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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쇼의 씨앗은 꿈틀거리는데…
현기영 소설 <누란> 창비
 
심범섭 시민기자
 
한강 큰 다리를 건너, 노량진에 가면 '사육신 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무덤엔 사육신의 시신이 안치된 게 아니라 사육신의 손발톱 또는 모발이나 옷가지 신발 같은 것들을 묻어 놓은 유품의 무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곳을 찾는 이들이 이 무덤을 사육신의 무덤이 아니라거나 유품의 무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누구나 거기에 가면 이 만고충신의 무덤에 경건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고 경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당시 부귀영화를 누린 끝에 왕릉에 버금가도록 크게 조성했던 신숙주의 무덤은 그 때 이후 지금까지 종적을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다 아는 일이지만 신숙주는 사육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입니다.
 
▶ 심범섭 선생님     ©디지털광진 ◀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무엇이냐고요?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과 국립묘지 안장입니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말대로 평생 인동초의 삶을 살았던 그가, 그래서 죽음 직전에 있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연설조차 하지 못했던 그가 무엇 때문에 국립묘지로 주검을 가지고 가야 했단 말인가. 그래서 저 남도의 열사를 욕보이고 봉하의 옹고드를 화나게 했단 말입니까. 거기서 뭔 영화를 맛보겠단 말입니까. 과연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를 짊어지고 온 김대중이라는 인물이 묻힐만한 공간이란 말인가. 참으로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박지원이란 자와 신숙주란 자가 어근비간 다가옵니다.
 
현실과 이상이 심각하게 왜곡되고 갈등하는 때에, 이를 바라보는 인식의 문제를 다룬 현기영이 이를 소설로 지어서 우리 곁으로 찾아왔습니다. 더구나 이 이야기의 중심에 바로 김대중이 그토록 가고자 했던 우리의 민주주의와 통일과 민중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보니, 그가 가야 할 망월동의 빈자리가 두둥실 떠오르는 한가위 보름달만큼이나 한스럽습니다.    
 
작가 현기영이 '지상에 숟가락 하나' 이후 10년 만에 장편소설 <누란>을 내 놓았다. 지구의 지붕이라고 하지만 혹독한 시련의 땅이 틀림없는 고비와 타클라마칸, 두 사막 사이에 한 때 크게 번창했던 옛 왕국 '누란'이 있었고 이제 그 자리엔 모래폭풍과 인광만이 황량한 땅을 설친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이 소설에서 이 옛 왕국 '누란'은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그 사라져 간 왕국의 흔적이 일으키는 모래폭풍과 더 정확히 말한다면 '황사'가 일어나 시공을 달리하는 먼 우리 대한민국으로 날아온다. 황사는 해마다 봄이면 날아와서 우리 역사의 빛나던 한 자락을 사라진 옛 왕국 누란처럼 모래의 바다에 묻고 있다. 그래서다. 그 황사의 장막을 걷고 '잃어버린 십년'을 되찾은 이 땅의 현실 그러니까 불길한 역사의 공동묘지 위에서는 흉흉한 역사의 인광들이 움직인다. 
 
옛 왕국 누란을 삼켰던 그 사막의 모래폭풍이 칙칙한 장막을 치고 그 장막 안으로 한 때의 우리 역사를 가두고 또 묻고 있다. 그 모래폭풍을 우리는 황사라고 하지만 그 장막이 쳐진 어두운 세계를 두 개의 인광이 좀비처럼 움직인다. 그 흉흉한 좀비들의 인광 중에서 저자는 단지 두 개의 인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바로 386의 투항자 허무성과 파쇼의 고문기술자 김일강이다. 영혼을 빼앗겨 이성이 사육되는 자와 그 영혼을 빼앗는 사육하는 자의 인광이다. 그들은 박정희가 생애를 마치면서 남긴 시바스리갈을 나누어 마신 사람들이다. 마시는 사람의 영혼을 탈취하는 파쇼의 바이러스다.
 
고문 기술자 김일강의 말을 들어보자. "너희 386들이 '대중이 역사의 주인'이라고 떠받들고 있지만, 잘 들어 봐라, 대중은 '좌파다' '빨갱이다'라는 우리의 말에 헤까닥 눈이 뒤집히거든, 음 그거야 물론 그 만큼 우리의 공작이 성공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말이야…" 고문기술자는 더 기고만장해진다. "대중의 정신건강 다시 말해서 말이야, 국민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빨갱이는 만들어져서라도 존재'하게 되는 거야, 암 그래서 빨갱이 그러니까 말이야 좌파가 있는 한 우리는 불멸의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거야." 386의 투항자 허무성은 조용히 듣고 있다. "생각해봐 '운동권이란 자'들은 '패배한 싸움을 이긴 줄 알고 만세를 불렀지…. 암! 그러다가 만세를 부르며 쳐든 두 팔을 도로 내릴 필요도 없이 그 제스쳐 그대로가 항복의 선언'이 되고 말았잖아" 파쇼의 고문 기술자 김일강은 의기양양해 했다.
     
