 일만 이천의 봉우리는 장대비에 씻겨 바위들만 서로 보고 서 있었습니다. 그 사이사이 골짜기에는 봇물이 터진 것처럼 물길이 아우성치면서 내달렸습니다. 물길은 북한강 골짜기를 쓸어 버렸습니다. 남한강을 만나서는 더욱 거세져 아차산까지 밀어낼 기세였습니다. 한강 주변은 온통 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살아 있는 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간혹 둥둥 떠내려가는 산짐승들이 보였습니다. 산새는 보이지 않고 바다 갈매기들이 날아들었습니다. 이렇게 비가 그친 한강 주변은 진흙벌이 뻗쳐서 황량해졌습니다.

  한 시녀의 실수가 아래 나라 땅 위의 많은 생명들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아름답던 산천도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옥황상제의 귀여움을 받는 시녀이지만 벌을 안 받을 수 없었습니다. 옥황상제께서는 벌을 내렸습니다. 천 년 동안을 진흙벌로 뭉개진 한강변에 내려가서 살다 오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그것도 흉측한 두꺼비 껍질을 쓰고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귀여워했던 시녀이므로 보름달이 뜨는 밤에만 두꺼비탈을 벗을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그래서 재롱을 부리면 구경하실 속셈이셨습니다.

  어느덧 천 년의 세월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한강은 맑아졌고 아차산은 짙푸른 숲으로 되살아났습니다. 산새가 지저귀고 산짐승들이 뛰어다녔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너무 너무 오래 전 옛날이었습니다.

  시녀는 두꺼비탈을 쓰고 살았습니다. 지금의 홍련봉과 백련봉 사이의 계곡에서 살았습니다. 계곡을 따라 조금 올라서면 영화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계곡은 울창한 숲으로 덮혀 있었고, 흐르는 물소리만 들렸습니다. 물소리가 크게 들리는 곳이 있었습니다. 석 장(丈)이나 되는 비스듬한 바위를 타고 떨어지는 비탈폭포가 있는 곳입니다. 폭포에 패인 구덩이가 제법 연못처럼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이곳을 겁소(沼)라고 불렀습니다. 시녀가 살았던 곳입니다. 겁소는 두꺼비연못(沼)을 줄인 말입니다. 시녀는 이렇게 천 년 가까이 두꺼비로 살았습니다. 보름달이 뜰 참이면, 시녀 두꺼비는 '꾹,꾹'하고 울었습니다. 그러면 시끄럽던 겁소의 개구리들이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제서야 시녀는 두꺼비탈을 벗고 멱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바위에 올라서서 춤을 추었습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그렇게 추었습니다. 달밤에 춤추는 시녀의 그림자가 겁소에 드리워 물결을 일렁였습니다. 하늘나라의 향연이 땅에서 펼쳐지는 것입니다. 아마도 옥황상제에게 바치는 향연이었나 봅니다. 그렇게 시녀 두꺼비는 보름달이 뜰 때마다 춤을 추었습니다. 그것도 천 년이란 세월 동안 한번도 거르지 않고 추었습니다.
 
▲ 비탈폭포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구의2동 골목길 전경. 사진 중앙 위쪽이 홍련봉이고 오른쪽이 산들어린이집     © 디지털광진



