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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고다 언덕에 서서 옹고드로 부활하라
<녹색평론 106호> (2009년 5~6월호) 녹색평론사
 
심범섭 시민기자
 
그건 사실이었다. 그랬다. '전직 대통령의 투신자결'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은 사실이었다. 그 앞에서 우리는 망연자실했다. 아! 그렇다면 그는 '옹고드' 였을까, 또는 '십자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음밭에 휘날려 꽃처럼 떨어진다. 옹고드는 몽고의 샤먼이 맞이하는 수호신령이고 골고다 언덕에 서 있는 십자가는 예수부활의 상징이다.
 
▶ 심범섭 선생님     ©디지털광진 ◀
인간의 문제를 자연에 기대어 자연현상으로 풀어내고자 한 것이 옹고드이고 인간의 문제를 세상에 대한 깨우침으로 풀어내고자 한 바람이 십자가다. 그래서인지 옹고드는 인간의 문제를 알에 담아 생명이 전달되는 씨앗으로 형상화했으며, 십자가는 죽음에 도달하는 고통을 통해 인간의 희망을 부활시키고자 했다. 인간의 주체를 몸으로 이해한 샤먼이나 정신으로 이해한 종교의 차이는 있지만 인간의 고통을 풀고자 했다는 점에서 옹고드와 십자가는 다르지 않다.
 
한국 정치판에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져간 노무현. 그가 부엉이 바위에 새겨놓고 간 의미는 무엇일까. 그가 죽음으로 남기고자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 많은 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그가 생전에 못 다했던 '민주주의'와 '탈 권위' 그리고 '지역통합'을 말하곤 한다. 그러나 그 뿐인가.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의 유서 곳곳에서 그는 '지금', '여기', '우리'라는 시간과 공간과 주체를 넘어서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구태여 불교와 기독교와 그리고 유교의 표현 담론을 차용하지 않았지만 그의 유서에서 우리는 자신을 압박해서 죽음의 벼랑 끝으로 몰고 간 세상과 사람에 대한 그 어떤 원망이나 보복이라던가 특히 죽음 이후의 욕망에 대한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 참혹하고 처절한 그리고 역사적인 죽음에 이 유서는 너무나 고요하고 태평하다. 마치 지금 막 산 마루를 넘어가는 저녁 해처럼 장엄한 아름다움이 있다. 그건 분명히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람 사는 세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아름다운 언어가 아닐 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에 주목하면서 이번에 나온 09년 5~6월 녹색평론106호를 읽었다. 녹색평론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녹색평론 106호는 퇴임 후 봉하마을로 내려가 동네 이장아저씨처럼 농사를 지으며 살고자 했던 인간 노무현의 마음을 마치 조각처럼 짜 맞추듯이 담고 있다. 지난 해 가을 자연농법으로 생산한 봉하마을의 오리 쌀 수천포대가 불티나게 팔린바 있지만, 그 의미는 그 무엇도 아닌 생태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그걸 생산한 사람이 전직 대통령이란 점에서 이 생태마을의 이야기는 '생태정치'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노무현의 꿈이 단순히 자신의 고향 봉하마을에 생태적공동체를 만드는 것이겠는가. 그건 아니다. 바보 노무현의 꿈은 더 긴 시간과 더 큰공간과 더 큰 사람들의 모임을 지향하는 '옹고드'라고 보여진다. 그는 늘 현실을 넘어서는 꿈을 꾼다. 그래서 그는 작은 사람에게는 바보 같은 사람으로 보이고 아는 사람에게 큰 사람이 된다.
 
 노무현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고 말이다. 노무현의 민주주의는 이렇다. 대통령이 머슴이 되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다. 그러나 국민의 생각은 다르다. 민주주의에 앞서 대통령은 나라를 다스리는 최고 권력자다. 국민을 짓밟을 수 있는 그래서 국민에 의해 휘둘리지 않는 절대권력의 주체가 있어야 나라는 존재한다. 그래서 국민 앞에 무릎을 꿇고 명령을 기다리는 머슴 노무현을 "에게 뭐야 저 딴 머슴 주제에 뭔 나라를 다스린다고 흥 !" 하며 맘껏 조롱하고 짓밟았던 것이다. 이런 어이 없는 사실 앞에서 민주주의의 적들은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며' 승리했던 것이다.
 
 녹색평론 106호는 벼랑 끝에 서 있는 우리의 민주주의를 말하기도 하지만 발행인 김종철님과 시인 이문재님의 '우리는 어떻게 좋은 삶을 살 것인가'라는 강연을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환경이야기에서 "환경론은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지 못한다"면서 그러나 또한 "생태론은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야 한다."라고 이야기한다. 이 글을 읽으며 서평자는 좀 우스운 말이지만, 권정생님과 녹색평론이 만나듯 만약 노무현이 녹색평론과 만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다. 그러면 필경 녹색평론의 김종철님은 서울로 이사오지 않고 봉하마을로 이사를 갔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문제가 크지만, 인상 깊은 박세길님의 서평과도 만날 수 있다. 박세길은 <자본을 넘어, 노동을 넘어>의 서평에서 "저자 강수돌 등은 이제까지의 '노동해방'의 논리를 넘어 '노동해방'이 아니라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 대안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자칫 노동운동의 평지풍파를 야기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 노무현님이시여! 당신을 이렇게 보냅니다. 악의 축에 맞서 부엉이 바위의 벼랑에 서서 역사의 앞날을 응시하고 있는 당신입니다. 이제 우리 역사의 옹고드일 수 밖에 없습니다. 또는 십자가로 부활할 수 밖에 없는 또는 수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 가슴에서 가슴으로 묶어지는 기억과 그리고 함께 했던 아픔의 추억과 그 '수호신령 수레'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계의 지붕에서 샤먼이 맞이하는 사히호스 테렉으로 와야 합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함께 가자고 당신께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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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6/18 [19:10]  최종편집: ⓒ 디지털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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