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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진이야기]한다리 내시촌 이야기1
향토사학자 김민수. 아차산 자락 한다리 내시촌에 얽힌 이야기
 
김민수 시민기자
 
일명 아차산 박사로 불리는 광진구의 대표적인 향토사학자 김민수 선생이 아차산 자락 구리시 교문동의 한다리 내시촌에 얽힌 이야기를 재구성하여 「디지털광진」에 보내왔습니다.
 
한다리 내시촌 이야기는 김민수 선생의 순수 창작물로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고 있는 만큼 저자의 허락 없이 다른 사이트로 옮기거나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분량이 많아 3회에 나눠 게재합니다.

 
▲구리시 교문동 648번지 일대에 남아있는 한다리마을 표시석     © 디지털광진


 
                    한다리 내시촌 이야기 1
 
                        향토사학자 김민수
  

  내시(內侍)들은 궁궐 안에서 잡다한 일들을 맡아보는 남자 관원이었다. 자연히 궁궐 안의 여인들과 만나는 일들이 많았다. 그래서 남녀 사이에서 애정이 생길까 봐서 아예 남자 구실을 못하게 만들어 놓았다. 더러는 어릴 적에 강아지에게 물려 성기를 잘린 내시들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일정한 과정을 거쳐 선발되었다. 처지가 낮은 사람들이 자기의 아들을 내시로 보내어서 출세도 시키고 녹봉(월급)도 받아서 어려운 형편을 펴보려고 하였다. 이렇게 응시하여 선발된 남자 아이들은 시술을 거쳐 내시가 되었다. 중국에서는 고환과 남근(男根) 모두를 없앴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환만을 떼어내었다.

  이러한 내시들과 궁궐 안의 여인들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도 종종 있었다. 성숙한 세자빈과 젊은 내시의 사랑, 가짜 내시와 궁녀의 사랑, 그리고 동성애 등 갖가지의 애정 행각들이 겹겹이 둘러싸인 궁궐에서도 자주 일어났다. 물론 들키면 여러 내시와 궁녀들이 보는 앞에서 목을 베거나 허리를 자르는 참형이 치러졌다. 그래서 내명부(궁궐여인)의 기강을 바로잡았다. 이러한 사건들은 궁궐 안에서 있었던 일이므로 옛 기록에 남아있다. 허나 내시와 가족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는 알려진 것이 없다. 백성들과 섞여 살 수 없었던 내시들은 그들만이 모여 살았다. 그것이 내시촌이다. 대표적인 내시촌은 화자동(火者洞)이다. 화자란 고환을 떼어내고 그 자리를 불로 지져서 마무리시켰다는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러한 화자동이 변하여 지금의 서울 종로구의 효자동이다.

  내시들은 왕과 그 가족들의 시중을 들었으므로 대단한 권세를 누렸다. 뿐만 아니라 벼슬도 높았다. 더러는 종2품의 상선(尙膳)에 오른 내시도 있었다. 따라서 많은 재물도 모았다. 이러한 재물을 앞세워 양갓집의 처녀까지도 아내로 삼았다. 또한 성씨가 달라도 어린 내시를 양자로 맞아들여서 대를 이었다. 나중에는 친척 중에서 온전한 아이를 양자로 삼아 모은 재산을 물려주었다.

  문제는 무엇하나 부러울 것 없이 사는 내시들이었지만 밤은 고통의 나날이었다. 더군다나 온전한 내시 아내들의 터질 것 같은 욕정은 아무리 담벽을 높이 쌓아도 소용이 없었다. 더러는 외간 남자를 불러들여서 통정하였다. 심지어는 힘센 종들을 시켜서 한양으로 나들이 온 선비들을 보쌈하여 오기까지도 하였다. 아예 줄행랑을 쳐서 새살림을 꾸렸다. 이럴 경우에는 글자를 아는 산사(山寺)의 젊은 스님을 유혹하여 멀리 가서 살았다.


아차산 기슭에 자리잡은 은퇴한 내시 심참판 
  이러한 내시들이 살았던 곳이 아차산 기슭에도 있었다. 먹골배로 유명한 중랑구의 먹골은 내시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다. 후손이 없이 사는 사람들이라고 하여 ‘막막하다’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검은 먹물에 비유되었다. 희망이 없는 시커먼 고을이 먹골인 것이다. 이와는 달리 아차산의 양지 바른 남녘에는 기세가 등등한 내시 가문이 있었다. 종2품 상선을 지낸 심참판의 집이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의 처마가 춤추는 여인의 소매 깃처럼 이어져 있었다. 그뿐이랴, 가마에서 내려서 개울을 건너는 것도 번거롭다고 하여 아예 넓은 돌다리를 놓았다. 이것이 한다리이다. 한다리는 외다리에 비하여 넓고 큰 다리라는 뜻이다. 하얀 화강석을 사용하여 놓은 다리였다. 후에 일본 사람들은 한다리(大橋)를 흰다리라고 잘못 알고 백교(白橋)라고 바꿨다.

  한다리에는 토박이들도 살고 있었다. 더러는 벼슬을 지냈던 가문의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남양 홍씨 문중은 윗대에서 좌의정을 지낸 이도 있었다. 그래서 그 가문에서 왕의 사위인 부마도 나왔다. 당연히 토박이들과 내시촌 사람들 간에는 보이지 않는 껄끄러움이 있었다. 한다리 사람들은 내시촌 사람들을 얕잡아보았다. 그러나 맞설 수는 없었다. 은퇴하여 이곳까지 왔지만, 지금까지도 궁궐 출입을 간간이 하는 실세였다. 하여 나라로부터 받은 사패지가 아차산 능선의 한 줄기를 아우를 만큼 넓었다. 그래서 땅을 놓고 한다리 사람들과 다투는 일도 많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얽히고 설킨 여러 가지 사건들을 견뎌내지 못하고 내시촌은 몰락하였다. 그 과정의 이야기이다.

돈 많은 심참판은 대를 잇기 위해 심술이를 양자로 삼고 
  심참판이 언제, 무엇 때문에 내시가 되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심참판은 여느 내시들처럼 천한 출신은 아니었다. 천마산 기슭의 청송 심씨들이 모여 사는 양지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에 서당을 다닌 터라 웬만한 한문은 읽고 쓸 수 있었다. 그래서 내시들 중에서 출세가 빨랐다. 왕의 말씀을 전하는 승전빗내시 승전관(承傳官)을 거쳐서 일약 내시의 꽃인 종2품의 상선에 올랐었다. 모든 내시들이 그러하듯이 남자의 것을 없애버린 탓에 심참판 또한 겉늙었다. 회갑을 맞기 서너 해 전에 벼슬을 내놓고 이곳 한다리 마을로 내려왔다. 그때 왕으로부터 받은 사패지가 이곳이었다. 아마도 고향과 궁궐의 중간지점으로 이곳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싶다. 앞에는 토막나루(구리시 토평동)가 있어서 뱃길을 이용하기도 좋았다. 그래서인지 심참판은 은퇴한 관리처럼 한가롭게 지내지 않았다. 논과 밭을 사들여서 소작을 주었다. 서해 바닷가에서 나는 소금을 거두어 두었다가 값이 나갈 때에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팔았다. 워낙 돈이 많아서 웬만한 도방(도매상)들은 심참판에게 맞설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심참판의 돈줄이 궁궐에 있는 지체 높은 여인에게서 나온다는 소문이 무성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궁궐에 나들이를 할 때에는 심참판의 가마 뒤에 짐 가마가 꼭 뒤따랐다.

  한다리의 심참판 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였다. 곳간과 헛간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이것도 모자라서 행랑채를 더러 곳간으로 사용하였다. 부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대개가 궁궐에서 쫓겨온 내시들이었다. 결혼한 내시들은 심참판 댁과 이웃하여 제법 살만한 기와집을 지어나갔다. 왕실의 매사냥을 담당하였던 응방(鷹坊)내시 유상책(尙冊)도 이곳에 눌러 앉았다. 궁궐의 창고를 관리하였던 박상탕(尙帑)·노상탕도 이곳에서 가정을 꾸렸다. 두 상탕은 소작료로 도지세를 받는 일을 주로 하였다. 그래서 외양간 앞에는 수레들이 열을 지어 있었다. 달구지들은 추수 때에 곡물로 받아들인 도지세를 걷어들이기도 하고, 가난한 소작농들에게 쌀을 꾸어 주고 가을에 받아들이는 장리쌀(長利)을 싣고 다녔다. 더러 넘치는 곳간의 쌀가마니들을 한양의 싸전(쌀가게)으로 내다 팔기도 하였다. 응방내시였던 유상책만은 따로 소금움막을 맡았다. 그리고 한강변의 토막나루에 메어 놓은 당도리배(海船)를 관리하였다. 소금을 사러 갈 때에만 노련한 뱃사람들을 불러서 부렸다. 땅이 질어서 달구지들이 멀리 다니지 못할 때에도 많은 물건들을 싣고 두모포(살곶이다리)까지 운반도 하였다. 이렇듯 한다리의 내시촌은 한강변에 새로 생긴 도방이나 다름이 없었다.
 