  사람이 살지 않은 아차산은 뭇 짐승들의 천국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냥꾼이 처음으로 발길을 들여놓았습니다. 사냥꾼은 화살을 쏘아 산 짐승을 잡았습니다. 어깨에 메고 갈만한 한 마리의 짐승만 잡았습니다. 그리고 겁소에 들렸습니다. 사냥감을 손질했습니다. 내장을 꺼내서 버렸습니다. 그런 중에서도 간을 짤라내고 살점을 떼어 내어 바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사냥을 해서 얻은 것을 산신에게 먼저 바치는 고수레였습니다. 사냥꾼이 떠나고 나면, 버린 내장을 차지하기 위해서 여우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바위에 올려놓은 고수레는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고수레는 시녀 두꺼비의 몫이었습니다. 시녀 두꺼비는 밤이 되어서야 고수레를 먹었습니다. 시녀 두꺼비도 뭇 개구리들처럼 곤충과 해충을 잡아먹었습니다. 장마철에는 지렁이도 잡아먹었습니다. 하늘나라에서 깨끗한 음식만 먹었던 시녀 두꺼비도 이 세상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냥꾼이 정성껏 올려놓은 고수레는 참 맛이 있었습니다. 간혹 고수레를 먹는 즐거움에 사냥꾼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사냥감을 걸머진 사냥꾼이 나타났습니다. 고수레까지 마친 사냥꾼은 땀에 흠뻑 젖은 옷을 벗어 던졌습니다. 그리고 겁소에 뛰어 들었습니다. 튀는 물줄기가 바위의 고수레에까지 떨어졌습니다. 사냥꾼은 첨벙거리며 멱을 감았습니다. 물속에서 솟아올라 머리채를 걷어올린 사냥꾼은 앳된 젊은이였습니다. 꾸김없이 쭉 뻗은 다리, 벌어진 어깨, 움직일 때마다 불룩거리는 팔의 근육, 무엇보다도 번뜩이는 구릿빛 피부는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시녀 두꺼비는 넋을 잃었습니다. 밋밋한 하늘나라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생동감이 넘치는 인간이었습니다. 넓은 명주천이 있었다면, 얼른 감싸 안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운 젊은이였습니다. 이제는 고수레를 먹는 재미보다도 젊은 사냥꾼이 멱을 감는 모습을 되새기며 기다리는 것이 즐거움이 되어버렸습니다.

  시녀 두꺼비는 보름달이 떠도 즐겁지 않았습니다. 춤을 추어도 흥겹지 않았습니다. 젊은 사냥꾼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젊은 사냥꾼이 멱을 감을 수 있도록 내내 여름을 묶어 두고 싶었습니다. 시녀 두꺼비의 바램을 마다하지 않은 듯 젊은 사냥꾼은 여름 내 겁소에 자주 들렸습니다. 그렇게 또 멱을 감았습니다. 노래까지 부를 때가 있었습니다. 힘찬 목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골짜기를 울렸습니다. 시녀 두꺼비의 가슴 깊숙이 울렸습니다. 시녀 두꺼비는 젊은 사냥꾼의 가슴에 뛰어 들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두꺼비인 자신의 모습이 원망스러웠습니다.
 
▲ 팔각정 아래에 위치한 두꺼비 바위     © 디지털광진


  보름달이 뜨는 밤이었습니다. 수풀을 헤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산짐승이러니 하고 잠시 귀를 기울였습니다. 갈대숲이 꺾이면서 '푸드득' 꿩이 날아갔습니다. 꿍꿍거리는 신음 소리가 다가왔습니다. 다리를 질질 끌면서 기어오는 것은 젊은 사냥꾼이었습니다. 시녀 두꺼비는 얼른 모래펄로 올라섰습니다. 그리고 젊은 사냥꾼을 부축해서 겨우 바위에 눕혔습니다. 가까이 있는 칡덩굴로 왼쪽 다리를 묶었습니다. 그리고 상처 난 곳에는 쑥을 찧어서 발랐습니다. 피가 멈췄습니다. 그제서야 젊은 사냥꾼이 빤히 자기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시녀 두꺼비는 얼른 칡덩굴로 아랫도리를 가렸습니다.

  "낭자는 누구시요?"
  "......... "

  시녀 두꺼비는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얼굴까지 화끈거려서 두 손으로 가슴만 가렸습니다.

  "나는 멧돼지 이빨에 찔렸소, 고맙소. 헌데 웬 산속에   "

  젊은 사냥꾼은 여우에게 홀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말을 못하시오. 낭자. 무슨 사연이   "

  입을 열면 부풀었던 사랑의 풍선이 터져버릴 것 같았습니다. 시녀 두꺼비는 그저 입술만 깨물고 있었습니다. 그때입니다.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와 보름달을 가리기 시작했습니다. 시녀 두꺼비는 머뭇거릴 수가 없었습니다.

