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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진이야기]한다리 내시촌 이야기 3
향토사학자 김민수. 아차산 자락 한다리 내시촌에 얽힌 이야기
 
디지털광진
 
긴 칼을 들고 나타난 심참판 
  한밤중이었다. 대문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발길과 발길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은 소란스러웠다. 심술이는 두 귀를 곤두세웠다. 아무리 들으려고 해도 사람의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쿵쿵거리는 소리로 짐작하건대 무엇인가 물건들을 옮기고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그랬다. 내일 궁형을 치를 형틀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아니다. 그것은 아침에 두 놈이 와서 만들게 되어 있지 않은가. 무엇일까? 무슨 일일까? 심술이는 바짝 긴장하여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한참을 지나서 누렁이가 ‘움메’ 하고 나직이 울었다. 잠시나마 심술이의 긴장이 풀렸다. 이내 쇠 바퀴가 땅바닥에서 굴렀다. 달구지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심참판 댁은 다시 조용해졌다. 어쩌면 더 무거운 어둠이 내려앉은 것처럼 적막했다. 심술이의 온갖 상상만이 무거운 어둠을 뚫고 죽순처럼 쉴 새 없이 일어났다. 내일 구차스러운 일을 당하기 싫어서 내시촌 사람들이 몰래 떠나 버린 것일까? 아!, 아! 생각하기도 싫은 흉악스러운 몹쓸 놈과 윽박지르던 패거리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명색이 참판이 아닌가. 하찮은 한다리 사람들이 무서워서 한밤중에 줄행랑을 칠 리가 없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달구지를 끌고 가면 얼마나 갈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그럼 무엇일까?. 한봉이 누나의 오라버니를 달구지의 함거(호송감옥)에 가둬서 태워 올 것인가. 죄인도 아닌 사람을 그렇게 할 수는 없다. 딱히 그래야 할 일이 생긴다면, 오랏줄로 결박을 하고 끌고 오면 그만이 아닌가. 내시촌의 누구를 떠나 보내는 것일까?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한다리 사람들의 기세에 눌린 내시촌은 한 사람이라도 아쉬운 판이다. 누구를 내보내고 누가 남는단 말인가? 내시촌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미안하지만 내일만은 꼭 있어 줬으면, 그들마저 없다면 그 무서운 궁형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심술이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한봉이 누나에게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제발 재갈 틈새로 울음소리라도 새어 나왔으면, 그렇지 않다면 땅바닥을 긋는 소리라도 들려다오. 정말로 잠이 들었다면, 저 멀리 동해 바닷가에서 오막살이집을 짓고 오순도순 살아가는 우리들의 꿈을 꿔라. 심술이의 생각만큼이나 밤은 깊이를 알 수 없게 흘렀다.