  어느덧 심참판이 회갑을 맞이하게 되었다. 심참판의 사랑채에는 내시들이 모여 있었다. 내시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유상책이 먼저 말을 꺼냈다.
  “대감, 얼마 있으면 대감께서 회갑연을 맞을 텐데요.”
다들 아는 사실을 말머리로 꺼내자, 모두가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다.
   “우리들이야 궁색한 출신이지만, 대감께서야 다르지 않습니까? 종2품 참판까지 오르셨습니다. 일생에 한번 있는 회갑 날에 자손으로부터 술잔을 받아보지 못해서야 어디 섭섭해서 되겠습니까?”
  내시들이 양자를 두어 가문을 잇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재력도 있어야 했고, 벼슬도 높아야 했다. 그래도 내시의 양자가 되는 것을 꺼렸다. 그래서 성씨가 달라도 어린 내시를 양자로 삼아서 그가 죽고 난 다음에 제사상을 받아보는 억지 춘향이 꼴이었다. 이와 같이 양자의 문제는 모든 내시들이 속앓이를 하는 것이어서 마음이 상할까봐 서로들 말을 꺼내지 않았다.

  “양자를 들이라는 말이군.”
  심참판은 길게 숨을 내쉬면서 어깨를 두어 번 끄덕였다.
  “나는 봤네, 구파발이 그렇고 쌍문리도 그렇네, 양주 진관에 이르기까지 온전한 내시들의 묘를 본적이 없네. 내가 궁에 있을 때는 이런 딱한 사정을 알고 있어서 지방관아에 내시의 묘들을 잘 관리하여 달라고 부탁한 일까지 있네.”
심참판이 담뱃대를 내밀자, 화약방(火藥房)내시를 지내다가 왼손을 다쳤던 허상세(尙洗)가 얼른 화통(성냥)을 꺼내서 불을 댕겨드렸다.
  “필요 없는 일일세, 핏줄이 아니고서야. 자네들도 그래서 양자를 들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죽을 때쯤 돼서 한 재산 부처님께 공양하고 부도탑 자리 하나 얻으면 될 성싶네.”

  심참판의 긴 한숨이 담배 연기로 번져 나갔다.
  “저희들이야 옳게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여 쫓겨났습니다만, 대감께서야 무엇이 부족합니까? 내시부의 가장 웃어른이셨고, 지금도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궁궐 심부름을 하지 않습니까? 후손을 두시고 사당에서 배향을 받으셔야지요. 우리네들도 가문의 친척 아이들을 양자로 삼아도 누가 탓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사리가 밝은 노상탕이 또박또박 말을 맺었다. 그렇게 여러 이야기가 오고 갔다. 저녁상에 반주까지 곁들여져서 심참판 댁의 사랑채는 자시(1時쯤)를 넘겨서 호롱불이 꺼졌다. 결론은 양자를 들이기로 하였다. 그것도 심참판의 고향인 양지마을에서 외로운 친척 아이를 데려 오기로 작정하였다. 시일이 촉박하므로 노상탕이 이 일을 맡아서 진행시키기로 하였다.

   흐르는 세월만큼 한다리 내시촌은 번성하였다. 소금창고도 늘렸다. 소금움막에는 평부솥을 더 걸어서 꽃소금을 많이 만들어 내었다. 비싼 값으로 팔기 위해서다. 좋은 논과 밭들을 사들여 농지를 넓혔다. 도지세로 받은 곡물이 곳간과 헛간에 넘쳐났다. 그래서 아예 연자방아간을 지어서 곡식을 찧었다. 한양 싸전으로 나가는 달구지들도 거의 쉬는 날이 없었다. 그뿐이랴, 양지마을에서 데려온 양자 심술이는 어느덧 열 다섯이 되었다. 안채에서는 심술이의 글 읽는 소리가 옥구슬 굴러가듯이 샛문을 넘어 사랑채까지 들려왔다. 앞 개울의 흐르는 물소리까지 곁들인 심참판 댁은 완연한 봄날이었다. 안방 마님은 심술이가 글을 읽을 때에는 다듬이질 소리도 내지 못하게 하였다. 사랑채의 심참판은 뒷짐을 지고 샛문 근처를 서성거리면서 심술이의 글 읽는 소리를 듣는 것이 낙이 되었다. 이제 심참판 댁의 봄날은 양자 심술이의 혼사 이야기로 꽃피워 갔다.
 

심참판이 새 안방마님으로 들인 한봉이는 심술이의 고향 이웃 누나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안방 마님께서 음식을 잘못 잡수어서 체한 것이다. 안골의 박첨지, 배탈고개의 최생원 등 내노라 하는 의원들이 다녀갔지만, 나을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내시의 아내여서 바깥 출입을 하지 않는 것도 원인이었겠지만, 심참판보다 다섯 살이나 위인 칠순이었다. 미음으로 며칠을 연명하다가 그냥 돌아가셨다. 안방 마님은 내시촌의 뒷산 능선을 따라서 올라간 시루봉 밑에 묻혔다. 시루봉은 떡 시루처럼 생긴 봉우리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심술이의 혼사는 탈상 이후로 미루어졌다. 남편을 두고 앞서 죽었으므로 안방 마님의 탈상은 일 년으로 줄이기로 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안방 마님의 빈자리였다. 상중이라도 안방 마님의 자리는 비워둘 수 없다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의견이었다. 내시 집안의 안살림은 다른 여염집과는 달라서 은밀한 일들이 많았다. 더군다나 심참판 댁의 안채는 내시촌의 아녀자들을 알게 모르게 수렴하는 곳이다. 아내의 장례를 치른 심참판은 예전 같지 않았다. 수척한 몰골에 피곤한 기색이 떠나지 않았다. 모든 일이 귀찮은 듯이 아랫사람들에게 앞일을 내맡겼다. 결국 내시들은 서둘러서 새 안방 마님을 모셔오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새 안방 마님을 모셔오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시지마는 명색이 참판이었다. 과부를 모셔다가 안방에 앉힐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여염집의 아무 처녀나 데려올 수도 없었다. 양가집의 처녀가 무엇이 부족해서 늙은 내시의 후처로 올 것인가. 생각하다 못한 내시들은 혼기를 놓친 과년한 양가집의 처녀를 고르기로 하였다. 그것도 생활이 궁핍하여 혼수 돈을 넉넉히 주면 두말없이 승낙할 곳을 고르기로 하였다. 심참판이 고향에 연연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 주위에서 골랐다. 바로 심참판의 고향의 윗 동네인 금곡 마을의 청주 한씨 집안의 처녀였다. 금곡 마을은 청주 한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었다. 유독 이 처녀의 집만 몰락하였다. 처녀는 오라버니의 식솔들과 같이 살고 있었다. 그 오라버니는 마침 심참판 댁의 논과 밭을 빌어서 소작하는 처지였다. 형세가 초라하여 매파는 고사하고 뚜쟁이도 다녀간 바가 없었다. 그래서 나이가 열 여덟이나 되도록 혼담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조건은 너무도 좋았다. 부쳐 먹는 심참판의 논과 밭을 몽땅 처녀의 오라버니에게 주기로 한 것이다. 그 뿐이랴, 혼례에 들어가는 물자도 모두 대주기로 하였다. 과년한 누이 하나 팔아서 팔자를 고친 것은 처녀의 오라버니였다.

