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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진이야기]아차산 여우골의 이야기
향토사학자 김민수 선생의 아차산 자락 여우골 이야기
 
김민수 시민기자   기사입력  2009/02/23 [17:36]
   옛날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의 장례를 잘 치러줬습니다. 죽어서도 좋은 세상에 다시 태어나서 행복하게 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땅이 좁습니다. 넓고 평평한 땅에서는 농사를 지었습니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산비탈에만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서울 주변은 대부분 돌로 된 산들입니다. 경치는 아름답지만 무덤으로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차산 중에서 유일하게 흙으로 된 망우산은 옛날부터 좋은 무덤 자리였습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서 물밀 듯이 밀려오는 강물을 가로막아서 누워 있습니다. 그러한 무덤 자리를 명당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우가 항상 말썽이었습니다. 아무리 흙을 꼭꼭 다져서 무덤을 만들어도 기어이 땅굴을 파서 시신을 뜯어먹었습니다. 사람들은 여우의 못된 짓을 막기 위해서 무덤 구덩이를 깊게 팠습니다. 그리고 석회를 콘크리트처럼 굳혀서 여우의 침입을 막았습니다.
 
▶ 하늘에서 본 아차산 전경. 사진 가운데 장로회 신학대학교 뒤편이 여우골이다.     © 디지털광진 ◀


 옛날 아차산 기슭 여우골은 죽은 아이들의 무덤이 많았는데
  그러나 어린이들의 무덤은 달랐습니다. 어른들이 묻히는 망우산까지 갈 수 없었습니다. 대부분 돌로 된 아차산 기슭에서 조금이나마 흙이 있는 곳은 어린아이들의 무덤이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너무나 가난했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곳도 없었습니다. 부모들은 자식들을 많이 낳았지만 낳은 자식의 반도 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식 농사는 반 농사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이렇게 농사를 짓고 자식들을 키우는 것이 즐거움이었던 옛날 사람들에게서 사랑하는 자식이 죽었을 때에는 얼마나 서러웠을까요. 어머니는 죽은 자식을 묻지 못하게 꼭 껴안고는 묻지 못하게 하였지만 친척들과 동네 사람들이 겨우 빼앗아서 아차산 기슭에다가 묻었습니다. 부모가 모르도록 얼른 가서 묻었습니다. 그러니 대충 묻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광목 천에 둘둘 말아서 묻는 것은 호사스러운 편입니다. 짚으로 엮은 거적때기에 싸서 묻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렇게 죽은 아이를 묻는 것을 몰래 보는 눈빛이 있습니다. 여우였습니다. 한 마리가 아니고 여러 마리일 경우도 있습니다. 여우들은 사람들이 내려간 다음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납니다. 아이의 무덤을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는 것입니다. 아이의 무덤은 언제나 힘세고 늙은 백여우의 몫이었습니다. 백여우는 다른 여우들을 멀리 쫓아냅니다. 그리고 밤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깊은 밤이 오면 목을 길게 뽑고 오호~ 오호~ 하고 한동안 웁니다. 동네 사람들은 이 소리가 아이의 간을 꺼내 먹기 전에 우는 백여우의 울음소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섬찍한 백여우의 울음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이불을 꼭 뒤집어쓰고 억지 잠을 잤습니다. 백여우는 이렇게 어린아이간을 백 개 꺼내 먹으면 구미호가 되어 사람으로 변신하는 요술을 부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남매들 키우던 산의마을 연자방앗간 주인은 백옥같은 얼굴의 새 아내를 맞는데
 아차산 남쪽 기슭에는 산의 마을이 있었습니다. 산의 마을에는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는 우둠물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그 중에서 연자방아간을 맡아서 일하는 젊은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부지런했습니다. 아내 역시 농사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서 대문까지 세워진 번듯한 기와집에 살았습니다. 아들과 딸까지 무럭무럭 자라주어서 행복이 넘치는 집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부부의 아내가 갑자기 아프더니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어린 남매를 두고 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남편은 새 아내를 맞았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새어머니였습니다. 새어머니는 훤칠한 키에 백옥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상중이라 하얀 소복까지 입었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하늘의 선녀가 내려온 것 같았습니다. 마음씨도 좋았습니다. 어린 남매를 친자식처럼 보살펴 주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잊어버릴 만큼 다시 행복해졌습니다. 한 해가 지나가기 전이었습니다. 잘 자라던 누이동생이 갑자기 아팠습니다. 의원(지금 의사)들이 몇 차례 왕진을 왔다 갔습니다. 그래도 나을 기색이 없었습니다. 며칠을 시름시름 앓더니 죽고 말았습니다. 온통 집안이 슬픔에 잠겼습니다. 더러는 죽은 어머니가 사랑하는 딸을 데려갔다고 수군거렸습니다. 그런데 인자하던 새어머니까지도 갑자기 냉정해졌습니다. 죽은 아이를 집에 두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친척들과 동네 사람들에게 빨리 묻으라고 다그치는 것이었습니다. 서먹거리던 어른들이 죽은 누이동생을 누비이불에 말아서 대문을 나섰습니다. 몇 사람이 삽을 들고 뒤따랐습니다. 오빠는 안타까워서 몰래 쫓아갔습니다.
 