  절거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심술이는 눈을 떴다. 잠시 지쳐서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다시 절거덕댔다. 그리고 찬바람이 심술이의 얼굴을 덮쳤다. 곳간 문이 열린 것이다. 열린 곳간 문에 하얀 그림자처럼 누가 서 있었다. 고개를 돌려 자세히 살펴보았다. 분명 아버지 심참판이었다. 뚜렷한 심참판의 몰골은 어둠 속에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심참판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나마 희미한 빛이 몰려 있는 문설주에 서서 곳간의 어둠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심술이는 기뻤다. 집안에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이 집안의 주인인 심참판이었다. 지금 어떤 벌을 받는다고 해도 밝은 날의 궁형에 비할 것인가. 그렇다. 우리들 때문에 수모를 당한 심참판에게도 화풀이를 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 화풀이야 말로 우리가 영원히 짊어지고 가야 할 죄값을 되려 덜어 주는 것이다. 심술이는 지긋이 눈을 감았다. 견디기 어려운 적막 속에서 소나기가 쏟아지듯이 실컷 두들겨 맞고 싶었다. 그렇게 더럽혀진 몸뚱이를 가지고 궁형을 맞아야 한다. 아까운 내 몸뚱이를, 아니 한봉이 누나의 몸뚱이를 한번도 거르지 않고 그놈들에게 내던져진다는 것은 너무나 억울한 일이다. 심술이는 입까지 다물었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 줄기의 회오리바람이 곳간을 휘저었다. 심술이는 문 쪽을 쳐다보았다. 그때까지도 심참판은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바람이 스쳐간 심참판의 바지 가랑이에서 무엇인가가 보였다. 그것은 휘어진 긴 칼(長刀)이었다. 심참판은 오른손에 긴칼을 들고 서 있었다. 순간 심술이는 섬뜩했다. 그 칼은 사랑방 벽걸이에 항상 걸려 있었던 장도였다. 심참판이 언젠가 불륜을 저지른 내시와 궁녀를 그들이 보는 앞에서 허리를 두 동강냈다던 그 칼이었다. 내시와 궁녀의 잘린 허리에서 쏟아진 창자가 내반원(내시廳)의 뜰에 가득 했었다는 그 무시무시한 칼이었다. 아, 아, 그래서 마음을 다지기 위해서 그토록 오래 문설주에 서 있었구나. 심술이는 모든 생각들이 어긋나자, 어이없어 웃고 싶었다. 이렇게 끝이 나는구나. 낮에 한다리 사람들에게 궁형만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다시 두었다가 허리를 두 동강내어야 속이 시원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게 사실이었다. 명색이 참판이 빈말을 하였겠는가? 그렇다. 한다리 사람들에게 이곳이 궁형장으로 사용되는 수모를 당하기 전에 우리를 처단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궁형의 고통을 넘겨주는 배려일지도 모른다. 아니다. 그건 배려가 아니다. 한다리 사람들에게 분풀이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심참판의 속셈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죽는다. 이제 마지막 순간이 왔다. 아! 아! 한봉이 누나, 한날한시에 태어나지 못했지만, 이렇게 같이 떠납시다. 서러워하지 말아요. 서로 손잡고 저승길 가라는 심참판의 배려로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면 얼마나 기뻐요. 심술이는 짧은 마디마디 생각들을 이어가면서 안절부절못하는 마음을 달랬다. 주문을 외우듯이 그랬다.
 


   갑자기 심술이는 숨을 멈췄다. 심참판이 발자국을 하나씩 떼고 있었다. 온 심술이의 신경을 밟으면서 다가섰다. 발자국이 멈추는 순간, 심술이는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내뱉었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꺼졌다. 아버지 심참판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심참판의 바지가랑이와 나란히 내려 선 칼날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 칼날이 위로 쳐들었다가 아래로 내리치면 그만이다. 허리를 두 동강 낼 것인가. 그러기에는 칼날이 동바리기둥에 박힐 것이다. 그렇다. 목을 칠 것이다. 아, 아, 죄수의 어미가 아들의 목을 단칼에 잘라 달라고 술동이와 엽전 꾸러미를 망나니 앞에 갖다 놓는다고 하지 않는가.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무딘 칼을 가지고 내 목을 단칼에 자를 수 있을까? 제발 단 한번에 끝내 줘요.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혔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부자의 인연이었던 것을……. 아, 아, 목이 떨어지지 않아서 난도질하듯이 찍어 댄다면……, 심술이는 겁에 질렸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헉, 헉 하는 신음소리가 재갈 틈새로 새어 나왔다. 그럴 때마다 동바리기둥에 묶인 윗몸은 방아깨비처럼 까닥거렸다. 그렇게 자라가 목을 빼듯이 가능한 길게 늘렸다. 그래도 칼날에서는 눈을 떼지 않았다. 아예 깜박거리지도 않았다. 입처럼 눈만 커져 갔다.

