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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 5]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전설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애틋한 사랑이야기
 
홍진기   기사입력  2002/04/10 [17:43]
우리 고장에는 아차산이 있고 이곳에는 사적 아차산성이 있다. 아차산성은 옛날옛적 백제, 고구려, 신라가 서로 한강을 차지하려고 싸웠던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였다. 그러나 이러한 아차산성에도 한 송이 백합꽃처럼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가 있었다. 이름하여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애틋한 사랑이야기이다. 이야기는 고구려 평원왕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구려의 서울인 평양 근처의 어느 산골에 온달과 나이 많은 그의 어머니가 살고 있었다. 온달은 산골에서 나뭇짐을 만들어 평양의 저잣거리에 내다 팔아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생김새가 우스웠고 어리석어 보여서 사람들은 그를 바보온달이라고 놀렸다. 그러나 바보온달은 성품이 착해서 이러한 놀림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른 나무꾼의 나뭇짐보다 듬성 큰 온달의 나뭇짐은 이내 팔렸고 온달은 바로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생선꾸러미를 사들고 산골로 돌아가곤 하였다. 저잣거리의 아이들이 놀리고 돌팔매를 하여도 빙그레 웃고 가는 것이었다. 이러한 바보온달은 저잣거리의 명물이 되었다.

말 안 듣는 계집아이에게는 바보온달에게 시집을 보내겠다고 약을 올리는 게 예사였다. 이러한 농거리는 고구려의 왕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고구려의 궁궐에는 왕이 사랑하는 어린 평강공주가 있었다. 얼마나 잘 울었는지 소문난 울보공주였다. 평강공주가 울 때마다 왕은 저잣거리의 바보온달에게 시집을 보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평강공주가 시집갈 나이가 되었다. 왕은 평강공주를 귀족집안인 고(高)씨 집안에 시집을 보내려고 하였다.

이때 평강공주는 아버지인 왕에게 항변하였다.
아버지께서는 한 나라의 왕이신데 어찌 한 입으로 두 말씀을 하십니까? 제가 어려서는 항상 바보온달에게 시집을 보내겠다고 하시더니 지금에 와서 어찌 다른 곳에 시집을 가라고 하십니까?
하고 당돌하게 말하였다. 왕은 어이가 없었지만 차분히 공주를 달래었다.
어려서 자주 우는 너를 달래기 위해 농담을 한 것이다
라고 말했지만 공주는 막무가내였다.

화가 난 왕은 자기의 딸인 평강공주를 궁궐 밖으로 내쫓았다. 다급해진 왕비가 값비싼 패물들을 주섬주섬 모아 평강공주에게 주어 떠나 보냈다. 평강공주는 그 길로 궁궐을 나와 바보온달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궁궐 밖을 나다녀 보지 않은 공주는 세간의 사정도 잘 모르고 길눈도 어두웠다. 더군다나 날이 어두워져서 깊은 산 속은 무섭기까지 했다.

얼마쯤 걸었을까? 가물거리는 불빛이 보였다. 찾아가 보니 바보 온달의 집이었다. 집이라고 하기엔 누추한 움막에서 늙은 어머니가 호롱불을 켜고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그 너머 골방에서는 바보온달이 쭈그리고 앉아서 이것저것 일할 도구들을 손질하고 있었다. 평강공주는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그러나 평강공주의 그윽한 향기는 이내 누군가가 찾아온 것을 모자에게 알게 해 주었다. 온달 모자가 향기 나는 곳을 쳐다보니 하늘나라의 선녀 같은 여인네가 사립문 앞에 서있는 것이 아닌가? 문득 요망한 귀신이 아닌가하여 모자는 놀랐지만 평강공주는 다가와 이곳까지 오게 된 사연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러나 모자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

온달의 어머니가 말하기를
여기는 공주님 같은 귀한 분이 오실 곳이 아닙니다. 또한 저의 아들은 저잣거리에서 바보라고 놀림을 받는 미천한 것입니다. 공주님의 말씀은 농담으로 듣겠습니다. 공주님과의 만남으로 큰 화가 우리 모자에게 미칠까 두렵습니다. 어서 이곳을 떠나 주십시오
하며 간곡하게 부탁하였다. 할 수 없이 평강공주는 날이 어두웠으니 하루 밤만 여기서 묵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결국 평강공주는 바보온달의 어머니와 같이 하루 밤을 보내게 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난 평강공주는 집안 밖 일을 모두 마쳤다. 하지 않던 일이라 힘이 들었지만 쉬지 않고 아침상까지 차렸다.

