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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사탕
백희나 글, 그림 / 책읽는곰/ 어린이책시민연대광진지회 김희진 회원
 
디지털광진   기사입력  2017/06/16 [10:53]

 

  흐릿한 배경 속에서 한 남자아이가 신기한 무언가를 발견한 듯 잔뜩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분홍색 알사탕 하나를 높이 들어 바라보고 있다. 화면 가득 잡힌 얼굴 속 동그래진 눈과 벌어진 입이 아이의 궁금증을 고스란히 전달해주어 절로 그 알사탕으로 시선이 머물게 한다. 백희나의 신작 <알사탕>이다. 속표지의 텅 빈 놀이터와, 구슬치기를 위해 바닥에 그려놓은 세모 안 구슬들로부터 조금 떨어져 동그마니 놓여있는 한 개의 구슬은 아이의 “나는 혼자 논다”라는 첫마디가 담은 쓸쓸함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공을 차며 노는 아이들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혼자 구슬치기하던 아이는 새 구슬이 필요하다며 개를 끌고 자리를 떠난다. 아이가 문방구에서 발견한 것은 구슬이 아니라 크기도 모양도 색깔도 가지가지인 알사탕 한 봉지이다. 그런데 평범해 보이는 이 알사탕들은 실은 평소엔 듣지 못하던 누군가의 속마음을 들려주는 마법의 알사탕이다.

 

 

▲ 알사탕     ©디지털광진

자기 방에 돌아와 알사탕 한 알을 입에 넣은 아이는 갑자기 거실에 있던 낡은 소파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놀란 표정의 아이 못지않게 독자도 예상치 못했던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에 감탄하게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각각의 알사탕의 색과 무늬는 다음 목소리의 주인공에 대한 힌트가 되어, 아이도 독자도 나머지 5개의 알사탕이 누구의 이야기를 듣게 해줄지 기대하며 반복되는 패턴의 구조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패턴의 구조가 이 작품에서는 외적인 사건의 발생을 배제한 채 작가가 들려주고 보여주고 싶은 더 깊은 이야기로 들어가게 해주는 장치가 되어준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들려주는 진짜 속마음과 그 이야기를 듣고 난 아이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이해와 관계의 변화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아이는 아빠의 휴식을 위한 필수품이었던 소파의 고충도, 8년을 함께 살던 개 구슬이의 마음도 알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폭풍 잔소리를 하느라 아빠가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닫고, 돌아가신 할머니의 반가운 소식도 듣게 된다. 그리고 세상 밖에는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수많은 나뭇잎들과 같은 존재들이 있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 모든 걸 겪은 후 아이가 만나게 된 또 다른 아이는 마지막 남은 투명 사탕처럼 아무런 말이 없다. 이제 아이는 먼저 말을 걸기로 한다. “나랑 같이 놀래?” 라고. 그 말은 오랫동안 아이가 친구들에게 하고 싶었지만 먼저 할 용기가 나지 않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 용기는 아이가 우연히 알사탕의 비밀을 알게 되고나서, 다음 알사탕을 입에 넣어 누군가의 속마음을 들어보기로 선택한 그 순간부터 싹튼 게 아닐까. 그리고 그 각각의 마음을 듣고서 아이가 보여주는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의 순간순간에 그 용기도 함께 조금씩 커나갔으리라. 그래서 아이는 알사탕이 가져다 준 마법과 같은 일들을 통해 그들을 조금 더 이해하고 위로받으며 더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자연스레 무엇인가를 하고, 그리하여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 수 있게 성장한 것이다. 새롭게 친구가 된 둘이 각기 다른 것을 타며 같이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은, 각자의 생김과 생각이 달라도 서로에게 손 내밀 때 함께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그리고 뒤표지의 마지막 장면 속 아파트 입구에 나란히 놓여있는 보드와 킥보드는 그들이 이 순간, 그리고 앞으로 나눌 우정의 시간을 짐작하게 한다.

 

백희나는 다수의 전작들처럼 인형과 소품과 배경들을 직접 만들어 촬영하는 기법으로 독특한 자신만의 그림책을 만들었다. 특히 이 작품에서 눈에 띄는 것은,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그들의 목소리로 직접 이야기를 듣게 함으로써, 친숙함에 묻혀 그 생김새나 특징, 심지어 그 존재조차 쉽게 잊고 있던 주변의 일상의 것들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에 눈뜨고 다시금 그것들을 바라보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그들이 각각의 목소리를 내는 장면에서 그들이 똑바로 정면을 향하는 모습을 단독으로 한 컷에 담음으로써, 그들에게 살아있는 생명과 고유한 캐릭터를 부여하고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그들과의 관계의 가치와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켜준다. 화면의 구도와 빛과 인물의 표정 등을 통해 인물들의 섬세한 심리를 전하려 한 시도와, 가족관계를 일부러 모호하게 함으로써 다양한 가족형태의 현실을 고려한 것도 인상적이다. 기발한 상상력과, 정성과 노고가 짐작되는 기법과, 사람과 세상에 대한 작가의 더욱 깊어진 시선이, 마치 오묘한 색과 맛의 알사탕처럼 하나로 녹아들어 내안에 따뜻함과 묘한 행복의 달콤함을 퍼트린다.

 

 글을 써주신 김희진 님은 어린이책시민연대 광진지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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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6/16 [10:53]   ⓒ 디지털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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