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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전, 토정 이지함 '맑시즘을 강의'하다
신병주 저. 은둔과 변혁의 변증법적 실천가 <이지함 평전>
 
심범섭 시민기자
 
500년 전 '맑시즘', 이게 뭔 억지야 다들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흔히 말하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생각의 틀을 깨고 새로운 눈으로 토정 이지함을 바라본다면 분명히 그건 엄연한 사실이다.
 
▶ 심범섭 선생님     ©디지털광진 ◀
그렇다. 우리들 대부분이 퇴계, 율곡, 남명, 화담, 다산 등을 이 땅의 선비라고, 그리고 대학자라고 다들 말하지만, 그러나 퇴계가 성리학이라는 유교의 틀에 꽉 매여 있는 답답하고 고루한 선비였다면 율곡, 다산, 화담은 이런 성리학의 근거인 '리'의 틀을 깨고 자연과 민중에게로 다가가 거기서 '기'를 발견하고자 했던 진보적인 사상가였다.
 
 영남학파가 '리'에 충실한 반면 기호학파는 오히려 '리(理)'보다는 '기(氣)'에 주목하고 기가 세계변화의 근원이며 우주의 근본일 뿐만 아니라 기에서 역사발전의 원리를 발견하고자 했던 것이다. 바로 주류의 관념론에 대해 유물론으로 대응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람은 이지함이다. 그는 무쇠로 만든 솥을 쓰고 다니다가 그 솥 모자를 벗어서 걸어놓고 밥을 해먹었으며, 사농공상이라는 철칙 즉 계급이란 절대적 굴레가 작동되는 500년 전의 사회에서 '놀고 먹는 선비야말로 똑똑한 사람들이니 장사를 해야 마땅하고, 그렇게 되면 유통시장이 활발해져서 나라가 부강해질 뿐만 아니라 결국 역사의 주체인 민중이 잘 사는 좋은 나라가 되지 않겠느냐'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그러니 그를 살려 두었다간 계급사회가 무너질 판이었다. 양반의 권력과 기득권이 송두리째 날라 갈 판이다. 그들이 어찌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이 사상가를 가만히 둘 리 있겠는가.
 
우리 역사의 위대한 선각자 이지함은 결국 명문거족이라는 자신의 기득권을 양반사회를 향해 '에이 이 놈들아 너희들이 다 해먹어라'고 몽땅 내던지고 스스로 미친놈의 길을 걸어간다. 그리고 민중의 삶 속으로 들어갔다. 뱃놈이 되는가 하면 고의적인 범죄자가 되었다가 들키기도 하고 어부가 되는가 하면 농부가 되고 기술자가 되고 상인이 되어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지혜와 학문과 사상으로 민중의 삶을 일으켜 세우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 민중과 함께 했던 그 고단한 삶에서 건져 올린 생각으로 '국부론'을 써서 임금께 올리고 사회경제사상을 설파한다. 그러나 이 광인의 소리를 누가 있어 듣고 누가 있어 이해하겠는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과 마르크스의 사상'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위대한 사상은 그리하여 '비결'이라는 그릇에 담겨져서 민중들의 고통이 영원히 계속되는 역사의 웅덩이에 던져진다. 그리고 이지함은 자신의 민중을 향한 이 영원한 희망의 메시지를 목마른 민중이 영원히 퍼 갈 수 있도록 마르지 않는 '오아시스'로 준비한다. 바로 우리가 정월 초하루만 되면 생년일시로 괘를 찾아 '일년신수'라는 천기의 비밀을 열어보는 '토정비결' 은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다. 그건 바로 민중이 희망과 그 희망을 읽어 낼 수 철학과 사상과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샘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역사를 바라보는 아주 색다른 하나의 시야를 읽어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조심스럽고 또 매맞을 각오로 말해야겠지만, 우리는 토정 이지함이 살아냈던 삶을 통해서 고려를 유지하는 이데올로기였던 불교에 이어 유교의 성리학이 영남학파와 기호학파라는 학문의 주류와 비주류로 갈라지면서 지배 이데올로기 생산의 도구였고, 그 생산 과정을 통해 집권과 비집권이 '리'를 중심으로 한 영남학파와 '기'를 중심으로 한 기호학파로 나뉘어 지면서 그 정치공학이 오늘의 우리 현실까지 지배하는 역사의 강물이 되었다는 것을 반드시 이해하고 오늘의 현실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즉 오늘을 사는 우리도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뭔가 손질을 해야겠다는 것이다.
 
기호학파의 대표주자인 율곡 마저 이지함의 탁월한 사상엔 감탄했으나 또한 그 현실을 넘어서는 진보성에 혀를 찼으니 벼슬에 눈이 어두운 당시의 주류학파나 조정은 그를 어떻게 평가했겠는가. 그럼에도 그의 사상은 북학의 시원이 되었고 이 땅 진보이론의 광맥이 되었음은 물론이거니와, 이 후 조선 후기의 수구적 영남학파(경상도)와 진보적 기호학파(경기 호남)의 갈등의 원인이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도도한 주류와 비주류의 정치공학적 흐름이 오늘을 사는 우리시대까지 그대로 흘러내려 와서 그 영원한 집권과 도전의 정치구조가 우리 역사를 지배하는 강물 같은 존재로 굳어져 있고, 그래서 그 틀을 깬다는 것은 바로 역사를 파괴하는 대역죄인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건 바로 오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영원한 집권과 민주당의 영원한 도전의 정치공학이 아닌가 말이다.
 
하여간 그래서 일 것이다. 500년 전 토정 이지함의 발언은 늘 당시의 대역죄에 해당하곤 해서 많은 사람들이 기피했고 오늘을 사는 우리 또한 늘 국가보안법의 양지와 그늘을 의식해야 되니.. 예나 지금이나 민주주의 담론은 특히 민중을 사랑하는 입장의 발언은 늘 주류의 적이었고 권력의 적이었고 그래서 역적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이상과 진실과 진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결국 미친놈으로 몰리거나 미친놈으로 변신해야 되는가 보다.
 
미리 그걸 안다면 이지함처럼 무쇠솥을 쓰고 다니며 비웃음을 경계로 현실과 이상을 대결 시키며 그 속에 저항의 '비결'을 담아야겠지만, 그 밑바탕엔 도 넘을 수 없는 역사의 정치공학이 있다는 것이며, 그걸 깨지 않으면 우리의 역사는 한치도 앞으로 나가지 못할 것이니 이를 어찌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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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4/04 [15:25]  최종편집: ⓒ 디지털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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