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이야기7] 도미설화는 고려시대 때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 권 48 열전 제8 도미(都彌) 편에 수록된 설화로, 향토사학자인 김민수 선생이 광진의 옛 이야기로 재구성한 것이다.
[옛이야기 7]도미(都彌)설화
향토사학자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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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나루 위쪽 아차산 기슭과 한강. 이보다 상류지점에 도미가 떠났던 나루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디지털광진 |
아차산을 마주한 한강의 남쪽에는 백제의 궁궐(풍납토성)이 있었다. 백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한강에서 일어난 나라답게 모든 백성들이 풍요롭게 잘 살았다. 그러나 이 나라의 개루왕은 욕심이 많았다. 좋은 것이 있으면 어느 곳, 누구의 것을 가리지 않고 빼앗았다. 그래서 백성들은 자랑거리가 있어도 숨기고, 그저 평범하게 하루 하루를 보냈다.
아차산 기슭에 사는 도미에게는 예쁘고 똑똑한 아내가 있었는데
언제나 그랬듯이 궁궐에는 왕의 비위를 맞추는 간신들이 있었다. 왕이 심심해하는 것을 보고 한 간신이 말을 건넸다.
폐하, 강 건너 아차산 기슭에는 도미라는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쁜 짓이라도 했는가?.
왕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간신은 머뭇거리면서 왕의 관심을 끌었다. 왕이 다시 한번 재촉하자, 간신은 마지 못하는 척하면서 입을 열었다.
도미가 문제가 아니오라, 도미의 부인입니다.
행실이 나쁜가?.
왕은 벌을 줄 일이구나, 싶어서 그렇게 물었다.
아니옵니다, 아니옵니다, 행실이 나쁜 것이 아니옵고 그 반대로 예절이 바르고 똑똑하기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그럼 상을 주어야겠군.
왕은 그만한 일을 가지고 웬 수선이냐 싶어서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간신은 이때다 싶어, 큰소리로 말했다.
상을 주어도 듬뿍 주어야 합니다.
왜 그런가?.
왕은 정색을 하고 다그치듯이 물었다.
얼마나 예쁜지 사람들이 쳐다볼 수도 없다고 합니다. 해와 달이 떠도 당해낼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고 합니다.
그렇게 예쁜 여자가 있는 걸, 나만 몰랐단 말이냐?.
왕은 왜 이제껏 알려 주지 않았느냐 싶어 괘씸하다는 눈초리로 간신을 쳐다보았다.
실은 즉 그게 처녀가 아니옵고 지아비가 있는 아낙네라서 그렇습니다.
간신은 뒷머리를 극적이며 안타깝다는 듯이 대답했다.
왕은 버럭 화를 내면서 말했다.
세상 천지에 내 것이 아닌 것이 어디 있다더냐. 그렇다면 좋다. 도미를 불러들여라. 도미에게 다짐을 받아놓을 것이다.
백제의 개루왕은 도미의 부인을 시험하려 한다.
그렇게 해서 아차산 기슭에 사는 도미는 개루왕에게 불려가게 되었다. 왕은 도미에게 대뜸 물었다.
너의 아내가 아름답다고 하는 데, 그게 사실이냐?.
폐하의 덕분에 편안히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아내는 의복을 깨끗이 하고 다닐 뿐입니다. 그러한 것이 아름답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왕의 나쁜 버릇을 아는 도미는 왕의 관심을 돌리도록 차분히 대답했다. 도미의 대답을 들은 왕은 여러 신하들 앞에서 여자를 밝히는 것이 머쓱했다. 그래서 다른 꼬투리를 잡았다.
그래 인물이 잘날 것은 그렇다고 하자. 그런데 행실이 뛰어나서 누구도 감히 넘보지 못 한다고 하는데, 그것도 사실이냐?.
예 그러하옵니다. 모든 사람들이 아녀자의 행실은 저의 아내를 본 받으라고 한다고 들었습니다.
도미는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임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왕으로 하여금 자기 아내에 대한 관심을 끊도록 하려고 하였다. 왕은 빙그레 웃었다. 자기의 계책에 걸려든 도미를 향하여 말했다.
무릇 부인은 정절을 덕으로 삼지만, 사람이 없는 어두운 곳에서 좋은 말로 꼬이면 아니 넘어가는 부인은 없다. 너의 아내라고 다를 바가 있겠느냐?