  처가집에서 초례(醮禮)를 치른 심참판은 말을 타고 앞서서 왔다. 뒤따라 한씨 신부를 태운 가마가 들어섰다. 시집살이가 시작되는 것으로써 이를 신행(新行)이라고 한다. 소문 없이 치른 혼례여서 하객들은 내시촌 사람들뿐이었다. 아녀자들은 교자(음식)상을 차리느라고 바빴다. 나이 든 유상책 내시가 예법에 따라 신혼부부들이 치러야 할 절차를 차근차근 진행시켰다. 하늘, 땅, 조상 모두에게 폐백을 드렸다. 그리고 나서 예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기 위해서 심참판과 한씨 새댁은 안채로 들어갔다. 잠시 후 안채에서 기별이 왔다. 내림상을 받은 신부에게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양자인 심술이가 먼저 안방으로 들어섰다. 아버지, 어머니에게 큰절을 올렸다. 그리고 나서 무릎을 꿇고 앉아 말씀을 기다렸다. 순간 심술이는 자기의 눈을 의심했다. 분명 새어머니는 오 년 전에 윗 동네에 살았던 한봉이 누나였다. 어린 나이에 장군(분뇨통)을 지게에 지고 날랐던 억척스러운 한봉이 누나였다. 그새 당당한 어른이 되어 있었다. 떡 벌어진 어깨와 부리부리한 눈매는 여자라고 하기보다는 믿음직스러운 청년같이 보였다. 심술이는 새어머니인 한봉이 누나와 눈길이 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심참판 댁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안채에 있었던 심술이가 바깥채로 나온 것이었다. 사랑방과 마주 보는 문간방으로 옮겼다. 아마도 젊은 새어머니와 자주 맞닥뜨리는 것이 거북스러워서였을 것이다. 심참판은 신접살림을 차린 안채를 드나드는 일이 별로 없었다. 더러는 사랑채에서 잤다. 그러다가 아예 안채에는 출입을 하지 않았다. 안채에서는 한달 동안은 조용했다. 서로 서먹서먹한 기색이 없어지자, 화기가 돌기 시작했다. 다듬이질 소리보다도 노랫가락이 바깥채까지 들려왔다. 창부타령, 태평가, 청춘가 등 신이 나는 장단이었다. 노(老)마님에게서 짓눌렸던 아낙네들이 새 마님에게 한풀이나 하듯이 합창하였다. 그래서인지 매미의 울음소리도 그쳤다. 간혹 심술이가 문안을 드리면, 새어머니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웃어 보였다. 햇볕에 그을렸던 새어머니의 얼굴은 어느새 거두어 지고 연지처럼 붉은 속살이 피어올랐다. 하얀 모시 적삼에 떠받친 새어머니의 얼굴은 금새 꽃망울을 터트린 연꽃 같았다.

  벌말은 강바람을 타고 오곡이 익어 가는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물결쳤다. 조금 있으면, 심참판 댁은 도지세[소작료] 받기에 바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준비는 하지 않고 말쑥하게 차려 입은 거간꾼[仲介人]들이 들락거렸다. 모두 일손을 놓고 들락거리는 거간꾼들만 멀뚱멀뚱 바라볼 뿐이었다. 보름 여가 지나더니 거간꾼들은 발길을 끊었다. 그새 심참판은 한다리의 문전옥답(門前沃畓) 열다섯 마지기만 놔두고 소작을 내주었던 논과 밭을 죄다 팔았다고 한다. 궁궐에서 급한 기별이 와서 싼 값에 논과 밭을 팔고 그 돈을 몽땅 궁궐로 가져간 것이다. 며칠 후 행랑채 앞에는 두 달구지가 짐을 가득 실은 채 서 있었다. 사랑채를 들르고 나온 내시들과 함께 머슴들이 달구지를 끌고 어디론가 떠났다. 행랑채의 빈방들은 통쇠(자물·열)가 채워졌다. 외양간에는 벗들을 떠나 보낸 외로운 누렁이 한 마리가 안절부절 서성거렸다.

  그 해 추수는 모두가 나서서 거들었다. 모두라고 해야 늙은 응방내시 유상책 내외와 왼손을 다친 화약방내시 허상세 뿐이었다. 허상세는 두 상탕(朴·魯)이 살았던 집 중에서 자그마한 박상탕의 집으로 옮겼었다. 그래서 새 마님과 하님이도 거들었다. 하님이는 역병으로 부모를 여읜 것을 가엽게 여겨 노마님께서 거둔 여자 아이였다. 몸종을 높여서 하님이라고 부르는데 심참판 댁에서는 그냥 이름으로 불렀다. 하님이는 너무 어렸고, 유상책의 아내는 너무 늙었다. 그래서 점심이나 참을 담은 광주리를 이고 다닐 수가 없었다. 새 마님이 광주리를 이고, 뒤따라 하님이가 물동이를 안고 왔다. 광주리를 내리고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는 새 마님은 생기가 넘쳤다. 새 마님께서 추수도 거들려고 하였지만, 모두가 말려서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집안 일은 여간 바쁜 것이 아니었다. 이제 부엌 일은 새 마님과 하님이의 몫이 되었다. 심참판 댁은 추수가 끝나서도 바빴다. 유일한 돈줄인 소금장사는 그대로 하였기 때문이다. 유상책과 허상세는 소금움막에서 평부솥을 걸고 불을 때서 꽃소금을 만드는 일을 계속했다. 유상책이 당도리배를 타고 바닷소금을 사러 가거나 달구지에 꽃소금을 싣고 나가면, 소금움막은 허상세뿐이었다. 달구지가 여럿 있었을 때에는 땔감도 몇 바리씩 사들였다. 지금은 그런 형편이 못 되었다. 그래서 땔감을 심술이가 맡았다. 집 뒤의 사패지인 시루봉 능선에서 나무를 해 왔다. 심술이는 누렁이가 다닐 수 있게 능선을 따라가면서 나무를 잘랐다. 땔감이 많이 들어가서 노마님이 묻힌 시루봉 밑까지 번듯한 길이 났다. 앞으로는 나무 사이사이로 비집고 들어가서 솎아베기를 하면 땔감 걱정은 없을 것 같았다. 이렇게 모두가 바빴지만 사랑채의 심참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두툼한 장침에 기대어 담뱃대만 연방 빨았다. 간혹 콜록거리는 기침 소리가 살아 있다는 인기척이었다. 일손을 놓은 심참판은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 갔다.


사패지인 시루봉의 나무를 베어 내시촌과 갈등을 빚는 한다리사람들 
  추수가 끝나고서도 심술이는 더 바빴다. 소금움막에 땔감을 대주는 것말고도 온돌 아궁이를 지필 땔감까지도 심술이의 몫이었다. 그래서 부엌에서 쓸 불쏘시개는 유상책의 아내와 하님이가 걷어왔다. 대개가 솔잎을 걷어오는 것이었지마는 간혹 관솔(소나무가지)이나 잔 나뭇가지들도 묶어서 지고 왔다. 이럴 때에는 새 마님도 나와서 거들어주었다. 새 마님의 일솜씨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다. 치맛자락을 걷어올려 허리춤에 찌르고 잽싸게 움직이는 손놀림은 보이지 않을 만큼 빨랐다. 잠깐 허리를 펴고 이마의 구슬땀을 훔치는 새 마님의 모습은 무척 밝았다. 간혹 산 능선에서 심술이를 만나서 방긋 웃는 새 마님의 얼굴은 달덩이 그대로였다. 새 마님의 덕분으로 겨우내 쓰일 솔잎과 잔 나뭇가지들은 낟가리를 하고 이엉을 엮어 덮었다.

  겨울 채비는 한다리 사람들 모두에게 걱정거리였다. 더군다나 땔감은 턱없이 부족했다. 가솔들이 불어나는 것도 원인이지마는 산에 있는 나무들은 모두 임자가 있었다. 사패지거나 문중의 선산, 또는 마을의 공동재산이 송계(松契)들이 대부분이었다. 가난한 한다리 사람들은 그나마 돈이 될까 싶어서 그곳에서 솔잎을 걷거나 관솔을 묶어서 등짐으로 내다 팔았다. 산 임자들과 다툼이 있었지마는 나무는 베지 않았다는 것으로써 이해하고 넘겼다. 그러니 자기네의 땔감은 겨울이 코앞에 닥쳐서야 서둘렀다. 한다리 사람들이 이번에 눈독을 들인 곳은 심참판 댁의 사패지인 시루봉 능선의 나무들이었다. 언제나 이곳의 나무들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내시들의 위세에 눌려서 그곳에 발 들여놓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은 달랐다. 내시촌의 식구들도 별로 없다. 어린 심술이 혼자 나무를 자르는 것을 보고는 군침이 절로 났다. 그래서 한다리 사람들은 시루봉 능선의 끝 줄기에서부터 나무를 베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두 사람이었지마는 소문에 소문이 나서 건너 마을의 아천리 사람들까지 몰려들었다. 어느 날 심술이는 어렴풋이 도끼질 소리를 들었다. 시루봉에 올라가서 보았다. 덜 떨어진 낙엽 사이로 나무를 자르는 사람들이 보였다. 톱질과 도끼 찍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잘린 나무들은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쓰러졌다. 나무들이 쓰러진 곳은 어느새 벌판이 되어 화관암(지금 관용탑)까지 훤히 트였다. ‘이럴 수가’ 심술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비탈을 타고 미끄러지듯이 내려갔다.