어두운 시대를 떠도는 두 인광, 그 두 개의 인광은 이제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상실한 '우리의 내면의 세계를 떠도는 유령'이다. 그 하나는 역사의 수레를 어둠 속으로 끌고 가는 파쇼 박정희와 전두환으로 상징되는 냉혹한 보수진영의 빛이고, 그리고 다른 하나는 양지를 향해 끌고 가려는 김대중과 노무현으로 상징되는 진보진영의 희망의 빛이다. 그렇다. 역사의 길은 도도히 흐르지만 늘 상반되고 어긋난다. 밤과 낮으로 갈라지고 위와 아래로 갈라지고, 또 좌와 우로 그리고 과거와 미래로 갈라지고 철학이라는 땅에서 하늘과 땅이라는 존재의 대륙이 관념론과 유물론으로 갈리며 다투고 갈등하고 싸우며 흐른다. 그러나 슬프다. 역사는 늘 앞으로 가지 않고 뒤로 가기가 십상이다. 그 진보의 가치가 사라진 왕국 누란처럼 묻혀가고 있다.     
 
그래서다. 작가 현기영은 묻는다. "우리에게 과연 희망은 있는 것일까?" 그리고 말이다. "혹 다시는 헤어날 수 없는 절망의 나락으로 우리의 역사가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작가는 또 중얼거린다. '그건 개인의 탓이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 그건 '구조적인 것'이라고 '세계화의 결과'라고, "모두가 하나의 축에 연결된 현대사회에서 우리 개인의 문제는 이제 세계라는 구조 속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정말 그런가. 우리가 알고 있던 작가 현기영이 이제 지쳐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피로한 기계처럼 고장 난 기계처럼 폐기처분 할 때가 된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오는 변명인가. 작가 현기영은 이 소설 '누란'을 통해 '절망과 우울의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한편 우리가 그 절망의 끝에 닿았을 때 '거기에서 새로운 정신, 새로운 자아'로 무장하고 '그 절망의 바닥을 걷어차고 힘차게 수면 위로 떠오르는 희망을 발견하는 성찰의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이 '희망을 버린 배신자'를 자청하는 것이라고 했다.
 
허기야 87년 6월 항쟁 이후 이런 저런 숱한 주장을 쏟아 냈지만, 정작 우리가 주목하고 희망을 걸어 볼만한 진보의 기획이나 설계는 없었다. 그래서 귀중한 혁명의 공간을 속절없이 허비한 무지와 무능과 그래서 패배를 당연히 않아야 했던 민주진영 아니던가.
 
그렇지만… 대 선배님을 향한 송구스러운 말이지만… 비록 진보진영의 패배와 무능력을 지적하고 그래서 사라진 역사의 저 공허한 누란의 공간으로 우리를 관광케 하는 데는 비록 성공했을지라도 작가 현기영이 혼신을 다해 통찰한 대안은 그 역시 무능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이 명백하다. 그러나 어찌 그에게 책임을 덮어씌울 것인가. 우리 모두가 그랬듯 그 역시 뾰족한 수를 발견하지 못할 것임은 뻔하지 않은가 말이다. 어렴풋하게 주인공 허무성의 제자 오윤미의 활기찬 언행과 당찬 행동과 열정을 통해 특히 몰래 여기저기 담벽락에 어수선하게 그려서 현실이라는 전체를 부정하면서 새로운 무엇을 창조하고자 하는 그라피티라는 저항적 그림으로 문화적 대안 같은 어떤 것을 언뜻 제시하고는 있지만 미치지 못한다.
하여간, 대안이라… 그렇다, 미안하지만 여기서 수다스러운 서평자의 의견이 끼어 들어야 서평의 잔재미를 느낄 수 있지 않겠는가. 분명 '철학에세이' 이후 이 책 '누란'은 우리 시민사회의 교과서가 되기에 충분한 훌륭한 이념과 사상과 철학과 실천을 위한 진보의 성찰 담론이다.  그러나 사족을 달고 싶다. 그러나 좀 미안함을 느끼는 건 어쩐 일인가. 다 모르고 있다고… 더구나 가장 훌륭한 우리시대의 대표적인 한 지성이 십 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을 쏟아 갈고 닦은 내공의 결과인 '누란'에 어줍지 않은 불평을 늘어놓다니… 말이다. 지나치고 더구나 방자함을 무릅쓰고 훈수와 함께 매를 걸어 놓는다.
 