여자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저의 아내는 죽는 일이 있더라도 어떠한 꾀임에도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도미는 사랑하는 아내를 지키기 위하여 당당하게 말했다.
그래, 그럼 좋다. 내가 너의 아내를 시험해 볼 것이다. 너의 말이 사실이 아니면 큰 벌을 내릴 테니 그리 알아라.
왕은 가까이 있는 신하들을 둘러보고 자기와 비슷한 한 사람을 골랐다. 그리고 자기의 의복과 말을 타고 도미의 집으로 가게 했다. 물론 도미는 궁궐에 머물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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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11호 광주풍납리토성. 현재 위치는 송파구 풍납동 73번지~96번지 일대에 있다. ©디지털광진 |
부인을 시험하려던 가짜 개루왕은 도미부인의 기지에 속고 만다.
가짜 왕은 강을 건너 아차산 기슭의 도미의 집으로 갔다. 왕이 온다는 기별을 들은 도미 부인은 서둘러 대문 앞까지 나와서 왕을 맞았다. 그러나 가짜 왕인 줄은 알지 못했다. 가짜 왕은 미리 짜여진 대로 말을 꺼냈다.
이 세상은 누구의 것이냐?
예, 산천초목 하나인들 대왕의 것이 아닌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모두 대왕의 것입니다.
그렇다면 너의 아름다움은 누구의 것이냐?.
영리한 도미부인은 왕의 속셈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고개를 들고 왕을 쳐다보았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대왕의 것입니다. 그러나 부부의 인연은 하늘이 맺어준다고 하였습니다. 하늘의 인연까지 대왕의 것은 아닐 줄 압니다.
말문이 막힌 가짜 왕은 억지를 썼다.
그래, 그래서 나는 궁궐에서 도미와 내기를 했다. 장기를 두어서 내가 이겼다. 너의 몸은 나의 소유다. 너는 내 말을 들어야 한다.
가짜 왕은 도미 부인을 끌어 잡고 나쁜 짓을 하려고 하였다. 도미 부인은 가짜 왕의 손을 뿌리치고 차분히 말했다.
대왕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백성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서 방으로 들어가십시오. 조금 있으면 날이 어두워질 것입니다. 그 사이에 저는 몸을 깨끗이 씻고 대왕의 잠자리를 보살펴 드리겠습니다.
가짜 왕은 안심하고 따로 떨어져 있는 별채 안으로 들어갔다. 도미 부인은 집안 사람들을 시켜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게 하였다. 그리고 술까지 곁들여서 가짜 왕의 방으로 들여보냈다. 가짜 왕은 아름다운 도미 부인과 잠자리를 할 생각을 하니 그저 황홀하기만 하였다. 술까지 마셨으니 정신까지 몽롱해졌다. 그 사이 도미 부인은 예쁜 몸종을 곱게 단장 시켜서 가짜 왕이 있는 별채로 들여보냈다. 몸종에게 당부하기를 방에 들어가서는 촛불을 꼭 끄라고 시켰다.
하루 밤을 지낸 가짜 왕은 궁궐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난밤에 있었던 일들을 왕에게 말했다. 왕은 도미를 불러들였다.
네가 그렇게 장담하던 너의 부인은 내가 보낸 가짜 왕과 잠자리를 같이 했다. 어떠냐?. 너는 내기에 졌다.
왕은 도미가 놀랄 줄 알았다. 그러나 도미는 오히려 차분했다.
믿기가 어렵습니다. 저의 아내는 비록 왕이라고 할 지라도 쉽게 몸을 맡길 그런 여자가 아닙니다.
그래, 네가 못 믿을 줄 알고 증표를 가져오게 했다.
왕은 가짜 왕에게 증표를 내보이라고 했다. 그 것은 여자의 개짐 이였다.
자 보아라, 이것이 너의 부인의 은밀한 곳을 가리는 개짐이다. 이것을 보고도 아니라고 할 테냐?.
왕은 개짐을 도미에게 건네주라고 시켰다. 개짐을 받아들고 침통해 하든 도미를 보면서 왕은 마냥 즐거워했다. 그러나 한참을 개짐을 들고 골몰하던 도미는 고개를 들고 왕에게 말했다.