  “왜 여기서 나무를 베요. 누구세요?”
  나무를 자르던 사람들이 흠칫 놀랐다.
  “왜 남의 산에서 나무를 베요. 우리 산이 어떤 산인 줄 아세요?”
  모두들 아무 말 없이 서로 번갈아 보았다. 누군가가 대꾸해 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아니, 참판댁 도련님 아니신가, 노여워 말게, 너무 땔감이 없어서 자네네 산 귀퉁이의 나무를 조금 잘랐네.”
  안면이 있는 한다리 사람이었다.
  “조금이라니요. 허허 벌판이 되었는데요.”
  심술이는 톱과 도끼를 든 사람들의 기세에 눌리지 않으려고 목청껏 소리 쳤다.
  “허허 도련님, 참판 댁에서도 나무를 자르기에 우리도 조금 끼려는 것이니, 눈감아 주구려.”
  그 중에서도 나이가 들어 보이는 영감이 넌지시 말을 건넸다.
  “우리도 땔감 들여올 데가 없어요. 건너에 큰어머님이 묻히셨지마는 어쩔 수 없이 여기까지 와서 땔감을 해야 해요. 우리 소금움막이 얼마나 땔감이 들어가는 줄 아세요. 어서 그만 둬요. 그만두지 않으면 경(형벌)을 칠 거예요.”
  심술이는 주먹까지 불끈 쥐고 소리쳤다.
  “허, 그래도 성한 사내 놈 하나 있군. 모두 고잔 줄 알았는데. 이봐, 불알 달린 남자끼리 한판 붙어 볼까?
  흉측스러운 남자 하나가 도끼를 돌리면서 비아냥거렸다.

  “이봐요. 그대로 있어요. 우리 식구들이 올 때까지 그대로 있어요.”
  심술이는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다. 말을 마치고 홱 돌아서서 시루봉으로 다시 올라왔다.
  “오냐, 와봐라. 다 와봤자, 달린 놈은 하나도 없지, 양반이면 다냐, 고자 양반도 양반이냐?”
  심술이의 귓가에 입에 담지 못할 욕지거리들이 들려왔다. 그럴수록 심술이는 힘껏 뛰었다. 심술이는 사랑채에 계신 아버지 심참판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차근차근 말씀드렸다. 심기가 덜 불편하도록 그들이 한 욕지거리만 빼고 낱낱이 말씀드렸다. 심참판은 소금움막에서 불때는 유상책과 허상세를 불러들였다. 그동안 심술이는 소금움막을 대신 지켰다. 한참 후에 돌아온 두 내시는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 두 평부솥의 아궁이 불을 모두 껐다. 그리고 나서 나이 많은 유상책이 심술이를 쳐다보았다.
  “가 보자.”
  심술이는 두 내시가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버지 심참판에게는 말씀드리지 않았던 그들의 욕지거리까지 죄다 이야기하였다. 그래도 두 내시는 심드렁하게 듣기만 했다.

  시루봉에 오르기 전부터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시루봉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니 아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유상책은 심술이에게 시루봉에 그대로 있으라고 했다. 그리고 허상세와 같이 비탈을 내려갔다. 한동안 나무 자르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어둠이 내리면서 산새 소리도 들렸다. 갑자기 몇 마디 고함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어둠 속에서 허상세가 유상책을 부축하여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두 내시 모두 옷고름이 뜯겨져 있었다. 허상세의 저고리는 헤어져서 너덜거렸다. 심술이도 유상책을 같이 부축했다. 씩씩거리며 나누는 두 내시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한다리 사람들은 잘라 놓은 나무들만 가져가게 해 달라고 사정하였다. 유상책은 그럴 수 없다고 하였다. 정녕 가져가고 싶으면 금(가격)을 쳐서 가져가라고 한 것이다.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험담이 오고 갔고 멱살잡이 또한 있었다.

  사랑채에서 국밥으로 저녁을 때운 내시들은 다시 시루봉으로 오르기로 하였다. 그들의 기세에 맞서기 위해서 모두 나서기로 하였다. 심참판을 제외한 내시촌 사람들 모두였다. 하님이에게 초롱불을 들게 하여 앞세웠다. 뒷줄에서는 새 마님도 호롱불을 들었다. 유상책의 아내도 지팡이를 짚고 뒤따랐다. 시루봉이 가까워 올수록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밝은 기운이 뻗쳤다. 시루봉에는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모닥불을 쬐는 한다리 사람들은 내시촌 사람들을 금방 알아봤다. 모두 노인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풍채가 우람한 노인이 나섰다.

  “아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저희 셋은 영감님께서 오시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워낙 철이 없는 것들이어서……”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어떡합니까? 이왕 저지른 일이 아닙니까? 쏟아진 물을 다시 담을 수도 없고, 잘라 놓은   나무들만 얼른 추려서 가져가겠습니다. 제발 허락해 주십시오.”
  시루봉 건너 기슭의 벌목장에서는 서너 군데 모닥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에서 자른 나무들을 옮기려고 바삐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만큼 알아먹게 이야기했거늘, 나라님께서 내려주신 산을 함부로 해치다니, 몰라서 그랬다면 한번은 용서해 준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 대신 화목(땔감)값은 물어야지. 후닥닥 해치우면 될 줄 아느냐, 경을 칠 것들.”

  소금움막에서 평부솥 아궁이를 지피던 늙은 유상책이 아니었다. 깡마른 얼굴에 움푹 패인 눈은 매서웠다. 다시 한번 땅을 차며 호통을 쳤다. 그새 흔들린 탕건(속 모자)을 바로잡은 유상책은 한다리 노인들을 향하여 그들이 잘못한 것들을 조목조목 지적하였다. 그때마다 세 노인은 허리를 굽신거리며 빌었다. 유상책은 지팡이 끝으로 벌목장을 가리켰다.

  “눈뜬 사람 코 베어갈 놈들이 아니냐, 그만 두어야지. 너희 늙은이들만 내세워 놓고 어물쩍 넘어가려고, 많이도 치워 갔군. 숲이 휑하니 뚫렸다, 봐라.”
  유상책의 지팡이 끝을 따라 세 노인도 서너 걸음 움직였다. 그 중 한 노인이 나직이 말했다.
  “아닙니다. 치운 것은 별로 없습니다. 가지를 치고 묶어서 그렇습니다.”
  “그러게 의심 받을 짓을 하지 말아야지. 당장 그만 두지 못할까. 한심한 놈들 옥살이를 할까보냐, 부역살이를 끌려갈 테냐. 뭐해 그만 두게 하지 않고.”
  유상책의 기세에 눌린 세 노인은 서로 눈치를 살폈다. 나이 많은 노인이 턱을 치켜올려서 내려가라고 지시하자, 자그마한 노인이 비탈을 따라 벌목장으로 내려갔다. 잠시 후에 벌목장의 모닥불들은 하나 둘 꺼져갔다. 그리고 캄캄해졌다.


새 마님에게 다가서는 몹쓸 놈과 뒹군 심술이는 
  그러나 그들은 벌목장을 떠난 것이 아니었다. 개미 떼처럼 비탈을 타고 시루봉으로 오르고 있었다. 더러는 낫과 도끼를 들고 있었다. 꾸역꾸역 올라온 사람들은 어느새 시루봉을 채웠다. 내시촌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섰다. 시루봉으로 올라온 한다리 사람들은 화풀이하듯이 잘린 나무들을 모닥불에 던졌다. 그것도 모자라서 도끼를 든 사람들은 주위의 나무들을 마구 찍어댔다. 치솟는 불길과 나무 속 터지는 소리에 모두들 두어 걸음 다시 물러섰다.

  “어쩌자는 것이냐?”
  제각기 한마디씩 지껄이는 한다리 사람들은 향하여 유상책이 소리를 질렀다.
  “어쩌기는요. 이렇게 빌려고 왔지 않습니까?”
  도끼를 든 놈이었다. 도끼를 가슴에 안으면서 절하는 시늉까지 하여 보였다.
  “그게 비는 태도냐? 누구 안전이라고 도끼 날을 세워!”
  유상책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그렇구나. 내가 산판, 쌈판만 돌아다녔지. 예의범절을 몰라서……, 옛다. 이렇게 빌어야지.”
  놈이 들었던 도끼로 땅바닥을 내려찍자, 도끼 날은 땅에 박힌 채 자루가 섰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엉금엉금 유상책 앞으로 다가섰다. 모두들 숨을 죽였다. 이때 허상세가 뛰쳐나왔다. 무릎걸음으로 다가서는 놈을 발길로 걷어찼다.

  “이놈이…… 누구신 줄 알고…… 겁을 줘……, 이놈.”
  허상세는 고르지 않은 호흡에 맞춰 간신히 호통을 쳤다. 쓰러졌던 놈은 손을 털면서 일어섰다. 비웃음을 띠고 일어서는 놈은 분명 낮에 심술이에게 시비를 걸었던 작자였다. 놈은 어느새 허상세를 치켜들더니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심술이가 얼른 받지 않았다면, 허상세는 비탈에서 구를 뻔하였다. 그제야 한다리 사람들은 씩씩거리는 놈을 끌어안고 말렸다. 떠밀려가면서도 놈은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사태는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허상세까지 당하고서 내시촌 사람들도 그냥 물러설 수는 없었다.