   심참판이 칼을 높이 치켜드는 순간, 심술이는 까무러졌다. 그리고 꼬꾸라졌다. 기어이 칼날을 내리친 것이다. 차가운 칼등이 심술이의 이마를 때렸다. 심술이는 바동거리며 겨우 앉았다. 심술이는 살아 있었다. 심참판은 심술이를 묶었던 동바리기둥의 동아줄을 내리친 것이다. 심술이는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자기 몸뚱이가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야 허리를 두 동강 내려나보다. 한번의 고통으로 끝내 주기에는 너무 억울했던 것일까? 죽음의 순간을 막 넘긴 심술이는 한결 담담해졌다. 그리고 아버지 심참판에 대한 연민의 정이 뭉클 솟구쳤다. 그것은 살려줄 것 같은 기대로 이어졌다. 기대는 맞았다. 심참판은 칼날을 심술이의 묶인 손목 사이에 넣었다. 그 묶인 동아줄도 끊어버렸다. 발목까지도 그렇게 끊어버렸다. 그리고서 천천히 걸었다. 한봉이 누나가 묶인 동바리기동에 다가섰다. 그리고 차근차근 한봉이 누나의 결박을 끊었다.

  “재갈을 풀어줘라.”
  카랑카랑한 심참판의 목소리가 어둠을 울렸다. 심술이는 그제서야 허겁지겁 한봉이 누나에게로 기어갔다. 오금이 저려서 일어설 수가 없어서였다. 무릎을 깔고 앉은 채로 한봉이 누나의 재갈을 풀었다. 그리고 나서 한봉이 누나의 무릎을 돌려 심참판과 마주하게 했다. 자신의 재갈도 풀었다. 그리고 바로 심참판 앞에 엎디었다. 한동안 적막이 흘렀다. 심참판이 걸그렁거리는 숨소리가 적막을 매듭지어 갔다. 엎드린 심술이는 눈물이 쏟아졌다. 그것은 기쁨의 눈물이 아니었다. 죽고 싶도록 미안한 마음과 지워 버리고 싶은 지난날들이 뒤범벅이 되어서 되살아났다. 생각할수록 서러웠다. 끝내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한봉이 누나에게서도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심참판은 눈을 감고 고개를 젖힌 채로 서 있었다. 복받치는 감정들이 얽힌 곳간은 초상집과 같았다.

  “그만 하거라.”
  심참판이 입을 떼었다. 심참판의 목소리도 울렸다. 심술이는 헉, 헉 숨을 들이마셨다. 들먹이던 한봉이 누나의 어깨도 차츰 가라앉았다. 그렇게 또 적막이 흘렀다. 심참판은 칼끝으로 땅바닥을 짚었다. 두 손을 칼자루에 모아서 버텼다.
  “너희들은 바로 토막나루로 가거라. 거기 유상책 내외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심참판은 살려주는 것만이 아니었다. 토막나루라고 하지 않았던가. 배를 태워서 멀리 도망시킬 궁리까지 마친 것이다. 그것도 둘 다 보내주는 것이다. 심술이와 한봉이 누나는 그저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뒤섞여서 흐느꼈다. 간혹 ‘아버지’, ‘대감’ 하는 애절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만 됐다. 어서 가거라. 강화도 모퉁이를 돌아서면, 내가 따로 떼어 놓아 두었던 옹기소금밭이 있다. 살림집도 있으니, 너희들 살기에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아, 아. 심참판은 배은망덕한 우리에게 살아갈 둥지까지 마련해 줬다. 그것도 애지중지하던 옹기소금밭을 내준 것이다. 흙으로 다진 토판소금밭보다 사금파리를 깔아서 소출이 두세 배 더 나온다는 옹기소금밭을 살림 밑천으로 내준 것이다.
  “아버지, 죽여주십시오. 어찌 제가 살아갈 염치가 있겠습니까?”
  심술이는 정말로 괴로웠다. 자기 때문에 심참판 댁이 풍비박산이 났는데, 이런 은혜까지 받다니, 어떻게 해야 올바른 처신인지, 헤아릴 수가 없었다.
  “대감, 이년이 모든 죄를 다 받겠습니다. 심술이만 보내시고, 저를 남겨주세요. 죽도록 대감을 모시겠습니다.”
  한봉이 누나는 의외로 침착했다. 고개를 들고 열린 곳간 문 쪽을 바라보면서 나직이 말했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바깥에 눈빛을 멈췄다. 그것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곳에 남아 있겠다는 각오와 같았다.
  “아닙니다. 아버지. 저도 죽든지, 살든지 여기 남아 있겠습니다.”
  심술이는 무릎을 세우고 그 걸음으로 나서면서 애원했다.
  “고맙구나, 허, 정말 고맙구나.”
  심참판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내뱉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어찌 너희들하고 얼굴을 맞대고 살 것이냐. 그것이야 너희 연놈을 베어버리면 그만이다만……”