이것은 제 아내의 것이 아닙니다. 제 아내는 월경에 접어들었습니다. 이렇게 깨끗한 개짐은 다른 여자의 것입니다.
왕은 어안이 벙벙했다. 다시 가짜 왕에게 지난밤에 있었던 일들을 빠짐없이 자세히 말하라고 했다. 가짜 왕은 별채로 들어갔던 일, 술에 취했던 일, 그리고 촛불을 끄고 잠자리를 같이 했던 일들을 세세히 설명하였다. 영악한 왕은 금새 속은 것을 알았다.
이런 발칙한 년이 있나, 나를 대신하였으면 왕이나 다를 바가 없거늘 왕을 속이다니.
가짜왕이 속은 것을 안 개루왕은 도미의 두 눈을 멀게 하고
화를 참지 못한 왕은 뒷짐을 지고 한참이나 왔다갔다 서성거렸다. 한참을 서성거리던 왕은 도미 앞에서 섰다. 그리고 소리쳤다.
부부의 몸과 마음은 하나라고 했다. 너의 부인의 죄는 네가 받아라. 이놈의 두 눈을 뽑아라. 그리고 이놈을 강에 띄워 보내라. 바다에 가서 고기밥이 되게. 그리고 당장 도미의 처도 잡아들여라.
도미는 두 눈이 뽑혔다. 그리고 작은 뗏목에 실려 한강에 띄워졌다. 그러나 뗏목은 흘러가지 않았다. 여울을 빙빙 돌기만 하였다. 빠른 물살에 닿으면 오히려 돌아서 상류 쪽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결국 뗏목은 맞은 편 아차산 기슭의 어귀에 걸려 움직이지 않았다. 아마도 사랑하는 아내가 있는 곳을 찾아왔던 모양이다.
잡혀온 도미부인은 왕의 유혹을 뿌리치고 도미와 함께 고구려로 간다.
도미 부인은 두 손을 묶인 채로 끌려왔다. 개루왕은 도미 부인을 보는 순간, 치밀었던 화가 모두 풀려버렸다. 도미 부인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묶인 포승을 풀어주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방으로 불러들여 잠자리를 하려고 서둘렀다. 도미 부인은 서두는 왕에게 나직이 말했다.
저는 남편을 잃었습니다. 혼자 살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대왕을 모시게 되었으니, 감히 어김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저는 월경 중입니다. 며칠 후 몸을 깨끗이 하고 다시 오겠습니다.
개루왕은 도미 부인의 처지를 알고 있었으므로 쾌히 승낙했다. 좋은 물건까지 듬뿍 주어서 보냈다. 도미 부인은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실려 있는 뗏목이 아차산 기슭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타고 건너온 배를 돌려보낸 도미 부인은 남편이 실려 있는 뗏목으로 갔다. 남편을 끌어안고 날이 저물도록 슬피 울었다.
밤은 칠흑처럼 캄캄해졌다. 도미 부인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때 작은 뗏목 하나가 아차산 어귀를 따라 소리 없이 떠내려가고 있었다. 도미 부부를 실은 뗏목이었다. 간혹 뗏목에 부딪치는 물결의 찰싹거리는 소리만이 떠내려가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뗏목은 한강을 벗어났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작은 섬들 사이를 빠져나와서 고구려 땅에 닿았다. 고구려 사람들은 도미 부부의 딱한 처지를 죄다 들었다. 이들을 불쌍하게 여긴 고구려 사람들은 집과 옷들을 내 주었다. 그래서 도미 부부는 고구려에서 서로 의지하면서 평생을 단란하게 보냈다고 한다.
이러한 도미 부부가 뗏목을 타고 떠난 아차산 기슭 어귀를 토막나루라고 한다.
토막은 뗏목을 빗댄 말이다. 토막나루는 평촌리와 합쳐지면서 구리시 토평리가 되었다. 지금의 광나루 위쪽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팔당대교가 있는 곳이 도미나루(渡米津)가 있었으므로, 이곳에서 도미부부가 뗏목을 타고 떠난 곳이라고 한다. 도미나루는 말 그대로 조선시대에 한강 동·서의 쌀(米)을 건넸던(渡) 나루(津)이다. 백제시대와는 관계가 없다. 또한 도미(都彌) 부부와는 한자에서 전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