  “네 이놈들 오늘 일은 절대로 용서 못한다. 어느 안전이라고, 정부인께서 계신 곳이다. 너희 놈들이 온전할 것 같으냐.”
  어쩔 수 없음을 알고 물러서려는 유상책의 절규는 서러움에 겨워서 떨렸다.
  “오호, 저기 초롱불을 든 분이 정부인인지, 절구통인지 하는 분이시군, 아, 그놈의 절구통 아깝다. 절구공이가 있어야지, 절구공이 맛을 모르는 절구통이야 곰팡이밖에 더 피겠는가.”

  말을 마친 놈이 굵직한 나무를 사타구니에 대고 성기(男根)처럼 흔드는 흉내를 내자, 모두들 손바닥을 치며 한바탕 웃었다. 그 사이 몹쓸 놈이 사람들을 밀치고 다시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꽂았던 도끼를 뽑아 들었다. 거꾸로 자루를 앞세워 든 놈이 한발두발 새 마님 앞으로 다가섰다. 하님이가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흔들거리는 초롱의 불빛을 받은 놈은 더 우악스럽게 보였다.

  “저 아이는 개살구집 딸 아이 아닌가. 몰라보게 컸네.”
  놈의 소리를 들은 하님이는 아예 새 마님의 뒤로 가서 숨어버렸다. 놈은 새 마님의 한 길 앞가지 다가섰다.
  “곰팡이 낀 도끼 자국에는 도끼 자루가 최고지, 안 그런가, 히히.”
  놈은 뒤돌아 한다리 사람들을 훔쳐보았다. 그러나 누구 하나 맞장구를 치지 않았다. 머쓱해진 놈은 도끼 자루를 세차게 흔들면서 새 마님 앞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새 마님은 한 손에 호롱불을 들고 다른 손으로 뒤에 숨은 하님이를 꼭 잡고 있었다. 다가오는 놈을 보면서 아래 입술만 깨물고 있었다. 그때였다. 허상세를 부축하고 있었던 심술이가 놈을 덮쳤다.

  “이놈!”
  짧은 외마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뒹굴었다. 잠깐 사이에 모닥불을 피워 놓은 곳까지 굴렀다. 그제서야 한다리 사람들이 달려들어서 떼어 말렸다. 일어선 것은 몹쓸 놈이었다. 놈은 여러 사람들에게 떠밀려 갔지만, 심술이는 일어나지 않았다. 새 마님은 초롱불을 내던지고 잽싸게 심술이에게 갔다. 그리고 심술이의 머리를 안았다. 유상책의 내외도 심술이를 흔들었지만 아무런 내색이 없었다. 초롱불을 든 하님이를 앞세운 내시촌 사람들은 시루봉을 내려왔다. 새 마님과 유상책의 아내가 심술이를 부축했다. 절룩거리는 허상세의 손을 잡고 유상책이 뒤따랐다. 시루봉에서 외치는 욕설이 또렷이 들렸다. 모닥불 속에서 나무 속 터지는 소리도 끊이지 않고 들렸다. 얼마동안 시루봉의 모닥불 빛을 받아서 내려오는 산길은 밝았다.

한다리 사람들을 멍석말이로 다스린 심참판 
  이튿날 새벽같이 괴나리봇짐을 멘 유상책이 지팡이 뒷짐을 하고 어디론가 급히 떠났다. 유상책이 돌아온 것은 신시(申時:오후 4시)가 훨씬 지나서였다. 유상책을 따라서 온 사람들은 육모방망이를 든 포졸[捕盜軍士]들이었다. 이들은 유상책이 가리키는 집에 들어가서 사람들을 찾아내어 오랏줄로 묶어서 뒷결박을 했다. 끌려나온 사람들은 몹쓸 놈까지 셋이었다.   이들이 끌려가는 한다리 마을은 온통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 가족들이 오랏줄에 매달리면 포졸들의 육모방망이가 사정 없이 내려쳤다. 땅바닥을 치며 울부짖는 아낙네들의 울음소리와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의 아우성으로 한다리 마을은 줄초상집이 되어 버렸다. 포졸들이 세 사람을 끌고 간 후에 한다리 사람들은 심참판 댁으로 몰려갔다. 이들이 통곡하며 애원하였지만, 심참판 댁의 대문은 굳게 닫혀서 열리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한다리 마을의 그전 세 노인이 심참판 댁을 찾아왔다. 심참판 댁의 사랑방은 놋쇠 재떨이 통에 담뱃대 두들기는 소리와 유상책의 고함 소리가 엇갈리면서 들렸다. 그때마다 ‘예, 예’ 하면서 굽실거리는 세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참 후에 세 노인은 사랑방을 나왔다. 이어서 서찰(편지)을 접은 유상책도 나왔다. 유상책을 따라서 풍채 좋은 노인 한 분 하여 두 사람은 어디론가 떠났다. 이들이 돌아온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이들만이 아니라 끌려갔던 한다리 사람 셋도 함께 왔다. 셋은 하나 같이 바지가 헤어져 있었다. 헤어진 곳은 피에 물들여져 속살까지 보였다. 이들은 앞 손만 묶여서 끌려왔다. 이들을 끌고 온 세 사람은 따로 있었다. 유상책이 당도리배를 부릴 때 불러서 부리던 건장한 뱃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심참판 댁으로 곧장 갔다. 묶인 세 사람을 사랑채의 마당에 꿇어앉혔다. 이미 사랑채의 마당에는 한다리 사람 대여섯이 와서 있었다. 그들이 서 있는 곳에는 콩 닷 섬이 두 줄로 쌓여있었다. 함부로 나무를 자른 배상금이었다. 유상책이 섬돌에 올라서서 사랑방의 여닫이(곁문) 고리를 잡아당겼다. 섬돌에서 내려선 유상책은 큰 소리로 아뢰었다.

  “대감, 죄인들을 대령했습니다.”
  아무 대답이 없자, 유상책은 다시 한번 아뢰었다. 그러자 미닫이문이 반쯤 열렸다. 문지방에 왼쪽 팔꿈치를 기대면서 심참판이 얼굴을 내밀었다. 탕건도 쓰지 않았다. 숱이 적은 머리카락을 틀어 올린 상투는 세워놓은 볏단처럼 엉성하였다. 반짝거리는 두 눈이 없었다면, 산송장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이놈들의 죄는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위로는 나라님의 은혜를 저버렸고, 가까이는 대감님의 집안을 욕보였습니다. 죽여 마땅한 놈들이지만, 대감님의 넓은 아량으로 사형(私刑:개인형벌)에 처하려고 합니다.”
  유상책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사랑채를 울렸다. 마당에 서 있는 한다리 사람들은 서로 쳐다보기만 하였다. 그러나 대문 밖에 모인 한다리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때 풍채 좋은 노인이 유상책이 서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심참판을 마주보고 꿇어앉았다.

  “대감마님, 살려주십시오. 이놈들의 죄는 죽어 마땅합니다만 보다시피 몰골이 말이 아닙니다. 벌써 포청(포도청)에서 장(곤장) 서른 대를 맞고 왔습니다. 대문 밖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들이 이놈들의 식솔들입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콩 섬 앞에 서 있던 사람들도 꿇어앉았다. 제각기 용서를 빌었다. 어떤 이는 흐느끼면서 어깨까지 들썩거렸다.
  “어찌하면 좋으냐?”
  심참판이 유상책에게 물었다. 유상책은 마당의 사람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왼손으로 입을 가리고 헛기침을 하더니, 심참판을 바로 보고 말했다.
  “대감, 나라에는 국법이 있고, 가문에는 법도가 있습니다. 미천한 것들이 얕보아도 그대로 넘어간다면, 앞으로 업신여김을 당하여도 경계할 방도가 없습니다. 그래서 매꾼까지 데려왔습니다. 그대로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심참판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입술을 다시더니 내뱉듯이 말했다.
  “알아서 하거라.”
  사랑방의 미닫이문은 딱, 소리를 내면서 닫혔다. 유상책은 섬돌에 올라서서 여닫이문까지 조심스럽게 닫았다.