  심참판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다시 숨을 몰아서 쉬었다. 숨소리에 맞춰서 가슴도 털석거렸다. 그럴수록 칼자루를 더 누르고 버티었다. 오랫동안 움푹 패인 두 눈을 감았다가 떴다.
  “내 평생 남자의 씨를 말려서 산 것이 한이었다. 이제 와서 어찌 조상의 씨를 자를 수 있겠느냐. 어쨌거나 심(沈)씨 집안의 씨인 것을……”
  심참판은 말끝을 맺지 못했다. 결국 손등을 내저으면서 말을 이었다.
  “어서 떠나거라. 천형(천벌)은 나 혼자면 족하다.”
  “아닙니다. 아버지. 저 놈들에게 무슨 욕을 당하실려구요. 제가 있겠습니다. 죄 값을 받겠습니다, 아버지.”
  심술이는 심참판의 바지 가랑이를 잡고 울부짖었다. 심참판은 한봉이 누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나서 바로 바지 가랑이를 잡은 심술이의 손을 칼등으로 쳤다.
  “이 놈, 어서 떠나라고 하지 않느냐. 너희 연놈이 떠나야 일을 마칠 수 있어.”
  어느새 심참판의 목소리는 날카로워졌다. 심참판은 고개를 돌려 한봉이 누나를 쳐다봤다.
  “철이 든 네 년이 이 놈을 끌고 가거라. 시끄럽게 하지말고.”

  심참판은 모든 일들을 꿰맞추고 있었다. 머뭇거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한봉이 누나는 일어섰다. 심술이에게 다가갔다. 심술이를 일으켜 세워서 곳간 문을 나섰다. 흐느끼는 심술이를 부축해서 사랑채의 마당으로 나왔다. 사방은 모든 것들이 열려 있었다. 사랑방도, 샛문도, 대문까지도 모두 휑하니 열려 있었다. 빈집이었다. 심술이는 한봉이 누나에게 잡힌 겨드랑이를 뿌리쳤다. 그리고 돌아섰다. 마당에 나와 서 있는 심참판을 보고 다시 꿇어앉았다.
  “못 떠납니다, 아버지. 아버지를 혼자 두고 떠날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
  심술이는 울먹였다. 그리고 쉴 새 없이 뇌이었다.
  “아버지 혼자 남으셔서 욕보실 것을 뻔히 알면서 어찌 떠날 수가 있겠습니까? 아버지.”
  “내가 욕을 본다고? 누구에게 말이냐? 한다리놈들에게 말이냐? 명색이 나랏님의 수족이었던 내다. 누가 나를 업신여긴단 말이냐? 너희 연놈이 떠나주는 것이 나를 덜 욕보이는 것이다. 어서 떠나거라. 꼴도 보기 싫다.”
  심참판은 여유를 주지 않았다. 말투에서부터 냉정해졌다.
  “아버지. 저희가 여기를 떠난들 살아있는 목숨이겠습니까? 부끄러움을 안고 사는 것은 죽음만도 못합니다.”
  심참판은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나직이 말했다.
  “너희가 떠나주는 것이 모두가 영원히 사는 길이다.”
  그리고 눈을 떴다. 한봉이 누나에게 말했다.
  “무엇하는가? 어서 데리고 가라.”
  갑자기 친근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어길 수 없는 무게를 느꼈다. 한봉이 누나는 얼른 심술이의 방 앞의 섬돌에 놓인 신발을 낚아챘다. 그리고 심술이의 겨드랑이를 잡고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 그들은 대문을 벗어났다. 몰래몰래 빠져 나왔던 대문을 심참판이 보는 앞에서 걸어서 나왔다. 문설주 사이에서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심참판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모든 것을 어둠으로 덮고 싶었던 모양이다.


