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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번 산 고양이
사노 요코 글, 그림 / 비룡소/ 어린이책시민연대광진지회 김영희 회원
 
디지털광진
 

 

  백만 번이나 죽지 않은 고양이가 있었다. 백만 번이나 죽고 백만 번이나 살았던 것이다. 백만 명의 사람이 그 얼룩 고양이를 귀여워했고, 백만 명의 사람이 그 고양이가 죽었을 때 울었다. 그러나 얼룩 고양이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백만 번을 사는 동안 그는 항상 ‘누구’의 고양이로만 있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아니면 자기들의 방식대로 고양이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을 ‘아주 싫어했기’ 때문 일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고양이의 시선은 늘 그와 함께 있는 사람의 시선을 빗겨간다. 그를 사랑했다며 울던 사람들의 시선도 마찬가지다. 함께 있으나 같은 곳을 바라보려는 어떤 노력도 없이 각자의 감정에만 충실한 우리의 모습 같기도 하다.

 

▲ 100만 번 산 고양이     © 디지털광진


고양이는 단 한 번도 스스로 주체가 되어 자신의 삶을 살아보려고 노력 하지 않았단 말인가? 그것이 아니면 백만 번이나 살고 죽어야 할 만큼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일이 힘들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기 정체성을 찾기도 전에 다른 이의 삶 속에서 부분으로 산다면 자기만의 삶을 찾는 일은 더 요원해진다.

 

혹여 내가 내 아이들에게 하고 있는 사랑이라는 것이 이런 모습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당하게 네 삶의 주인으로 살라’고 말은 하면서 사실은 고양이를 사랑했던 사람들처럼 바구니에 넣어서, 배에 실어서, 상자에 넣어서, 껴안거나 등에 업고서 내가 볼 수 있는 곳에,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서 있기를 바라고 있는 건 아닌가싶다.

 

널 위해서, 널 사랑해서 그러는 거라고 아이에게 속삭이는 따뜻한 목소리 뒤에 숨겨진 부모의 욕망이 ‘죽는 것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넋두리처럼 내뱉는 얼룩고양이의 삶을 만들어 낸 것이다. 백만 번의 죽음을 감내하던 고양이의 모습과 내 아이들이 겹쳐 보이는 순간 나를 향한 분노와 슬픔이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백만 번이나 살고 백만 번이나 죽었지만 단 한 번도 산 적이 없는 얼룩고양이의 삶은 인간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바뀐다. 이제 처음으로 누구의 고양이도 아닌 자기만의 고양이가 된 그는 그런 자기를 무척 좋아한다. 자기를 좋아하는 감정에 충실했던 그는 스스로 그 삶을 즐긴다. 그렇게 싫어했던 과거의 이야기까지도 다른 고양이들에게 뻐기듯 들려주면서 아무것도 아니었던 백만 번의 삶과 죽음이 비로소 그의 삶의 시간 속에서 같이 살기 시작한다.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얼룩 고양이는 내가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간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즐거움인지를 보여 준다.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면 얼룩 고양이가 하얀 고양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기감정에 솔직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자기 자신보다도 더 사랑하는 존재가 생기고 더불어 오래오래 함께 살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다. 욕망은 삶을 꿈꾸게 하고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시켜준다.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나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벌판으로 나가는 내 아이들을 응원한다. 그리고 매 순간 내 울타리를 뛰어넘으려고 애 쓰는 나를 응원한다. 백만 번 이상의 삶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보다 더 사랑하는 무엇을 찾아 가며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살아내게 될 것을 믿는다.

 

딱 한 번의 울음을 위해, 다시 되살아나지 않을 삶을 위해, 누구의 고양이도 아닌 자신의고양이로 영원과 맞닿아 있는 오늘을 살아보기로 한다.


 
기사입력: 2017/08/17 [10:26]  최종편집: ⓒ 디지털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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