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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수집가
피터 레이놀즈·글.그림 / 문학동네 / 어린이책시민연대 정동희
 
디지털광진   기사입력  2018/11/22 [17:33]

 바람을 느끼듯 만족스러운 표정의 아이는 단어들이 적힌 여러 장의 종이를 날려 보낸다. 갖가지 단어들이 적힌 종이들은 흩어져 날아가고, 하늘 위로 손을 뻗은 아이는 무척이나 행복해 보인다. 표지를 넘긴 면지에는 바람에 나부끼듯 단어가 적힌 종이가 파랑새와 어울려 날아간다. 그리고 빼곡하게 쌓여있는 수십 장의 단어들이 우릴 반긴다. 암적색, 목재, 응석받이, 평등, 유산, 달콤함, 소스라치다, 기념일, 첨탑, 용과…….

 

▲ 단어수집가     © 디지털광진

단어수집가! 제롬은 단어를 수집한다. 내가 초등학교 때는 우표나 기념주화를 수집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집에 놀러 가면 자신이 모은 두꺼운 우표앨범을 몇 권씩 보여주던 그 친구의 뿌듯한 얼굴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친구에게 우표는 무엇이었을까? 무언가를 모은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제롬은 왠지 관심이 가는 단어, 특이하고 눈길이 가는 단어, 문장 속에서 톡 튀어나올 듯 한 단어를 모은다. 친구와 이야기하다가도 책을 보다가도 또 지나가다가도 펜을 들어 단어를 모은다. 단어들은 마법 같다.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말, 노래 같은 단어, 또 무슨 뜻인지 통 모를 낱말이지만 소리 내어 말하면 근사한 단어, 저절로 그려지는 단어를 모은다. 제롬에게서 단어는 정말 새롭고 신기한 자신만의 것, 그 이상인 것이다!

 

제롬의 낱말책은 나날이 두툼해졌다. 흩어져 있는 것들은 하나로 모으고 분류하면서 제롬은 발을 동동 구른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할 때의 표정은 누구보다 더 즐겁다.

 

으앗! 낱말책을 옮기는 도중 제롬은 넘어진다. 쌓여있던 많은 낱말책은 모두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다. 헛된 옆에 구름, 파랑 옆에 초콜릿, 슬픔 옆에 꿈. 어울릴 듯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 나란히 있으리라 상상치 못했던 단어들. 제롬의 단어는 새롭게 다가왔고 그 단어의 조합은 또 다른 것으로 태어나는 듯했다. 단어들은 간단해도 힘이 셌고 아름다운 조화를 만들어 냈다. 제롬은 그 단어들로 시를 썼고 그 시로 노래를 만들어 모두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단어의 힘은 이제 제롬만의 기쁨이 아니다.

 

단어를 모으며 충분히 행복했던 제롬!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어느 날, 제롬은 자신만의 것이었던 단어들을 모두 꾸려 높은 산에서 날려 보낸다.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이다. 골짜기마다 팔락 팔락 나부끼는 단어들! 어떤 사람에겐 영광이란 단어가, 어떤 사람에겐 희망이라는 단어가, 그 사람의 마음에, 이야기에 파고드는 듯하다. 이제 그 단어들은 꿈꾸는 이들의 것이다. 그 순간 제롬이 느끼는 행복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이 세상에 없다.

 

책을 읽고 생각해보니 반복되는 일상에서 내가 사용하는 단어들은 고작 몇 가지 안 되는 것 같다. 책에 나오는 단어들은 나에게 생소한 듯싶으면서도 어쩌면 눈에 익은 익숙한 단어들이다. 하지만 그것이 기분이 좋아지고 노래가 그려지며 간단해도 힘이 되는지 알면서도 막상 사용하지 않을 때도 많았다. 조금은 무심히, 건조하게 살았던 거 같다. 가깝고 소중한 사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힘이 되는 말 한마디, 공감하는 말 한마디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그동안 못되었던 것도 후회가 된다. 말과 글의 소중함, 또 그것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하면서 느끼는 뿌듯함을 오늘, 이 작은 수집가에게서 배운다.

 

 글을 써주신 정동희 님은 어린이책시민연대 광진지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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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1/22 [17:33]   ⓒ 디지털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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