  "가야 해요. 낭군님. 바로요."

  그제서야 시녀 두꺼비는 자기의 손목이 젊은 사냥꾼에게 잡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러다간 흉측한 두꺼비 모습을 보여줄까 봐 더욱 조바심이 났습니다.

  "낭군님. 낭군님."

  애처로운 눈빛을 머금고 젊은 사냥꾼에게 잡힌 손목을 빼냈습니다.

  "갑자기 어디를 가신단말입니까. 어디를요?"

  젊은 사냥꾼은 무릎을 세워 앉았습니다.

  "묻지 마세요. 꼭 가야해요. 꼭요."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나요. 언제요."

  젊은 사냥꾼은 돌아서서 발걸음을 띄는 시녀 두꺼비를 향하여 소리쳤습니다.

  "보름달이 뜨는 밤에요. 보름달이 뜨는 밤요."

  시녀 두꺼비는 뒤돌아서서 젊은 사냥꾼에게 웃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얼굴에 활짝 핀 미소는 보름달이 겁소에 내려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내 겁소는 캄캄한 밤이 되어버렸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보름달이 다시 떴습니다. 풀섶으로 가리우고 꽃잎으로 꾸민 시녀 두꺼비는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젊은 사냥꾼 또한 곱게 땋은 댕기머리에 하얀 옷을 입었습니다. 화살과 화살통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선남선녀는 겁소에서 만났습니다.

  "낭자"
  "낭군님"

  가까스로 내는 신음 같은 외마디 소리뿐이었습니다. 두 남녀는 꼭 끌어안았습니다. 젊은 사냥꾼의 억센 팔에 안긴 시녀 두꺼비의 허리가 휘어질 것 같이 그렇게 꼭 끼어 안았습니다. 가뿐 숨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사이사이에서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습니다. 달빛도 겁소의 물결 위에서 너울거렸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겁소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습니다.

  "안돼요."

  시녀 두꺼비는 젊은 사냥꾼을 밀쳤습니다. 일어선 시녀 두꺼비는 떨고 있었습니다.

  "웬 일이요. 낭자, 대체 무슨 일이   "

  따라 일어선 젊은 사냥꾼은 뭐가 뭔지 어리둥절할 뿐이었습니다.

  "다음에 만나요. 다음엔 숨어 있어야 돼요. 절대로 달빛에 보여서는 안 돼요. 제가 부를 때까지 꼭꼭 숨어 있어야 돼요"

  시녀 두꺼비는 다시 잡힌 손을 뿌리치고 숲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너무나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젊은 사냥꾼은 우두커니 서서 숲속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찬바람이 젊은 사냥꾼의 얼굴을 스쳤습니다. 겁소는 캄캄한 밤이 되었습니다. 번뜩이는 섬광이 검은 하늘을 갈랐습니다. 이내 우렛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몰아치는 비바람은 숲속을 쓸어버릴 것 같았습니다. 비탈폭포가 우렁차게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겁소는 흙탕물에 휩싸였습니다. 넓은 바위도 잠겨버렸습니다.
 
▲ 박쥐굴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구의2동 청기와 빌라 전경     © 디지털광진