 어른들은 아차산의 여시골(여우골)로 들어섰습니다. 지금의 광장동 장로신학대학 부근입니다. 이곳은 무덤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여우들도 많았습니다. 여우들은 아무렇게나 들어선 무덤들을 뚫고 들어가서 자기들의 집인 양 들락거렸습니다. 그 날은 늦가을이어서 잽싸게 도망가는 여우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무덤 사이의 비탈길을 뚜벅뚜벅 걸어갔습니다. 잠시 후 조금 틈새가 보이는 평평한 곳에다 죽은 누이동생을 내려놓았습니다. 엉성한 나뭇가지에 저고리를 벗어 걸었습니다. 그리고는 서로 아무 말도 없이 땅을 팠습니다. 누비이불로 감싼 누이동생을 그대로 그 흙구덩이 속에 묻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조그마한 흙 동산(봉분)을 만들어주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오빠는 앉은뱅이 소나무 밑에 숨어서 모든 것을 다 보았습니다. 어른들이 내려오기 전에 얼른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갑자기 죽은 누이동생은 아차산 여우골에 묻히고 ---
  밤이 깊어 갈수록 날씨는 쌀쌀해졌습니다. 바람소리가 감나무 가지 사이사이에서 줄곧 울었습니다. 오빠는 서럽디 서러웠습니다. 흙구덩이 속에 묻힌 누이동생 생각에 슬퍼서 누워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방안을 서성거릴 뿐이었습니다. 산속에 두고 온 누이동생이 얼마나 무서워할까 생각하니 오싹오싹 소름이 끼쳤습니다. 오빠는 용기를 냈습니다. 누이동생의 무덤을 찾아가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내친 김에 협문(夾門 ; 작은 대문)을 살짝 밀치고 집을 나섰습니다. 산기슭에 다다를수록 머리털이 쭈뼛거렸습니다. 자기 발자국 소리에 놀라기도 했지만 무서워서 뒤돌아보기는 싫었습니다. 그저 누이동생에게 가겠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앉은뱅이 소나무에 다다랐을 때입니다. 무엇인가 누이동생의 무덤으로 날아드는 것이었습니다. 가만히 숨어서 보니 하얀 여우였습니다. 말로만 듣던 백여우입니다. 백여우는 앞발을 들고 섰습니다. 사방을 두리번거렸습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백여우는 오호~ 오호~ 하고 목청껏 울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울고 난 백여우는 무덤 위를 넘나들면서 뛰었습니다. 흥이 났는지 온몸을 띄워서 몇 바퀴 돌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무덤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잽싸게 팠는지 금새 봉오리졌던 무덤이 없어져버렸습니다.  튀는 흙이 앉은뱅이 소나무 가까이 떨어졌습니다. 오빠는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겨우 돌멩이를 찾았습니다. 양손에 하나씩 들었습니다. 그리고 조심조심 백여우에게 다가갔습니다. 백여우는 무덤 구덩이 속에 묻혀서 하얀 등만 보였습니다. 오빠는 입을 꽉 다물었습니다. 그리고 젖먹은 힘까지 보태서 힘껏 돌팔매를 날렸습니다. 명중이었습니다. 백여우는 '깽'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러나 백여우는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앞발을 들고 섰습니다. 점점 커지는 것이었습니다. 하얀 기둥처럼 섰습니다. 그것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이었습니다. 오빠는 나머지 돌멩이를 오른손에 옮겨서 움켜잡았습니다. 그리고 다가갔습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여인은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여인은 새어머니였습니다.
 