한밤중 내시촌은 심 참판과 함께 불타오르고 
  강바람은 매서웠다. 멋대로 쓰러져 얽힌 갈대밭 사이사이에 하얀 눈들이 자투리 지어 쌓여 있었다. 황량한 들녘이었다. 둘이는 두 손을 꼭 잡고 오솔길을 걸었다. 길바닥의 살얼음들이 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서로 머뭇거리다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내시촌을 뒤돌아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날아갈 것 같은 날렵한 처마들의 윤곽이 드러났다. 이제는 다시 보지 못할 추억의 집이다. 한때는 잔칫집처럼 흥청거렸던 내시촌. 네 사람이 메는 사인교 가마에 앉아서 나들이하였던 심참판, 그 행차를 따라 다니던 군속(群俗)들, 안채에서는 언제나 자상하였던 큰 마님이 계셨다. 큰 마님의 사랑이 너무 버거워서 귀찮았던 그 시절, 그래서 안채가 떠나가라고 큰 소리로 글을 읽으면 안방에 둘러앉은 내시 마누라들이 배꼽을 쥐고 한바탕 웃었다. 그뿐이랴, 방긋방긋 웃으면서 금새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하님이. 그 동그란 얼굴을 갸우뚱거리며 도란도란 도련님을 부르는 소리. 아, 아, 그 시절은 이제는 오지 않는다. 언제 다시 이곳을 찾아올 수 있을까? 그때까지 심참판은 살아 있을까? 우리를 위하여 저 덩그런 내시촌에 심참판은 혼자 있다. 둘이는 서러움이 복받쳤다. 눈물이 앞을 가려 길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저 걸었다.

  토막나루의 배매기(선착장)에는 당도리배가 바짝 붙어 있었다. 뱃머리와 고물(배끝)에 나누어 큰 뜸(짐) 두 개가 쌓여 있었다. 우리를 알아보고 나선 것은 할멈이었다.
  “어서 오게, 어서.”
  할멈은 한봉이 누나에게 마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이 편했다. 유상책까지 나서서 거들었다. 한봉이 누나는 덕판(널다리)을 밟고 배에 올라탔다. 할멈은 한봉이 누나에게 장옷을 씌워 줬다. 심술이까지 배에 오르자, 유상책은 말뚝에서 벌이줄들을 풀었다. 그리고 삿대로 배매기를 밀었다. 배는 소리 없이 배매기에서 떨어져 나갔다. 삿대를 거둔 유상책은 노를 저었다. 배는 찰싹거리며 조금씩 강 가운데로 밀려갔다. 그제서야 멀리 한다리 마을이 보였다. 어둠 속에 묻혀서 웅크리고 있는 한다리 마을은 엎어진 바가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처럼 정겨웠다. 그 마을 앞을 지나는 개울 길을 따라서 산기슭에 다다르면 내시촌이 있다. 산기슭을 대신해서 다시 뻗은 것 같은 처마들이 큰 탑처럼 층계 지어 있었다. 그만큼 눈에 익은 내시촌은 금방 알아볼 수 있게 가까이 다가왔다. 가까이 다가오는 것만이 아니었다. 훤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바로 불길이 치솟았다. 내시촌 곳곳에서 타오르는 불길이었다. 모두 넋을 잃었다. 할멈은 한봉이 누나를 끌어안았다. 심술이는 고물까지 뛰쳐나갔다. 노걸이를 잡고 쳐다볼 뿐이었다.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삽시간에 불길은 내시촌을 떠받들었다. 금방 하늘로 떠오를 것 같이 활활 타올랐다. 모든 것을 안고 날아갈 것처럼 내시촌은 불길에 휩싸였다. 그러나 거기에는 심참판이 있었다. 한 평생을 말 못할 한으로 살았던 한 노인이 있었다. 그 한을 되려 사랑으로 베푼 노인이었다. 마지막 남은 명예를 더럽히지 않으려고 몽땅 살라버리고 떠나는 노인이었다. 아, 아. 그 고결함을, 그 자애로움을, 모두의 가슴에서 펑펑 내리는 빗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시촌은 불길 속에 파묻혔다. 불륜의 굴레도, 증오의 넋두리도, 낡아빠진 껍데기들도, 모두 모두 태워서 황홀한 불꽃으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무도, 아무도, 심참판의 숭고한 결단에 숨소리도 낼 수 없었다. 가슴 속으로 울음을 삼켰다. 고귀한 영혼이 불꽃이 되어 하늘로 오르는 것을 그렇게 보고만 있었다.

