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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화를 알아야 우리문화가 보인다.
<꽃아 꽃아 문 열어라> 이윤기 지음 (열림원)
 
심범섭 시민기자
 
누구나 잘 아는 작가 이윤기가 쓴 <꽃아 꽃아 문 열어라>는 책의 제목과는 딴판 다르게 신화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그것도 남의 신화가 아니라 '우리 신화'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서양의 신화가 아니라 우리의 신화를 찾아가는 이야기이라니 좀 어색하고 신기하지 않은가. 이 과학문명의 시대에 신화라는 게 아직도 존재의 명분을 가지고 살아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신화가 살아 있다는 말은 좀 뚱딴지같다는 생각이 든다.
 
▶ 심범섭 선생님     ©디지털광진 ◀
그렇다. 우리 신화가 아직도 살아 있었다. 다들 내 속의 배알 머리를 쏙 빼 버리고 머리를 서양으로 돌리거나 서양 사람들의 관심사를 따라 그리스 신화니 이집트 신화니 인도 신화니 하면서 남의 신화를 달달 외우고 따라가는 사이에 우리 신화는 신화의 자리에서 내려와 겨우 미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러나 그 새까맣게 잊고 있던 우리의 신화가 아직은 존재하고 있었나 보다. 아마 그래서 이 책의 저자 이윤기는 우리가 우리의 신화를 까맣게 잊고 있다는 사실 앞에 좌절하면서 '우리의 신화이야기'로 했을 법한 이 책의 제목을 <꽃아 꽃아 문 열어라>라는 좀 생뚱맞은 제목으로 우리를 유혹했는지 모른다.  
 
하여간, 우리는 몰랐지만, 아니 우리가 버렸지만, 잠자고 있던 우리의 마음결을 하나하나 걷어내면서 작가 이윤기가 우리 무의식 속에 고요히 잠자고 있던 우리의 신화를 찾아가는 건 정말 대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이윤기가 젓는 '글나루'의 뱃전에 기대어 보자. 마치 샤먼이 자신의 수호신령 옹고드를 찾아 나서듯이 말이다. 그렇다, 옹고드는 결국 태초의 또는 태내에 서려 있는 근원 즉 존재의 뿌리이고 씨앗이 아닌가 말이다.
 
자본주의라는 열차에 올라 성공이라는 탈을 쓰고 무한경쟁이라는 약육강식과 문명이라는 도구를 휘두르며 하루가 다르게 악마로 변해 가는 오늘의 인류다. 이미 지구촌의 인간은 인간임을 포기한 게 아니냐는 느낌이 들 지경이다. 어느 날 문득 아이들에게 우리 인간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그렇다. 얼마나 섬뜩한 질문인가. 우리 자신에 대하여 '인간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어떻게 하겠는가.
 
글쎄, 이 질문에 대하여 우리가 아무리 심각하게 고뇌한다고 해도, 이 문제를 가지고 병원으로 달려가서 '나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하고 진단서를 떼어 달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 젊은 날이라면 이 문제를 가지고 철학자와 진지하게 토론하기를 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그렇게 존경하고 신뢰했던 저명한 어떤 철학자에게서도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하리라는 걸 모르진 않는다. 어떤 이는 신앙에 의지하여 답을 구하고자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조차 신통한 답이 없으리라는 건 확실하다. 결국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뜻 밖에도 나 자신일 수밖에 없다. 내 안으로 들어가서 나 자신에게 나 자신에 대하여 묻는 성찰과 고뇌의 외로운 길뿐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렇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내 안에 존재하면서 문득 돌아와 나의 질문을 기다리고 있는 나, 그것이 바로 나의 씨앗이고 인간의 씨앗이다. 비록 나의 무의식이라고는 하지만, 그 곳에 있는 내 마음은 내가 기억하는 모든 것과 내가 생각해야 할 모든 것 그리고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모든 것의 씨앗이다. 우리의 아니 내 영혼의 집이며, 나의 진정한 고향이며, 나의 태이며, 나를 생성한 자궁이다. 그래서 그것은 현실이 아니라 현실에서 현실을 넘어서는 신화라는 것으로 밖에 존재할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우리 시대의 이야기 꾼 이윤기가 찾아가는 '신화'는 모든 이야기의 어머니다. 우리의 마음과 인식과 역사와 문화의 심연이고 그 씨앗이다. 우리는 거기서부터 흘러 내려오기 시작했고 다 잊어버린 듯 해도 지금 이렇게 여기서 우리 역사로 우리의 마음 속을 도도히 흐르고 있는 현실이다. 마치 강물처럼 흐르는 역사지만 그 역사가 우리의 내면으로 흘러 들어가서 우리의 마음 밭에 내려앉고 그 밭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되고 숲을 이루면 그  숲은 신화가 된다. 그래서 신화는 지금 이 순간 우리의 현실을 지배한 문화의 생명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강물처럼 흐르지만 강물을 구성하고 있는 물방울과 같이 그 흐르는 강물에 존재하는 것이 신화라는 담론이다.
 
신화는 그래서 우리의 모든 삶을 끌어안고 흘러가는 강줄기와 같은 것으로 우리 삶이 던져 주는 모든 질문이자 답이기도 하다. 담론의 강이다. 따라서 신화는 인간의 꿈과 생존의지가 불러내는 샤먼이자 그 샤먼이 의지하는 수호신령 옹고드 또는 옹고드의 수레인 사이호스 테렉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꾼 이윤기는 우리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단군과 웅녀를 깨워내고 주몽과 유리 태자,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박혁거세와 알영을 우리 앞에 세운다. 그런데 미리 꼭 한가지만 알아 둬야 할 것은 '왜 그 신화의 주인공들은 한결 같이 알아서 나왔느냐?'는 의문이다. 사실 모든 씨앗은 생명의 신비를 담고 있는 알이기도 하거니와, 생각해 보라 현대과학이 확연하게 밝히고 있지만 인간의 씨앗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의 씨앗인 난자는 알이 아니고 무엇인가. 마음을 열라, 신화가 당신의 마음을 깨우고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문화의 새로운 대륙으로 안내할 터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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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5/18 [17:46]  최종편집: ⓒ 디지털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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