  사랑채의 마당에 멍석 세 두레가 펼쳐졌다. 앞 손이 묶인 세 사람은 각기 멍석에 누웠다. 뱃사람들이 멍석 하나하나에 붙어서 누운 사람들을 그 멍석에 말았다. 소위 멍석말이였다. 대개 멍석말이는 동네 사람들이 작은 몽둥이를 들고 뭇매를 때리는 것으로서 크게 다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건장한 매꾼(뱃사람)들이 묵직한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한 사람의 구령 소리에 맞춰서 몽둥이를 내리쳤다. 칠 때마다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가끔은 비명 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몹쓸 놈이 말려 있는 가운데 멍석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멍석말이가 끝나고 감았던 멍석을 풀었다. 한다리 사람들이 달려들어서 녹초가 된 세 사람의 앞 손 묶음을 먼저 풀었다. 그리고 안아 일으켜서 한 사람씩 등에 업었다. 그러나 몹쓸 놈은 끝내 등에 업히지 않았다. 어깨걸이만 하고서 절뚝거리며 대문을 나왔다. 잠시 심참판 댁을 뒤돌아보는 그의 눈빛은 살기가 돌았다. 세 사람의 뱃사람들도 마당의 콩 한섬을 세 자루에 나누어 가졌다. 그들이 떠남으로써 시루봉의 벌목사건은 모두 끝났다.
 

고향이야기로 즐거운 나날을 보내는 한봉이와 심술이 
  심술이는 며칠 동안 열이 내리지 않았다. 간혹 헛소리까지 하여 모두 걱정하였다. 유상책의 아내는 심술이가 놀라서 경기(驚氣)를 일으킨 것이라고 하였다. 새 마님과 하님이는 번갈아 가면서 심술이를 돌봤다. 뒷간 출입도 하지 못하게 아예 요강까지 갖다 놓았다. 그래서인지 차도가 있었다. 머리를 동여맸던 명주 천을 풀어서 아물어 가는 상처에 바람도 쐬었다. 데운 물을 담은 물동이를 들여보내자, 몸도 닦고 뒷물까지 하였다. 그래서 깨끗한 속곳(속옷)으로 갈아입었다. 그 날 저녁상은 새 마님이 직접 들고 오셨다. 지금까지 쟁반에 올려놓았던 죽이 아니라 반듯한 밥상이었다.

  “술아, 많이 나았구나. 맛있게 먹는 걸 보니.”
  새어머니(새 마님)는 누나처럼 다정하게 말했다.
  “예, 다 나았어요. 훌훌 털고 일어나야지요. 소금움막도 바쁠 텐데요.”
  “아니다. 걱정하지 말고 푹 쉬어라. 김장철도 지나서 소금 나갈 일이 별로 없단다. 그리고 그놈들이 겁이 나서 잘라 놓은 나무들을 가져가지 않는다는구나. 급하면 그걸 쓰면 돼.”
  “아니에요. 생나무는 불이 안 붙어요. 연기만 많이 나지, 화력도 약하구요.”
  “그래서 장작 한 수레를 사들여 놨다. 대 여섯 바리는 될 거다. 걱정 마라.”
  심술이는 말문이 막혔다. 심술이의 딱한 표정을 보고 새어머니는 빙그레 웃으셨다.

  “몸을 추스르는 데만 신경 써, 힘을 내야지. 그래야 내년에 장가가지, 그렇지?”
  “아니에요, 어머님. 저는 그런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심술이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얼굴이 금새 화끈거렸다. 무엇인가 숨겼던 것을 새어머니에게 들킨 것처럼 당황했다. 새어머니의 눈빛이 반짝였다.
  “술아, 너희 동갑내기 호동이 있지, 우리 친구 말순이 하고 결혼했다. 딸만 둘이래, 그래서 걱정이 태산이란다. 호동이 외아들 맞지, 그렇지?”
  “예.”
  심술이는 짧게 대답했다. 그러나 어색했다. 옛날에는 자기보다 서너 살이 위인 여자와 결혼해서 자식을 빨리 낳았다. 대를 잇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새어머니의 친구와 나의 벗이 부부가 되었다는 것은 어쩌면 나와 새어머니가 같은 격이 되는 것 같아 당혹스러웠다. 이러한 생각까지도 알아챌까 봐 조바심까지 났다. 새어머니는 자기 동네의 금곡 마을 이야기며, 심술이의 양지마을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대개가 또래의 결혼 이야기였다.

  “술아, 그런데 요 달포 전에 옥향이가 죽었다. 둘째 애를 낳다가 죽었대. 옥향이가 누구한테 시집간 줄 아니, 너의 친구 개똥이 알지, 춘삼이 말이야, 춘삼이었어.”
심술이는 적이 놀랐다. 어릴 적에 개똥이라고 불렀던 춘삼이는 심술이와는 소위 불알 친구였다.
  “춘삼이가요? 그런데 어머님은 어떻게 그런 소식을 다 들으셨어요?”
  심술이가 의심이 났던 것은 새어머니가 시집온 이후의 일들도 이야기 속에 끼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응, 할멈한테 듣지, 유상책에게 소금 팔러 갈 때 부탁도 하고, 거기 친구들이 유상책에게 물어도 봐, 그걸 할멈이 내게 죄다 이야기 해 줘.”

  새어머니는 유상책의 아내를 할멈이라고 불렀다. 심술이는 한봉이 누나가 새어머니가 된 것도 어색했지만, 젊디젊은 나이에 내시 댁에 갇혀 있는 것이 더 안쓰러웠다. 아, 그래서 소금 팔러 다니는 유상책을 통해서 또래 친구들이 활기 차게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듣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심술이는 새어머니가 측은했다. 그런 심술이의 표정을 읽었는지 새어머니는 일어섰다.
  “이제 자야겠구나. 좋은 꿈 꿔라.”
  “예, 어머님도 주무세요.”
  심술이는 같이 일어서려고 했다.
  “그대로 앉아 있어. 그렇지, 어머니지? 누나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입술을 다물고 억지 웃음을 짓는 새어머니의 얼굴은 서럽디 서러워 보였다. 미닫이문 틈에 끼었던 새어머니의 치맛자락까지 소리 없이 빠져나가자, 심술이의 마음도 따라 빠져나가는 것처럼 허전했다.

  다음날 저녁상은 하님이가 끙끙거리면서 들고 왔다. 새어머니는 식사 후에 하님이에게 다과상을 들게 하고서 들어오셨다. 하님이도 같이 있게 하였다. 그래서 심술이의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오늘따라 새어머니는 개구쟁이 적의 심술이 또래의 아이들의 이야기를 했다. 새어머니는 우리들이 개울가에서 한봉이 누나였던 새어머니를 놀렸던 지난 일들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심술이도 기억 나는 대로 새어머니의 이야기를 보태어 드렸다. 사실 한봉이 누나나 심술이 역시 외로운 처지였다. 그래서인지 지난날들의 서러움들이 서로의 가슴에 와 닿았다. 그렇게 또 밤이 깊었다. 쫑긋 귀를 세우고 듣고 있던 하님이가 졸음에 겨워 고개를 끄덕였다.

  “자야지, 내일도 고향 가자. 심술아, 그렇지?”
  새어머니는 하님이를 일으켜 세우면서 말했다.
  “네, 어머님. 저 때문에 많이들 피곤하시죠.”
  “아니야, 아니야. 난 너무 좋은 걸, 대청 건너서 너의 양지마을과 우리 금곡 마을이 아니니.”
  호롱불빛을 머금은 새어머니의 두 뺨은 두둥실 떠다니는 달님이었다. 새어머니의 치마폭에서 물신 풍겨왔던 그윽한 향기가 심술이의 베갯잇을 감돌았다. 그렇게 하루가 또 지났다.

 안채에 돌아와 있는 며칠 동안은 심술이에게는 꿈결 같은 나날들이었다. 그러나 마음이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사랑채에서 홀로 지내는 아버지 심참판에게 왠지 죄스러웠다. 안채의 대청에서 다듬이질 소리와 민요가락도 끊겼다. 두 노인만이 볏가리를 씌우고, 여물(소먹이)을 만드는 것도 안쓰러웠다. 일이 없다고 하지만 소금움막도 그렇다. 심술이는 안채를 나와서 그전처럼 사랑채의 자기 방으로 돌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무엇보다도 안개처럼 깔려있는 안채의 분위기를 심술이 스스로 걷어낼 자신이 없었다. 걷어내려고 무진 애를 쓰면 쓸수록 심술이의 마음은 잠투정을 부리며 솜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어린 아이처럼 그 분위기에 포근히 빠져 버렸다. 그래서 안채에서 나와야 한다고 굳게 마음 먹었다. 그래야만이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릴 수가 있을 것 같았다. 내킨 김에 바로 실행하여서 미련의 틈새를 주지 말아야 했다. 그것은 새어머니와의 깊어 가는 정겨움을 자를 수 있는 길이었다.