  “대감께서 끝을 내셨군.”
  유상책은 더는 말이 없었다. 노를 젖혀서 물살을 밀었다. 멋대로 흘러가는 배의 방향을 바로잡았다. 그리고 나서 돛대의 마루줄을 잡아 당겼다. 황포돛은 활대를 따라 오르면서 펴졌다. 황포돛 사이사이의 아닷줄을 모아 키잡이 옆의 돛붙쟁이에 걸었다. 강바람을 바로 받은 활포돛은 반달처럼 팽팽해졌다. 황포돛배는 강물을 갈랐다. 점점 내시촌에서 멀어져 갔다. 내시촌의 하늘만 훤하게 보였다. 비낭고개(현재의 워커힐 고개)를 넘어갈 때에는 할멈과 한봉이 누나도 일어섰다. 마지막으로 내시촌을 보기 위해서, 아니 안타까움에 못 견뎌서 서로가 부둥켜안았다. 그제서야 삼켰던 울음을 토했다. 피끓는 울음소리는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그렇게 황포돛배는 비낭고개를 넘었다. 황포돛만이 어둠 속으로 빨려갔다. 이내 어둠에 묻혔다. 모든 것이…….
 


한다리 마을에 남아 있는 내시촌의 내력 
  한다리 마을에 내시촌이 있었다는 사실은 마을 표지돌에서 확인된다. 이곳의 개울을 건너 다니기 위해 외다리가 놓여 있었는데, 내시촌이 들어서면서 가마를 들이기 위해 화강석으로 된 큰 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큰 다리가 한(漢)다리이다. 『구리시지(九里市誌, 上 992쪽)』에서는 시루봉을 설명하여 ‘한다리에 살던 내시들과 남양 홍씨들 간에 땅 싸움이 벌어져 달리 시위봉이라고도 불렀다’ 라고 하였다. 한다리에 살고 있는 방노덕(方奴德;1924년생) 옹에 의하면, 지금 살아있다면 백세가 훨씬 넘었을 유씨, 박씨, 노씨 등의 내시 후손(?)들이 그들의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시루봉 주위의 땅들을 팔고 갔다고 한다.

  이러한 내시촌이 있었던 곳은 구리시 교문동 648번지 일대이다. 시루봉 능선이 남쪽으로 뻗어서 끝나 가는 산비탈의 평평한 곳에 있다. 지금도 내시촌이 있었던 자리에는 기와와 그릇 깨어진 조각들을 쉽게 주울 수 있다. 더군다나 소금움막이 있었던 곳에는 「충남염업」이라고 하여 꽃소금을 만드는 소금공장이 있다. 이렇듯 한다리 마을은 내시들의 흔적들을 간직한 곳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젊은 남녀가 사랑을 불태웠고, 그 사랑을 지켜 주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불태운 늙은 내시의 애틋한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구리시 교문동 648번지 일대에 남아있는 한다리마을 표시석     © 디지털광진

▲한다리마을 내시 집터     © 디지털광진

 
▲한다리마을 전경. 구리시 교문동 648번지 일대     © 디지털광진

 
▲한다리 마을비     © 디지털광진

 
기사입력: 2007/07/07 [16:06]  최종편집: ⓒ 디지털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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