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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해녀입니다.
글 고희영/ 그림 에바 알머슨/ 출판사 난다/ 어린이책시민연대 광진지회 김희진
 
디지털광진   기사입력  2018/02/23 [12:45]

 우연히 접한 해녀 이야기에 매료되어 제주도로 날아온 스페인의 화가와 제주에서 나고 자란 다큐멘터리 작가가 만나, 우리 한국인에게조차 낯선 제주 해녀에 대한 따뜻한 그림책을 만들었다. 평범한 것을 특별한 것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밝고 사랑스러운 그림을 그려온 화가와 누구보다 제주의 삶을 잘 아는 작가가 빚어내는 엄마 해녀와 할머니 해녀의 이야기가, 단순한 선과 부드러운 색채의 그,짧고 간결한 글과 함께 어린 딸의 눈과 목소리를 통해 진솔하게 전해진다.

 

▲ 엄마는 해녀입니다.     © 디지털광진

기지개를 켜며 하루를 시작하는 바다와 때론 집채보다 커지는 파도는, 물질하러 나간 엄마와 할머니를 기다려야 하는 아이에게 감시의 대상이자 두려움의 존재다. 무시무시한 곳이라면서 왜 바다에 들어가느냐고 아이가 묻자, 엄마는 매일 들여다봐도 안 보이는 게 바다의 마음이라고 답한다. 그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을 외면하지도, 또 다 아는 체도 않으며 매일 바다에 들어가 오랫동안 숨을 참고서 바다밭을 가꾸고 거두기를 반복하는 해녀들의 마음가짐은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지속되는 걸까 궁금해진다.

 

해녀들에게 바다는 생계를 이어가게 해주는 삶의 터전인 동시에, 하루라도 안 보면 마음속에 파도가 이는 듯 울렁증이 생길 만큼 자신과 분리할 수 없는 삶 자체이다. 평생 해녀로 살아온 할머니같이 되기 싫어서 도시로 떠났던 엄마는 도시의 소음에 귀가 아파오고 바다의 소식이 궁금해졌다고 한다. 다시 돌아와 파도 소리를 듣고 나서야 귓병이 나은 엄마에게 파도 소리는, 참았던 숨을 물 밖으로 나와 몰아쉬는 해녀들의 숨비소리처럼 살아있음을 확인시켜주는 생명의 소리였을 것이다.

 

도시의 여자들이 아침에 직장으로 나갈 채비를 하듯, 엄마와 할머니는 여러 가지 장비들을 하나하나 챙겨 바다에 들어가고 또 나온다. 엄마의 안전이 걱정되어 매일 바다에 나가 서 있는 아이, 잠시 바다에 떠서 쉬는 동안 붙잡는 테왁에 눈에 잘 띄는 꽃무늬 천을 씌워 아이의 마음을 안심시키는 엄마, 물속에서 목숨이 위험해진 엄마를 구해내느라 입술이 파래져 버린 할머니. 이 삼대의 여자들 간의 사랑과 보살핌은, 녹록치 않은 자연환경과 역사를 지닌 제주와 바다의 경험을 담고 있기에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편하고 안전하게 공기통을 쓰라고 권하는 어린 손녀에게 할머니는, 해녀들의 바다에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아름다운 약속을 들려준다. 해녀들이 바다를 바다밭이라 부르며 전복과 소라 씨를 뿌리고 어린 생명을 돌보며 저마다의 꽃밭처럼 아름답게 가꾼다는 것, 그리고 그 꽃밭에서 자기 숨만큼만 머물면서 바다가 주는 만큼만 가져오자는 것이 그 약속이다. 나에게 생명을 주고 살아가게 하는 것이 바로 자연이며, 그 속에서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말고 다른 생명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깨달음은 오랜 세월 해녀들이 바다에서 온전히 몸으로 깨친 지혜이기에 단순하지만 분명한 울림을 준다. 그러고 보니 젊은 엄마의 것보다 더 묵직하게 처져있는 할머니의 그물에 담긴 것은 다름 아닌 할머니의 경험과 지혜인 셈이다.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너라는 할머니 해녀의 당부는, 바로 지금이 이제껏 쉼 없이 달려오느라 가빠진 숨을 잠시 몰아쉬며 호오이 호오이 생명의 숨비소리를 낼 때임을 깨닫게 한다.

 

 글을 써주신 김희진 님은 어린이책시민연대 광진지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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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2/23 [12:45]   ⓒ 디지털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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