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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 안녕
김동수 글, 그림 / 보림 /어린이책시민연대광진지회 유명자 회원
 
디지털광진
 

 이 책은 펼치자마자 면지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예상치 못한 강렬한 장면에 나도 모르게 헉! 하고 숨이 멎는다. 보통 면지는 그림책을 살짝 보여주거나 미리 소개하기 마련인데, 그런 말랑함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작가는 처음부터 곧장 로드킬당하는 동물의 사체를 우리 앞에 가져다 놓는다.

 

. 강아지가 트럭에 치여 죽었습니다.”

 

▲ 잘가, 안녕     ©디지털광진

첫 장면만큼이나 첫 문장 역시 힘이 세다. 벌렁거리는 가슴을 누르고 강아지를 찬찬히 바라보게 한다. 피범벅이 된 몸뚱이를 상상하면서 뜯어보는 게 아니다. 덩치 큰 트럭이 조금 전까지 폴짝거리던 강아지를 바퀴 밑으로 빨아들였음을 일깨우는 응시다. 어제도 오늘도 많은 동물이 이렇게 죽어갔겠지. 그리고 내일도로드킬의 그 순간, 바로 클라이맥스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작가의 과감함이 서늘하면서도 놀랍다. 깊은 고민과 아파하는 공감 속에서 길어 올린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캄캄한 밤, 그 길 위에는 손수레를 끄는 할머니가 있다. 강아지를 거두어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반짇고리를 꺼낸다. 강아지 말고도 차에 치여 죽은 동물들의 상처를 차례차례 꿰매고, 이어붙이고, 새로 만들어주느라 밤은 깊어 가는데, 할머니는 피곤하거나 지쳐 보이지 않는다. 첫 장면의 사고 목격자인 고양이도 할머니 집 둘레를 서성이며 함께 걱정한다. 할머니가 후유 한숨을 내뱉는 건 모든 동물을 다 보살피고 난 뒤다.

 

동물들은 할머니 손에서 죽기 이전 모습을 되찾는데, 차례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내 마음이 진정된다.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밤과 새벽의 가라앉은 색감은 나를 차분하게 다스리고, 오려붙인 효과로 표현한 각 동물과 할머니 그리고 바늘··가위 같은 바느질 도구들은 안도감을 준다. 방 안의 환한 연노랑 빛깔 역시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한 땀 한 땀 꿰맨 동물들의 상처 자국과 할머니의 입가 주름이 서로 닮아 있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평생의 상처와 치유 경험이 축적돼 있을 할머니의 입가 주름살. 그 모양이 상처 자국과 같은 것이 의미심장하다.

 

새벽이 되자 할머니는 화분에서 꽃 몇 송이를 꺾어 동물들을 손수레에 싣고 길을 떠난다. 오리가 마중 나온 걸 보니 어느덧 물가에 다다랐나 보다. 이제 조각배 안에는 뱀, 부엉이, 개구리, 강아지, 고라니, 족제비가 온전한 모습으로 누워 있고, 오리들은 연꽃의 배웅을 받으며 함께 조각배를 끈다. 멀리 수평선에서 신비로운 주황빛 기운의 해가 떠오르면 할머니는 조각배 상여를 향해 잘 가, 안녕.” 인사하면서 가만히 동물들을 떠나보낸다.

 

차에 치여 죽은 동물들은 처참하다. 작가가 표현한 그림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심하게 훼손된 그들의 몸은 우리가 동물과 공존하지 못하고 있음을 아프게 증명한다. 오래전부터 인간은 오직 자기 이익에 충실하게 자연을 지배하려 들었고, 동물을 인간보다 열등한 종으로 여기며 군림하려 했다. 인간의 오만함은 동물의 생존을 위협하고 결국 세상의 질서를 헤집어놓는다. 동물에 이롭지 않으면 인간에게도 이로울 리 없다. 인간과 동물의 공존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인간의 사적 삶의 영역을 차지하는 반려동물뿐 아니라 야생동물, 그리고 인간의 먹을거리로 사육되는 동물들 역시 고유한 영역과 삶의 방식을 보장받아야 한다.

 

손수레 할머니는 무슨 일을 하실까? 골목골목 다니며 폐지를 주워 살아가실까? 어쩌면 마을 곳곳을 다녀서 사람 때문에 죽어간 동물을 자주 만나는지도 모른다. 길바닥에 버려진 동물들을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러지 않았다. 죽은 동물도 여전히 생명이었다. 숨은 끊어졌으나 마지막 가는 길은 사람처럼 예의를 갖춰 들여다봐야 하는 소중한 목숨이었다. 불쌍하게 죽은 동물들을 집으로 데려와 장사 지낼 준비를 해주는 할머니. 납작해지고 토막 나고 여기저기 터진 동물들의 사체를 하나하나 본디 모습으로 되살리는 할머니의 바느질은 어떤 의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동물을 죽인 죗값을 할머니가 대신 치르는 것 같기도 하고, 할머니가 대신 용서를 구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할머니에게 동물은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그림책 읽어주러 갔을 때 다 읽고 나서 한 친구가 말했다. “정말 이렇게 해주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 사이사이에 분명 할머니 같은 사람이 있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할머니가 한 대로 동물을 거두기는 어렵겠지만, 누구든 그와 다르지 않은 마음으로 세상 모든 생명과 마주할 수 있다면!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주름살에는, 세상의 가장 낮은 길바닥에 버려진 죽은 동물에게조차 마지막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려는 할머니의 삶의 태도와 철학이 배어 있다. 할머니의 주름살은 누구도 사람보다 낮지 않다고, 어떤 것도 사람보다 못하지 않다고 조용히 말한다. 상처이자 혜안의 자국인 할머니의 주름살에서 배워야겠다.

 

 글을 써주신 유명자 님은 어린이책시민연대 광진지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기사입력: 2017/10/19 [16:12]  최종편집: ⓒ 디지털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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