인기척에 눈을 뜬 모자는 어안이 벙벙했다. 귀신이 요술을 부린 것처럼 집안이 바뀌어져 있었다. 온달의 어머니가 평강공주에게 어찌된 영문인가 물었더니 궁궐을 나올 때 가져온 물건을 필요한 곳에 놓아두었을 뿐이라고 공손히 대답했다. 그리고 여러 날이 지나도록 공주는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머물렀다. 마침내 공주의 고집을 꺾을 수 없음을 깨달은 모자는 공주와 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강공주는 바보온달에게 패물을 하나 주면서 저잣거리에 가서 얼마만큼의 돈을 받고 팔아 오라고 시켰다. 바보온달은 생전처음 보는 물건이라 신기하기도 하였지만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을지 의아해했다. 그러나 저잣거리의 장사치는 두말 않고 그 많은 돈을 내 주었다. 평강공주는 그 돈으로 살만한 집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다시 패물하나를 내주면서 팔아오라고 하였다. 이번에는 판돈을 가져오지 말고 나라에서 내다 파는 비루한 말을 하나 사오라고 시켰다. 말을 고를 때에는 비루 하지만 골격이 좋고 나이가 어린 말을 사오라고 시켰다. 평강공주는 바보 온달이 타고 난 무인(武人) 기질이 있음을 알고 말을 타고 무술을 배우게 하였다. 그리고 밤이면 글공부도 시켰다. 바보 온달은 세월이 갈수록 의젓한 장부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구려에 사냥대회가 열렸다. 고구려의 사냥대회는 과거 시험과 같은 것이었다. 온달은 맨 먼저 말을 달렸고 많은 짐승을 잡았다. 단연 사냥대회의 우승자는 온달이었다. 온달이 자기의 사위인 것을 안 왕은 무척 기뻤다. 지난날의 허물을 용서하고 평강공주도 불러들였다. 온달은 고구려의 장수가 된 것이다.

영양왕 때, 고구려는 북쪽 오랑캐의 노략질이 끊이질 않았다. 왕의 명령을 받은 온달장군은 그 많은 오랑캐를 정벌하여 나라를 편안하게 하였다. 자신을 얻은 온달 장군은 광개토왕이 점령하였던 남쪽의 땅을 다시 찾도록 출정할 것을 왕에게 간청하였다. 온달장군은 떠나면서 신라에게 빼앗긴 한강이북의 땅을 찾지 못하면 죽어서도 돌아오지 않겠다고 자신에게 굳게 맹세하였다.

한강 하류의 아차산성에 이른 온달장군은 앞장서서 신라군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신라군은 아차산성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하여 고구려군의 공격을 막았다. 용맹스런 온달장군의 공격으로 아차산이 함락될 즈음 신라의 진평왕은 남한강의 물줄기를 따라 일만 여 명의 구원군을 이끌고 아차산성에 당도하였다. 공격에 지친 고구려군에게 구원군은 큰 타격이었으며 밀리는 고구려군에게 소나기 같은 화살이 날아들었다. 그중 하나가 온달장군의 가슴을 맞추고 온달 장군은 애석하게 숨을 거두고 말았다.


아차산에 있는 온달장군 주먹바위.(대성암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진달래샘이 있으며 근방에 주먹바위가 있다. 온달장군은 한강이북의 땅을 되찾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출전하였으며 죽어서도 주먹을 굳게 쥔채 죽었다 한다. 맞은편에 평강공주가 온달장군을 끌어안고 통곡하는 바위가 있다.)



후퇴한 고구려 군은 온달장군의 시신을 관에 모셔 평양으로 옮기려고 하였으나 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정말 온달장군의 의지가 죽어서도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은 고구려의 서울인 평양에 알려졌다. 평강공주는 죽음을 무릅쓰고 전쟁터인 아차산성으로 내달아 왔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 온달장군의 관을 어루만지며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뜻입니다. 사랑하는 제가 왔으니 어서 돌아가십시다.
라고 말했다. 평강공주의 애틋한 목소리를 들었는지 온달장군의 관은 움직였다. 평강공주는 온달장군의 관을 싣고 평양으로 돌아와서 양지바른 곳에 묻었다고 한다.

귀하고 천한 신분을 뛰어넘은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사랑이야기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전설이 전해지는 아차산 자락에는 온달장군의 우직한 의지가 바위가 되어 남아 있다. 죽는 순간까지도 물러서지 말라고 주먹을 불끈 쥔 온달장군의 주먹바위가 그렇다. 또한 사랑하는 온달장군의 시신을 끌어안고 절규하는 평강공주의 통곡바위가 있다. 죽음을 넘어선 두 사람의 사랑의 발자취는 곳곳에서 온달의 이름으로도 남겨져 있어 아차산의 메아리가 되고 있다.


아차산에 있는 평강공주 통곡의 바위. (대성암 남쪽 주먹바위 맞은편에 있으며 전사한 온달장군을 평강공주가 끌어안고 통곡하는 모양이라 한다. 이 바위는 주먹바위와 함께 향토사학자인 김민수 선생이 전설에 근거하여 발견하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광진구의 향토사학자인 김민수 선생이 연길원,(84세 중곡2동) 김갑만(1906∼1982년 광장동) 어르신들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를 재구성 한 것으로 지난해 2월 [디지털 광진]에 한번 연재되었던 전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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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4/10 [17:43]   ⓒ 디지털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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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29 [12:38] 수정 | 삭제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도티 2018/04/29 [12:37] 수정 | 삭제
  • 바보온달은 바보고 평강공주는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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