우선, 우리의 교육열이 인간욕망의 표출이면서 출세의 도구임을 증언해 주는 약육강식의 정글이라는 것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 주고 있는 데서 금방 이해 할 수 있듯이 인간에 대한 집단현상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적응하는 이념, 사상, 철학이라고 해서 인간욕망의 표출이라는 부정적인 범주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한 개인적 이용에 대한 성찰이 모자라면 더욱 더 해악 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않고 양심적인 지식인에 비유돼서는 안 된다. 꽤나 그럴 듯 하게 포장해서 이념이니 사상이니 또는 철학이니 하면서 문화라는 포장지로 싸 놓고 있지만 결국은 이 모두 삶의 적응도구이며 투쟁의 무기인 것이다. 작가 현기영이 좀 더 명확하게 성찰해야 할 몇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다음, 지식은 본질적으로 악성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선일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중이 역사의 주인이다'라는 주장을 하면서 민중에 기생하는 지식인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독재자가 '민족' 또는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이용해서 '국가나 민족'을 '전쟁'이라는 공포로 동원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인문학적 성찰력에 의해 자신의 지식을 제어할 수 있는 그래서 자신의 주장에 자기 자신을 희생하면서 공동체의 이해득실에 봉사 할 수 있는 자기 제어의 성찰력을 가진 '지식민중'이라는 어줍지 않은 지식인이 있다. 이들이야말로 인류 역사상 우리가 존경하는 사람들이지만 이들 역시 민중은 아니다. 그들도 역시 민중에 기생하는 삶의 방식을 통해 살아간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는 결코 위대한 것이 아니라 투쟁의 도구가 일궈낸 승리의 결과이며 그 영광의 자리는 희생된 대상의 눈물과 수고와 고통과 피와 주검 위에 존재할 뿐이다. 인간 스스로 지식이니 문화니 문명이니 하면서 꽤나 찬란한 이름을 붙여 놓고있지만 그건 포장지일 뿐이다. 지금 우리가 지구촌을 평정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지구의 표면과 자연과 미생물이며 식물이며 동물을 관리하고 사육하고 이용하고 잡아먹고 있지만 이 자랑스러운 인간의 문명이야말로 지구촌을 평정한 승리의 도구이며 선이 아니라 극악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손오공을 제압하는 현장법사의 주문 같은 것이다. 결코 선이 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이런 인식의 바탕 위에서 문명이라는 대상 부정력 즉 '군사, 정치, 경제, 문화, 정서'라는 제법 근사한 가치관이 실은 패거리를 만들기 위한 이기주의의 고리일 뿐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자랑스럽게 떠 벌이고 있는 그 가치관들은 결국 우리인간이 '우리'라는 패거리 주체를 확대해 가면서 그 지배력의 이송력을 높이기 위해 조직의 단위를 묶어서 제법 그럴싸한 포장지로 포장했던 도구가 '가치관'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발명한 '군사, 정치, 경제, 문화, 정서'라는 가치관의 흐름은 참으로 위대했다. 비록 먼 곳까지 지배력의 이송을 가능하기 위해 만들어 냈지만 이 가치관의 흐름은 점차 대상에 대한 부정력의 강도를 줄여 나갔던 것이다. 권력 집단이 대상 긍정의 가치를 확대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지만 지배력의 이송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권력주체의 지속력과 함께 공생의 가치가 증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대안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이런 바탕 위에서 오늘을 사는 지금의 우리가 이 순간 지구촌이라는 하나의 공간에서 그 하나의 공간을 모두 평정한 하나의 패거리로 완성되었다는 지점에 이르러 이제까지 인류가 창조해온 모든 가치관과 공간 그리고 패거리가 더 이상 나갈 수 없는 한계에 부딪쳤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더 나가야 할 대상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앞으로 나갈 '공간'과 '우리' 그리고 그들을 묶어 낼 '가치관'이 없다는 절망과 대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이제 인간은 제자리로 돌아가는 걸 깨달아야 할 때다. 그것은 자연이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는 반환점에 서 있음을 인식하지 않으면 우리의 그 어떤 성찰도 대안이라는 처방전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의 현실은 '누란'을 역사의 무덤에 장사 지낸 그 '황사'의 모래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파쇼의 씨앗이 그 절망의 환경에서 '잃어버린 십년'을 되찾고 부화의 웅장한 꿈을 꾸며 꿈틀거리고 있지 않은가. 이 역사의 자해를 넘어 설 대안은 그래서 더욱 절실한 재앙과 마주서서 인간과 자연 그리고 역사의 선과 악이 승패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이다. 


 
기사입력: 2009/10/01 [19:22]  최종편집: ⓒ 디지털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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