  “하님아, 내일 아침은 사랑채에서 아버지와 같이 하겠다. 알겠니?”
  점심상을 들고 온 하님이에게 심술이는 또박또박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그러나 하님이는 대답이 없었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멀뚱멀뚱 심술이를 쳐다봤다. 밤마다 그렇게 재미 있었는데 왜 가려는 것인지 의아해 하는 표정이었다.
  “하님아, 오늘 저녁까지는 여기서 먹고, 내일 아침부터는 사랑채에서 먹는 거야.”
  심술이는 안채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새어머니 앞에서 하고 싶었다. 그래야 인사도 될 것 같고, 들떴던 분위기도 마무리 하고 싶었다. 그래서 점심 때에 하님이에게 이야기 한 것이다.
  “예, 알았어요. 마님께 말씀드릴게요.”
  하님이는 입술을 모질게 다물었다. 새 마님의 마음도 모르고 매정하게 떠날 수 있느냐, 하고 되쏘는 것 같았다.

새 안방마님 한봉이와 양자 심술이는 금지된 사랑에 빠져들고 
  그 날 저녁상이 들어올 때에도 새어머니는 건너오지 않았다. 다과상이 나갈 때까지도 그랬다. 심술이는 조바심이 났다. 내일 아침 인사를 드리고 나가면 될게 아니냐고, 자신에게 여러번 다짐을 하면서도 그게 아니었다. 분명 심술이는 새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을 자려고 하면 할수록 두 귀가 날을 세웠다. 대청 건너 안방에서 실오라기 하나 풀리는 소리까지도 놓치지 않았다. 그때마다 가슴이 뛰었다. 심술이는 자기의 짓거리가 되려 새어머니에게 들킬까 봐서 숨소리까지 죽였다. 그러자, 고르지 않은 호흡과 멋대로 뛰는 맥박이 뒤섞였다. 몸을 뒤척이는 것까지 소리가 날까 봐서 입을 다물고 참았다. 그렇게 밤은 깊어 갔고, 심술이의 몸은 땀에 흠뻑 젖었다.

  잠결이었다. 산뜻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이내 물씬 밤꽃 냄새가 덮쳤다. 그 향기에 취했다. 하얀 나비가 날개를 접으면서 내려앉았다. 접은 날개는 죽지에서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하얀 적삼은 벗겨졌다. 꽃받침에 싸였던 꽃망울이 터트릴 찰나를 숨죽여 기다리는 순간 그대로였다. 깊은 밤이 못내 아쉬운 꽃망울은 수줍은 자락을 펼치면서 살포시 포개어져 왔다. 그리고 쓰러졌다. 나란히 어둠에 싸였다. 그렇게 활화산 같은 적막을 견디었다.

  나비의 더듬이처럼 보드라운 명주 손수건이 이마의 땀을 훔쳤다. 적삼을 열고 가슴까지도 훔쳐 내렸다. 조금 더 내린다면 악기처럼 달구어진 몸뚱이는 간드러움에 겨워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그 들어내 가슴을 파고드는 뺨의 따스함은 발끝까지 흘러내렸다. 발끝에서부터 다시 조여 오는 전율에 온몸은 파르르 떨었다. 주인에게 내맡겨진 악기의 몸통은 한 꺼풀 한 꺼풀 벗겨지면서 소리 없는 아우성을 삼키고 있었다. 한 오라기도 남김없이 걷어올리는 무당의 손끝에서 살풀이수건을 풀어 던지듯 제 몸뚱이의 꺼풀마저도 홀랑 벗어 버렸다.

  넓은 호수였다. 호수가에는 송사리 떼들이 간지럽게 몰려다녔다. 서서히 몰려오는 비바람에 호수가는 일렁였다. 근원도 알 수 없는 물길들이 모여들면서 호수는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세찬 폭우가 쏟아졌다. 감당할 수 없는 물길들이 휘몰아쳤다. 견디지 못한 격정이 끝내 넘치는 폭포가 되어 벼랑에서 곤두박질쳤다. 산산이 부서지면서 서로 부르는 애절한 울부짖음이었다. 그 애절함이 다시 모여 굽이쳤다. 만나는 기쁨에 겨워 골과 골을 돌아 휘감겼다. 돌고 도는 물줄기는 춤사위였다. 얕은 소(沼)를 만나서 두둥실 엉키고, 가파른 바위에서 구르는 물소리가 숨가쁘게 몰아쳤다. 끝내 바위 틈새에 끼여 쥐어짜듯 뿜어대는 물보라는 찬란한 오색 무지개를 펼쳤다. 그 황홀한 물보라에 부드러운 물풀(水草)들이 일어섰다. 물풀들을 어루만지면서 숨 고르던 물길은 띠방죽을 만나 감아 돌듯 굴러 떨어졌다. 그 알알들이 포개져 이루어진 거품 숲은 솜 이불처럼 포근했다. 이내 띄엄띄엄 서 있는 바위들을 감치면서 서로의 손놀림으로 부르는 물소리가 정겨웠다.

  “아, 아, 어머님.”
  심술이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못 겨운 신음소리를 냈다.
  “나, 어머니 아니야, 술아, ……, 누나야, 누나, ……, 한봉이 누나.”
  새어머니도 가쁜 숨을 넘기면서 띄엄띄엄 말했다. 그리고 심술이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그렇게 둘이는 깊은 밤을 들이켰다. 잠시 고요가 흘렀다.
  “술아, 꼭 약속해야 해, 우리 둘이 있을 때는 누나야, 그렇지?”
  한봉이 누나에게 안긴 심술이는 눈을 감고 있었다. 입술을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술아, 다시 만나. 너 없이는 못 살아. 죽어도 너를 안 놓쳐.”
  한봉이 누나는 일어나 앉았다. 심술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심술이는 더럭 겁이 났다. 그리고 자기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를 깨달았다. 무엇인지 모를 후회가 물밀듯이 몰려왔다. 심술이는 얼른 이불을 끌어올려 얼굴을 덮어버렸다.
  “그러면 안 돼, 술아, 누나를 웃으면서 보내 줘야지, 그렇지?”

  이불을 걷어 내리면서 한봉이 누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눈길이 닿는 순간, 심술이의 마음은 금새 달구어졌다. 한봉이 누나의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그런 심술이에게 한봉이 누나는 가벼운 입맞춤을 해줬다. 그리고 속곳도 없이 고쟁이만 입고 일어섰다. 주섬주섬 옷가지들을 챙겨서 가슴에 안고 나가 버렸다.

불붙은 사랑은 꺼질 줄 모르고 
  늦가을은 을씨년스러웠다. 시루봉 능선에는 잎새들이 떨어진 나무 가지들이 싸리비처럼 서 있었다. 그 사이사이로 매서운 바람이 되려 싸리비를 쓸었다. 한다리의 벌판에는 볏가리를 하지 않은 볏단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심참판 댁의 안채에서는 다듬이질 소리도, 민요가락도 들리지 않았다. 요사이 심술이는 책을 읽어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조용히 묵독(默讀)하였다. 간혹 심참판의 콜록거리는 기침 소리가 들렸다. 외로움에 겨워 목청껏 우는 누렁이의 울음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면, 심참판 댁은 온통 비어있는 흉가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하님이가 사랑방에 다과상을 들였다. 그리고 나서 심술이의 방에도 쟁반에 다과를 놓고 들여왔다. 하님이는 툇마루에서 미닫이문을 잡고 귓속말로 속삭였다.
  “마님께서 비어 있는 노상탕의 집으로 나오시래요. 자시(子時.밤11시~오전1시)에요.”

  하님이는 다짐을 받듯 눈망울을 크게 한번 더 뜨고 나서 종종 걸음으로 샛문에서 사라졌다. 심술이는 멍하니 그대로 있었다. 고개를 들어 사랑방을 보는 순간 정신이 들었다. 얼른 여닫이문의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미닫이문까지 닫았다. 심술이는 안절부절 앉을 수가 없었다. 서성거리는 사이에 어둠이 내렸다. 창문에 그림자가 비칠까 봐 호롱불도 꺼 버렸다. 그러자 달덩이 같은 한봉이 누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느새 그 가슴으로 파고들어 홀랑 알몸으로 만들고 있었다. 뛰는 가슴만큼 시간은 가지 않았다. 한밤이 되어서야 사랑방의 불빛이 꺼졌다. 그리고서도 한참을 기다렸다. 자시를 넘겨서 심술이는 조심히 나섰다. 대문의 빗장을 빼고 문짝을 살짝 들고 열었다. 그래도 돌쩌귀에서 ‘끽’ 하는 가는 괴음이 들렸다. 다시 대문을 닫고 노상탕의 집으로 한걸음에 왔다. 대문은 심술이가 비집고 들어갈 만큼 열려 있었다. 심술이는 대문턱을 넘고 들어선 다음 대문을 닫았다. 문둔테(문장부를 끼우는 구멍)에 빗장까지 질렀다. 노상탕의 집 역시 캄캄했다. 그런데 안방의 미닫이문이 열려 있는 것이 보였다. 심술이는 주저 없이 안방의 섬돌을 밟고 툇마루에 올라섰다.