  젊은 사냥꾼은 보름달이 뜨기도 전에 겁소에 와서 숨어 있었습니다. 모기에게 물리고 벌레에게 뜯기는 것도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오직 아리따운 시녀 두꺼비를 만나는 기쁨뿐이었습니다. 보름달이 떠올랐습니다. 시녀 두꺼비는 숲속을 헤치고 나타났습니다. 사뿐사뿐 모래펄을 건너서 물속에 잠겼습니다. 긴 목을 젖히고 하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쭉 뻗은 다리를 물 위에 내놓고 번갈아 저었습니다. 달빛을 머금은 물결이 퍼져 나갔습니다. 뒤척이는 곳마다 풍만한 곡선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멱을 감은 시녀 두꺼비는 바위에 올라섰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애원하듯이 두 팔을 하늘거렸습니다. 다시 휘어감아 짜듯이 꼬인 온몸을 바위 끝자락에 올려놓았습니다. 터질 것 같이 움츠린 여체를 달빛이 어루만졌습니다. 그래서 서서히 발돋움하는 한 마리의 학은 바위를 수놓듯 감아 돌았습니다. 온통 숲이 춤사위 따라 돌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숲속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흔들거려도 쏟아지지 않는 겁소의 물결이 달빛을 머금고 출렁일 뿐이었습니다. 시녀 두꺼비는 비탈폭포의 왼쪽 숲길을 넌지시 가리켰습니다. 그리고 춤사위를 마쳤습니다. 젊은 사냥꾼은 시녀 두꺼비가 사라진 비탈폭포의 왼쪽 숲길로 조심조심 다가섰습니다. 그리고 바위길을 따라 올라갔습니다.

  "낭군님"

  왼쪽 굴속에서 나지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박쥐굴이었습니다. 박쥐들이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서 비가 와도 들어가지 않았던 굴이었습니다. 지금의 영화사 절 앞의 백련봉 밑에 뚫린 굴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전연 상관이 없었습니다. 거기에 미치도록 보고 싶은 여인이 있었습니다. 시녀 두꺼비가 아름다운 여인으로 있었습니다.

  "아니, 낭자  ."
  "아무것도 묻지 마세요. 언젠가 모두 알려 드릴게요."

  시녀 두꺼비는 두 팔로 젊은 사냥꾼의 머리를 감싸 안았습니다. 그리고 푹신하게 깔린 풀섶 위로 쓰러졌습니다.

  그렇게 선남선녀의 만남은 이어졌습니다. 달빛이 지기 전에 헤어졌습니다. 그럴수록 시녀 두꺼비가 하늘로 올라가는 날은 점점 다가왔습니다. 시녀 두꺼비는 젊은 사냥꾼과 헤어지는 것이 싫었습니다. 너무나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녀 두꺼비는 자기에게 있었던 일들을 죄다 이야기해줬습니다.

  "아니, 그러면 하늘나라로 올라가셔야 되나요."

  젊은 사냥꾼은 정색을 하며 되물었습니다.

  "아니오. 정말 가기 싫어요. 여기 낭군님과 오래오래 있고 싶어요."

  시녀 두꺼비는 젊은 사냥꾼의 가슴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젊은 사냥꾼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 또한 시녀 두꺼비를 너무나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낭자, 나는 낭자와 헤어지는 것이 정말 싫소. 그러나 어쩌면 좋소. 낭자가 이 세상 우리와 있게 되면, 아프고  병들고 늙고 죽게 되요. 썩어서 흙이 될 뿐이요. 차마 그것을 못 볼 노릇이요. 하늘나라에 가서 천 년 만 년 살아야 되지 않겠소."

  젊은 사냥꾼의 얼굴에는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해진다면 기꺼이 자기의 아픔을 안고 살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아니에요. 낭군님. 억 만년을 산들 사랑이 없으면 무얼 해요. 정말 싫어요. 사랑이 없는 나라는 하늘나라라도 싫어요."

  시녀 두꺼비는 힘껏 젊은 사냥꾼의 가슴을 안았습니다. 떨어지기 싫어서 온몸으로 안았습니다. 그리고 젊은 사냥꾼의 귓가에 속삭였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잠시 산다고 해서 그게 잠시겠어요. 사랑해서 아들, 딸 낳으면 되잖아요. 사랑이 씨앗이 이어지고 이어져서 천만년 이어지면 되잖아요. 그걸 몰랐어요. 하늘나라에 있을 때는---   "

  시녀 두꺼비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빛났습니다. 입술을 쫑긋 다물고 나서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저의 말씀을 잘 들으셔야 돼요. 오랫동안 생각한 거예요. 저는 백중날(음력 7월 보름) 마당 바위 위에 서 있어야 돼요. 그러면 용이 되려는 이무기가 한강에서 올라올 거예요. 그 이무기가 저를 데리고 하늘로 올라가요. 그 이무기를 쏘면 돼요. 머리를 정확히 쏘아야 돼요."