"아니?"
오빠는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너였구나. 어떻게 왔니?"
언제나 다정했던 새어머니의 목소리였습니다.
"네 낮에요, ……대충대충 묻어서요, 어른들이…… 그래서요."
오빠는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나오는 대로 주섬주섬 내뱉었습니다.
"그랬구나. 나도 걱정이 됐단다. 아, 불쌍한 것, 오빠도 왔단다."
새어머니는 금새 슬픈 표정을 지었습니다.
 
 오빠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새어머니의 표정을 보고 돌팔매를 날릴 수도 없었습니다. 새어머니는 저고리 고름으로 눈물을 훔쳤습니다. 그리고 돌아서는 것이었습니다. 오빠는 새어머니의 치맛자락에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하얀 꼬리가 보였습니다. 여우, 백여우였습니다. 오빠는 다시 돌팔매를 날렸습니다. 그리고 재빨리 백여우의 꼬리를 두 손으로 움켜잡았습니다. 있는 힘을 다하여 빙빙 돌렸습니다. 자기의 몸이 날아갈 만큼 힘차게 돌렸습니다. 그리고서 엉성한 나뭇가지 사이에 메쳤습니다. '뿌둑'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백여우는 목이 부러진 채 나뭇가지 사이에 끼어서 죽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무덤 속에서 신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오빠는 헤어진 누비이불을 제치고 누이동생을 일으켜 안았습니다. 누이동생은 살아 있었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붉은 얼굴빛이 생생히 드러났습니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생긋 웃기까지 하였습니다. 오빠는 누이동생을 부축해서 여우골을 내려왔습니다. 무섭고 기뻐서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땅을 밟고 걷고 있는 지도 모를 정도였습니다.
 
  협문은 열린 채 그대로 있었습니다. 마당으로 들어섰을 때입니다. 섬뜩하게 하얀 것이 보였습니다. 올려다보는 순간 너무나 놀래서 누이동생까지 내동댕이칠 뻔했습니다. 감나무 가지에 새어머니가 목이 낀 채 늘어져 있었습니다. 혓바닥을 쭉 내밀고 죽어 있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여우골의 변신한 여우 새어머니와 마당의 감나무 가지에 끼어 죽은 새어머니는 어떤 관계가 있었을까요.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말하기조차 싫었습니다. 그 후 우둠물에는 달빛이 비치면 바람이 없어도 잔잔한 물결이 인다고 합니다. 그 물결 속에서 간혹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이 보일 때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여인이 오누이의 어머니인지, 새어머니인지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어린아이의 간을 백 개 먹어야 구미호가 되는 백여우
  백여우가 여우골에서 죽은 어린아이의 간을 꺼내 먹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백여우는 죽은 어린아이의 배를 갈라 제가 정한 순서대로 먹는다고 합니다. 물론 간을 제일먼저 먹는다고 합니다. 간을 먹을 때는 입까지 쩍쩍 다시면서 맛있게 먹는다고 합니다. 다음에는 염통, 창자들을 게걸스럽게 먹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하얀 털에 피가 묻을 까봐 혓바닥으로 핥으면서 먹는다고 합니다. 요술을 부려서 아름다운 여자로 변하려고 그러나 봅니다. 이런 말들이 사실이라면 여우골의 백여우는 여러 마리였습니다. 어느 백여우가 구미호가 되느냐는 오직 어린아이의 간에 달렸습니다. 백여우는 어떻게 해서든지 어린아이의 간을 백 개 빼 먹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동네 아이들은 밤이 되면 나다니지 않았습니다. 백여우가 너무 무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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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2/23 [17:36]   ⓒ 디지털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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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충근 2023/03/09 [20:13] 수정 | 삭제
  • 예전 전설의 고향이야기를 듣는듯 합니다.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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