  “신발!”
  한봉이 누나의 짧은 목소리였다. 심술이는 되돌아서서 신발을 집었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서서 여닫이문과 미닫이문을 차례로 닫았다. 어둠 속에서도 검은 광목 천으로 만든 이부자리가 깔려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방바닥은 의외로 따뜻했다.
  “술아, 새로 이부자리를 만들 수 없잖니, 노상탕이 두고 간 것을 깨끗이 손봤어. 군불도 때 뒀어, 따뜻하지?”
  두리번거리는 심술이가 혹시 못 마땅한 것이 있어서 그러나 싶어, 한봉이 누나는 달래듯 말했다.
  “누나, 그런 건 다 괜찮아. 누나만 있으면 돼.”
  심술이는 바짝 긴장하였던 경계를 풀었다. 의심 나는 것들도 모두 지워 버리기로 마음 먹었다. 담장 하나 넘는 것이 이렇게 별천지가 되는 줄은 미쳐 몰랐다.

  푸른 초원에서 만난 한 쌍의 사슴은 가릴 것이 없었다. 서로가 서로의 냄새를 맡으면서 빙빙 맴도는 춤사위는 끝없이 이어졌다. 때로는 산등성이를 오르고 내리며 내달렸다. 이내 숲 속으로 빨려 가듯이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 덤불에서 뒹굴었다. 서로 앞발을 들고 키 재기를 끝냈다. 그리움에 엉킨 두 마리의 사슴은 서로를 비비면서 한 올씩 한 올씩 허물을 벗었다. 금새 허물을 벗은 꽃뱀이 되어 꼬이며 꼬이며 깊은 향연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알 길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는 사랑의 늪이었다. 그 늪에서 두둥실 떠오르는 환희와 오므라들면서 빨려 가는 쾌감들이 엇갈리며 꼬여 왔다. 끝내 쪼그라트리면서 비틀어 오는 짜릿함을 견딜 수가 없었다. 아, 아, 시간도 멈춰 버리고, 세상도 끝이 났으면……. 찢어지는 신음 소리가 막힌 숨을 트였다. 영원히 어둠에 묻혀 버리고 싶을수록 샘솟는 욕망은 불꽃처럼 되살아났다. 이제는 드러낸 알몸이 서로의 빛이 되어 어둠을 살랐다. 거침도 두려울 것도 없었다. 오직 하나가 되기 위한 몸부림뿐이었다. 비 오듯 쏟아지는 땀방울은 기름이 되고, 몰아치는 숨소리는 장단이 되어 끝없는 방아타령으로 이어졌다. 구김 없는 능선과 골 없는 골짜기, 맺힐 듯 부풀어 오른 봉오리, 신비의 처녀림을 헤매던 나무꾼은 도끼마저 내던졌다. 알몸인 선녀를 위하여 그의 모든 것을 태울 뿐이었다. 한 줌도 남김없이 태우고 태웠다. 그리하여 그 불꽃으로 휘감아 어둠 속을 뒹굴었다. 때로는 깊은 바다에서 솟구치는 고래가 되고, 다시 미끄러지듯 나래를 접는 백조가 되었다. 이제 밤은 어둠이 아니었다. 사랑의 거친 호흡으로 일어나는 알갱이들이 터질 것 같이 꽉 차 오른 풍선이었다. 그 밤을 안고 그들은 쓰러졌다.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썰물을 따라 펼쳐진 백사장의 고운 모래톱 위에 나란히 누웠다. 

  “그새 내가 보고 싶지 않았어?”
  심술이의 가슴을 파고들면서 한봉이 누나는 서럽게 말문을 열었다.
  “아니.”
  심술이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대로 몽롱한 채 있고 싶었다.
  “그럼, 왜 하님이한테 기별 한번 안 했어?”
  “몰라.”
  사실 자기 방을 소제(청소)도 하고 다과상도 들여오는 하님이를 볼 때마다 한봉이 누나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었다. 한봉이 누나는 심술이가 토라졌는가 싶어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런데, 하님이가 모든 것을 다 알아도 돼? 쪽지를 보내든지 그러지.”
  심술이는 한봉이 누나에게서 어깨를 뺐다. 그리고 지금까지 걱정되었던 것을 바로 물었다.
  “술아, 나 언문(한글) 모르잖니, 배울 새가 없었다. 그리고 방구들(온돌)도 때야지. 어쩔 수 없었어. 하님이를 시킬 수밖엔.”
  심술이는 한봉이 누나가 측은했다. 그래도 그새 의심나는 것들을 또 물었다.
  “어떻게 왔어, 담을 넘었지?”
  “그래, 장독대 뒤에 받침목(木)을 하나 더 놓았어. 아주 편해.”

  내시촌의 집들은 담장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심참판 댁의 장독대는 유상책의 집과 노상탕의 집이 맞물린 담장 모서리에 있었다. 언덕배기에 있어서 담장이 낮았다. 유상책의 아내도 이곳을 넘어서 심참판 댁의 안채에 드나들었다. 심술이는 그렇구나 싶어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일어섰다.

  “나, 가봐야 돼.”
  “벌써?”
  “응, 아무래도 불안해, 낯설고.”
  심술이는 바지를 입고 바지춤을 추겼다. 한봉이 누나도 일어섰다. 치마로 가슴을 가린 채 심술이에게 안겼다.
  “아주 한밤이야, 괜찮은데, 더 있으면 안 돼?”
  “또 다른 날도 있잖아. 오늘은 그만 갈게.”
  심술이는 한봉이 누나를 조심스럽게 밀었다. 그리고 익숙한 어둠 속에서 옷을 입었다. 한봉이 누나는 그대로 앉은 채 심술이의 옷 입는 것을 넋 놓고 쳐다보고만 있었다.
  “뭘 해, 안 입고?”
  심술이는 도망치듯이 옷을 입는 자신이 멋쩍었다. 그래서인지 되려 한봉이 누나를 다그쳤다.
  “응, 알았어. 먼저 가. 난 할 일이 많아. 이부자리도 개서 벽장에 넣어야지, 아궁이도 닫아야 돼. 너가 가고 나면 대문도 잠가야 되고, 알아서 할게, 걱정하지마.”
  심술이는 미안했다. 내빼는 자기 뒤에 남아서 뒷마무리까지 해야 하는 한봉이 누나가 안쓰러웠다. 심술이는 옷을 다 입고 한봉이 누나 앞에 무릎을 세우고 꿇어앉았다. 그리고 힘껏 한봉이 누나를 껴안았다. 

  진눈깨비가 휘몰아치던 매서운 날들이 지나가고, 함박눈이 소복이 쌓이는 겨울이 왔다. 한다리벌은 논두렁도 보이지 않는 하얀 벌판이 되었다. 그래서 길도 없었다. 나다니는 사람은 고사하고 새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다리 마을은 눈 속에 묻혀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내시촌에서 지핀 사랑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내리는 함박눈이 축복이 되었다. 솜 이불처럼 포근하게 눈에 덮인 노상탕의 집에는 언제나 사랑의 불씨가 살아 있었다. 불쏘시개만 지피면 금새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되었다. 그 불길 속에서 어둠을 사르면서 피어나는 불꽃이 있었다. 불꽃은 다시 눈꽃을 머금고 타올라 끝없는 향연을 이어갔다.

  겨울이 깊어 갈수록 내시촌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어느 달밤에 유상책의 아내가 노상탕의 빈집 굴뚝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난 다음부터였다. 그래서인지 심술이와 맞닥뜨리는 내시들도 말이 없었다. 심술이가 인사를 하면, 딴전을 부리면서 고개만 끄덕였다. 답답하고 못 견디는 것은 심술이었다. 사랑방에 모여서 내시들과 함께 식사하는 시간은 더욱 그랬다. 더군다나 아버지 심참판의 얼굴을 바로 볼 수 없었다. 심참판도 심술이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심술이는 이런 숨막히는 굴레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렇지 못하면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식사는 자기 방에서 하겠노라고 선언하였다. 책을 읽다가 먹고 싶을 때 먹겠다고 딱 잘라 말했다. 내시들은 말이 없었다. 숭늉 그릇을 입에서 뗀 심참판이 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사랑채의 마당에는 종종거리는 하님이의 발자국이 심술이의 방까지도 이어졌다.
  하님이의 출입이 잦을수록 두 사람의 만남도 많아졌다. 언젠가는 동창이 훤히 밝아올 때까지도 두 남녀가 깊이 잠들어 있었던 적도 있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후닥닥 일어난 두 사람은 잽싸게 옷을 입고 내뺀 적도 있었다. 그렇게 혼이 나고서도 며칠을 못 보면 안달이 났다. 굴리는 눈덩이가 불어나는 것처럼 생각할수록 보고파서 못 배겼다. 그래서 훤한 달밤도 마다하지 않았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기사입력: 2007/07/07 [14:54]  최종편집: ⓒ 디지털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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