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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아이
사노요코 글, 그림/ 거북이북스/어린이책시민연대광진지회 주채영 회원
 
디지털광진   기사입력  2018/01/16 [19:06]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있었습니다.” 라는 첫 문장을 보며 책을 끌어당겨 집중하게 된다. <백만 번 산 고양이>라는 그림책의 작가이기도 한 사노 요코의 철학적 발상이 돋보였고,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지 관심이 생기게 하는 강렬한 문장이었다.

 

▲ 태어난 아이     © 디지털광진


우주 한가운데를 돌아다니는 아이는 별에 부딪혀도 아프지 않고 태양 가까이 가도 뜨겁지 않다
. 태어나지 않았으니 아무상관이 없단다. 어느 날 아이는 지구에서 산을 넘고 들을 걸어 다니며 사자를 만나고 모기에 물린다. 아이는 무섭지도 가렵지도 않다. 세상의 존재들이 아이에게 반응하며 뾰족하게 찌르고, 뜨겁고, 무섭게 하고, 물기도 하고, 냄새를 맡으며 핥아 보는 것으로 아이에게 반응하지만, 아이는 세상을 느끼지 못한다.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감각도 느끼지 못하고, 표정엔 변화가 없다.

 

태어나지 않았으니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고 말할 뿐이다. ‘태어나는 것만으로 세상의 모든 것과 관계가 생기는 우리의 본질과 아픔과 고통조차도, 태어난 존재로서만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마을에 가서 바쁜 사람들, 달리는 소방차, 경찰이 도둑을 쫓는 모습 등을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여자아이가 강아지에게 물리는 것을 보고도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무심히 보고만 있는 아이의 냉소적인 눈빛이 안타까울 뿐이다. 마을의 한 곳에 오도카니 앉아서 구경만 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존재감이 없는 유령처럼 외로워 보인다. 자신의 외로움과 인간 본성의 결핍을 스스로 알지 못한다. 강아지에게 물린 여자아이가 엄마에게 달려가 반창고를 붙이는 것을 보고서야 자신의 외로움을 인식하게 된다. 반창고를 붙이고 싶어진 아이는 마침내 태어난다.

 

아이는 반창고를 붙이고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빵 냄새를 맡으면 배가 고프고, 모기에 물리면 가렵고, 자신의 것을 타인에게 자랑도 한다. 아픔과 고통을 느끼고, 그것을 위로해 줄 사람을 찾고, 자신의 욕구를 채우길 원한다, 아이는 태어나는 건 피곤한 일이야.”라고 말하며 엄마의 입맞춤과 함께 푹 잠든다. 피곤해 하며 푹 잠드는 일도 축복받은 일로 느껴진다. 다음날 새로운 기운으로 일어난 아이는 즐겁게 놀고, 때론 아프기도 하고, 때론 화내기도 하며 피곤한 하루를 살아내겠지...

 

사노 요코는 인생이란 고단하고 상처투성이지만 서로 반창고를 붙여주고 위로하며 사는 것이라 말한다. 나도 간절히 나의 결핍과 나의 욕구와 나의 아픔을 인식하고 그 하나하나에 반창고를 붙여주고 싶다. 그런데 나의 모습을 제대로 보기가 쉽지 않다. 그저 살아지는 대로 살아가고 있는 나는, 세상일이 나와는 상관없다며 나서지 않고, 냉소적인 태도로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세상과 제대로 부딪히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처럼 구경만 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내 두려운 마음에 용기의 반창고를 붙이고 나와 타인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함께 아파하고 위로해가며 살아가는 온전한 존재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 나와 상관있는 것들에 관심가지고 적극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부딪혀가는 로 다시 태어났으면 한다. 힘들고 지치면 그림책 속 아이처럼 반창고 역할을 해 줄 가족들의 얼굴을 보며 따뜻한 저녁밥을 함께 먹고 서로 토닥이며 푹 잠들고 싶다. 그리고 매일 아침 다시 로 태어나 두려워하고, 상처받고, 싸우기도 하고, 투정도 부리고, 자랑도 하고, 웃기도 하고, 눈물도 흘리며 그렇게 피곤하게 살아가고 싶다.

 

진정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니까...    

 

 글을 써주신 주채영 님은 어린이책시민연대 광진지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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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1/16 [19:06]   ⓒ 디지털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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