  "그렇다고 이무기들이 다시 안 오겠소. 한강에는 이무기들이 버글대는 데"

  "아니에요. 한강에 용이 될 수 있는 이무기는 별로 많지 않아요. 있다고 해도 우리가 얼른 두꺼비 껍질 속에 들어가 버리면 돼요. 이무기도 뱀이라서 두꺼비 껍질을 아주 싫어해요. 그러니 두꺼비 껍질 속으로 쏙 들어갈 수 있게 알몸으로 오세요."

  "다음엔 어떻게 되나요?"

  젊은 사냥꾼은 호기심과 기쁨이 범벅이 되었습니다. 시녀 두꺼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그 다음엔 우리의 세상이에요. 하늘나라에서는 그날 데려 가지 못하면 하늘나라의 명부(名簿)에서 저를 빼버려요. 그때부터 하늘나라의 사람이 아니에요."

  "그래도 괜찮겠소. 낭자--- ."

  젊은 사냥꾼은 모든 것을 버리고 자기를 택한 시녀 두꺼비가 고맙고 애처로웠습니다.

  "당신이 있잖아요. 하늘나라와도 바꿀 수 없는 당신이 여기 있잖아요."

  시녀 두꺼비는 일어나 앉았습니다. 두 손으로 젊은 사냥꾼의 얼굴을 쓰다듬었습니다. 그렇게 긴 밤을 보름달과 함께 있었습니다.
 
▲ 고구려정 아래쪽에 있는 쌍머리 이무기 바위. 국기봉을 철거하면서 왼쪽 머리가 조금 부서졌다고 한다.     © 디지털광진



  아. 그러나 생각지도 않던 일이 생겼습니다. 동굴 속에는 황금 박쥐가 나들이 와 있었습니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아서 날아가지 않고 그대로 매달려 있었습니다. 황금 박쥐는 한강 북쪽의 강변에 우뚝 솟은 용당산 밑 토굴에 살았습니다. 강물이 들락거리는 토굴이어서 이무기들의 쉼터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서로는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이웃 동굴에서 이무기를 죽일 궁리를 하고 있다니요. 그것도 금세 용이 될 대장 이무기를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황금 박쥐는 숨을 죽이고 두 남녀가 나누는 이야기를 곰곰이 새겨들었습니다. 보름달이 지고 캄캄해지자, 바로 토굴로 돌아왔습니다. 이웃 동굴에서 들은 이야기를 이무기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이무기들은 걱정이 태산처럼 쌓였습니다. 가장 나이 많은 이무기가 이 일을 맡게 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시녀 두꺼비를 하늘로 데려 가면서 자기도 용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젊은 사냥꾼이 화살로 머리를 쏜다고 합니다. 용이 되지도 못하고 죽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늘나라의 명령을 거스를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궁리 끝에 결론을 내렸습니다. 머리가 둘 달린 쌍머리 이무기를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머리 하나를 맞아도 남은 머리 하나로 거뜬히 마당 바위 위의 시녀 두꺼비를 낚아챌 수 있는 쌍머리 이무기입니다.

