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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릭
레오 리오니 그림∙글 / 시공주니어 / 어린이책시민연대 주채영
 
디지털광진
 

외할머니 댁에 가면 책장에 그림책이 몇 권 있었는데, 그중 <잠잠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었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들쥐들이 나왔고, 눈이 반쯤 감긴 게을러 보이는 들쥐 잠잠이가 주인공이었다. 그 책은 어린 나에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줄거리가 아니었는데, 잠잠이가 한겨울에 친구들에게 색깔을 이야기해주는 장면은 내 마음에 선명하게 이미지화되어 있었다.

 

▲ 프레드릭     © 디지털광진

들쥐들의 보금자리인 바위 위로 잠잠이가 환하고 따뜻한 색감들을 아주 환상적으로 펼쳐내고 있는 장면이다. 지금 확인해보니 실제 책에서는 내 기억만큼의 느낌이 아니다. 그런데도 선명한 이미지가 새겨진 이유는 뭘까? 화려한 색도 없고, 특별한 사건도 없고, 표정 변화도 거의 없는 들쥐들이 나오는 책 속에서 그나마 제일 인상적인 장면이었을 수도 있겠다. 아니면 혼자 일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한다는 잠잠이가 친구들에게 이해받지 못할까 봐 신경 쓰였는데, 마침내 보여준 잠잠이의 예술적인 능력에 감탄했을 수도 있겠다.

 

지금은 <프레드릭>이라는 원어로 출판되었다.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프레드릭, 그 녀석은 멋졌다. 프레드릭 곁에 있는 들쥐 친구들도 너무나도 멋있었다.

 

프레드릭이 햇살을 보내준다고 하면 들쥐들은 금빛 햇살이 퍼지면서 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프레드릭이 덩굴꽃과 밀짚, 양귀비꽃 이야기를 들려주면 들쥐들은 마음으로 색깔들을 또렷하게 볼 수 있다. 프레드릭이 이야기를 해주면 들쥐들은 감탄하며 프레드릭, 넌 시인이야!”라고 말한다. 그러면 프레드릭은 수줍게 나도 알아.”라고 대답한다. “나도 알아.”라고 말하다니. 프레드릭, 멋진걸!

 

프레드릭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고 꾸준히 준비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며 스스로를 인정하는 녀석이다. “나도 알아~”라는 말에 담긴 자신감과 충만함에서 이 녀석의 멋짐이 폭발한다.

 

들쥐들의 공동체는 옥수수와 나무 열매를 모으며 열심히 겨울을 대비했다. 단 한 마리 프레드릭만 빼고 말이다. “프레드릭, 넌 왜 일을 안 하니?”라고 들쥐들이 묻는다. “나도 일하고 있어. 햇살을 모으는 중이야.”라고 프레드릭이 대답한다. “프레드릭, 지금은 뭐해?”라고 들쥐들이 또다시 물어보면 프레드릭은 색깔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조는 듯 보이는 프레드릭에게 너 꿈꾸고 있지?”라고 말하면 아니야. 난 지금 이야기를 모으고 있어.”라고 솔직하게 대답한다. 들쥐 친구들은 프레드릭이 하는 일을 지켜봐 주었다. 중요한 건, 그냥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다른 모습에 관심을 가지고 프레드릭에게 물어봐 주는 것이다. 물어보고, 프레드릭의 대답을 기억하고, 프레드릭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감탄할 수 있는 친구들이다. 들쥐들은 왜 너만 일을 안 하는지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궁금하여 물어본다. 같이 일해야 하지 않겠냐며, 왜 너만 다른 것이냐며 다그치지 않는다. 그래서 프레드릭은 자신의 일에 더 집중하여 혹독한 겨울에 멋진 시인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나의 자연스러운 모습, 나의 능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공동체, 나에게 귀 기울여주는 공동체, 나를 기억해주고 불러주는 공동체가 시인 프레드릭을 만들었고, 겨울을 함께 즐기게 하였다.

 

생산성 중심의 경제적 기준으로 경쟁하여 줄 세우기 하는 사회라면 프레드릭은 게으름뱅이라는 오명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물질적인 것으로 가치 판단하는 사회에서는 프레드릭의 공동체를 구현하기 어렵다. 자신의 노력이나 능력을 경제적인 잣대로만 평가하는 사람들은 자신과는 다른 기준과 다른 모습에 관심을 가지고 인정할 여유가 없다. 자신의 사회 경제적 지위를 안정적으로 보장받기 위해 타인의 능력과 정보가 필요할 뿐이다. 생존에 필요한 직업을 찾기 위해 스펙을 쌓는 데 급급해하는 지금의 현실을 넘어 자연스럽게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기본적인 생존권이 보장된 공동체를 꿈꾼다. 어떤 틀에 끼워 맞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가족, 학교, 마을 공동체를 꿈꾼다. 함께 그림책을 공유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도 자신만의 색깔을 찾고 햇살과 이야기들을 모으며 우리가 꿈꾸는 사회를 구체화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함께 더 많은 프레드릭들의 다양한 재능에 감탄하며,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삶의 의미들을 찾아내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나도 언젠가 나를 알아봐 주는 누군가를 만나면 나도 알아! 내가 그렇게 되고 싶었거든~.”이라고 말하는 멋진 순간이 오길 기대한다.

 

 글을 써주신 주채영 님은 어린이책시민연대 광진지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기사입력: 2018/09/21 [16:50]  최종편집: ⓒ 디지털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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