  운명의 날이 왔습니다. 백중날입니다. 한 많은 영혼들이 빌고 빌어서 하늘나라로 올라간다는 백중날입니다. 둥근 보름달이 두둥실 떠올랐습니다. 온 누리가 해맑아졌습니다. 마당 바위는 더 더욱 넓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숨이 막힐 만큼 정적이 흘렀습니다. 하늘의 뜻과 이를 거스르는 기운이 팽팽히 맞서 있었습니다. 보름달은 달무리를 넓히면서 더 더욱 커졌습니다. 그때 시녀 두꺼비가 마당 바위 위에 나타났습니다. 달빛에 비쳐진 시녀 두꺼비는 또 하나의 달님이었습니다. 달빛만이 시녀 두꺼비의 아름다운 곡선을 훔치며 흘러내렸습니다. 젊은 사냥꾼은 활시위에 화살을 걸고 숨을 죽였습니다. 그때 쏜살같이 내달려 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무기였습니다. 젊은 사냥꾼은 힘껏 활시위를 당겼습니다. 마당 바위 위에 다다른 이무기를 향하여 쏘았습니다. 명중이었습니다. 그러나 웬 일입니까. 화살 맞은 고개 하나를 떨구고 다른 고개 하나를 쳐든 이무기는 금세 시녀 두꺼비를 감아버렸습니다. 다시 활시위를 당겼지만 쏠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이무기의 머리는 시녀 두꺼비의 머리에 포개져 있었습니다. 그런 이무기의 몸뚱이는 구름이 되었습니다. 어느새 시녀 두꺼비를 휘감았습니다. 구름은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하늘 멀리 멀리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시녀 두꺼비는 하늘로 올라가버렸습니다. 젊은 사냥꾼은 활을 내동댕이치고 울부짖었습니다. 울부짖는 소리가 산울림이 되어 되울렸습니다. 되울릴 때마다 어둠이 내려앉았습니다. 캄캄한 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스산한 바람이 일었습니다. 번개가 번쩍이며 하늘길을 열었습니다. 이내 천둥소리가 아차산을 흔들었습니다. 몰아치는 비바람에 맞섰던 젊은 사냥꾼도 벌렁 드러누웠습니다.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 벌렁바위. 자세히 보면 두 팔을 치켜들고 두다리가 쭉 뻗어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 디지털광진



  세월이 흘렀습니다. 하늘나라의 시녀님과 아차산의 젊은 사냥꾼의 사랑 이야기는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그들의 사랑 이야기가 마당 바위 위에 새겨져 있습니다. 젊은 사냥꾼이 내동댕이쳤던 활 바위 자리에는 고구려정(전, 팔각정)이 세워져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녀 두꺼비가 벗어 놓고 간 두꺼비탈은 고구려정의 왼쪽(西)에 있습니다. 한강에서 달려오는 쌍머리 이무기는 고구려정의 남쪽에 있습니다. 국기봉을 철거하면서 왼쪽머리가 조금 부서졌습니다. 아마도 화살 맞은 것을 알려 주려고 그랬나 봅니다. 고구려정의 정면에는 젊은 사냥꾼이 벌렁 누워 있는 모습이 그대로 있습니다. 두 팔을 치켜 들고 두 다리가 쭉 뻗어 있습니다. 사타구니에서 뻗친 거시기(男根)가 왼쪽 다리에 우람하게 걸쳐 있습니다. 아낙네들이 이 거시기를 쓰다듬으면 남편에게 사랑을 받는다고 합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면 이 거시기를 밟아버리면 된다고 합니다. 남편의 기가 꺾여서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두꺼비탈을 어루만지면 돈을 많이 번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두꺼비탈에는 금색깔이 보입니다. 그래서 금두꺼비라고도 부릅니다. 무엇보다도 보름달이 뜨는 여름밤에 여기서 사랑을 맹세하면 하늘나라 선녀님이 들어주신다고 합니다. 자기가 못 이룬 사랑을 꽃 피우려고 꼭 맺어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름밤 보름달이 뜰 때에는 마당 바위에 선남선녀들이 모여들어 사랑의 서약식을 올립니다.
 
▲  삽화 윤슬, 최택준   © 디지털광진

 
 


 


 
기사입력: 2010/11/24 [18:34]  최종편집: ⓒ 디지털광진
 
고구려정 아래 바위들 영걸스 15/02/28 [18:54] 수정 삭제
  벌렁바위, 쌍머리 이무기 바위, 두꺼비 바위.
정말 관찰력이 좋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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