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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긋 아기씨
윤지회 글,그림/ 사계절 / 어린이책시민연대광진지회 주채영
 
디지털광진   기사입력  2017/03/17 [14:25]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내가 진짜로 엄마가 되었을 때는 육아에 필요한 끝도 없는 일들을 반복하면서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은 막막한 길을 걸어가는 느낌이었다. 나를 키워준 엄마를 생각하며 내가 자식으로 원했던 부분에서 아쉬운 부분을 마음에 담아두고 나는 더 좋은 엄마가 되리라 결심했다. 하지만 엄마라는 이름이 감당해야 하는 너무나 많은 일들에 허우적거리며 나의 뜻대로 되지 않는 아기의 반응들에 좋은 엄마가 되리라는 결심은 좌절되기 일쑤였다. 이 그림책은 나의 미숙한 엄마로서의 모습을 담고 있고, 그런 나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주었다.

 

▲ 방긋 아기씨     © 디지털광진


<방긋 아기씨>의 그림은 작가의 정성이 묻어난다. 엄마가 아기를 대하 듯 그려진 느낌이다. 사물의 질감이나 디테일에 관심을 가지고 세세하게 표현했다. 벽돌로 만들어진 궁전, 흔들침대, 양탄자 문양, 커튼 주름, 마루 무늬까지 연필로 실감나게 그렸는데, 전체적으로 따뜻함이 느껴진다. 아기씨가 태어났을 때 왕비가 사는 궁전 앞에서 수많은 기자들이 취재를 하고, 사람들이 축하를 하고 있다. 이 장면은 내가 아기를 낳았을 때 축하해주던 친척들이나 친구들의 모습 속에서 처음으로 떠맡게 된 엄마역할에 어리둥절하던 내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무표정하지만 화색이 도는 아기씨의 얼굴과 걱정스럽고 긴장한 듯 보이는 왕비의 푸르죽죽한 얼굴은 대조를 이룬다. 왕비는 하루 종일 아기씨 생각만 하며, 아기씨를 위해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어 한다. 잠시도 아기씨 곁을 비우지 않고 아기씨를 웃게 만들 생각뿐이다. 왕비는 아기씨에게 값비싼 옷을 지어주고, 맛있는 요리상을 차려내고, 이름난 공연도 보여준다. 이렇게 왕비가 아기씨를 위해 수많은 노력들을 할 때, 아기씨는 말똥말똥 왕비만 바라볼 뿐이었다. 의사가 깃털을 갖다 대어 왕비가 웃음을 터트린 순간, 아기씨의 눈에 환하게 웃는 왕비가 비치고, 아기씨가 웃으며 손을 내밀면서 드디어 왕비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게 된다.

 

책 표지에는 무표정한 아기씨가 쇼윈도처럼 잘 꾸며진 창문너머 흔들침대에 누워있다. 책을 다 읽고 마지막 표지를 보면, 아기씨는 없고 침대만 덩그러니 있다. 아기씨는 어디로 간 걸까? 왕비가 아기씨를 꼬옥 안고 있는 마지막 장면을 보며 미소 짓게 될 테다. 아기씨만 걱정하며 불안해하던 왕비의 얼굴이 환하게 펴지면서 아기씨와 왕비가 마주보며 행복해하는 모습이 흐뭇하게 다가온다.

 

엄마가 되었을 때, 나는 아기를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재우는데 온 힘을 쏟을 뿐이었다. 참 힘든 시간이었다. 그때는 아기를 돌보는데 급급해서 내가 힘든지도, 외로운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나에게 부여된 ‘엄마역할’을 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아기의 불만과 짜증 섞인 표정이 나타나면 무엇인가 부족한 나의 모습에 어찌할 바 몰랐다. 아이와의 관계 속에서 오는 무한한 행복감과 친밀감을 원했지만 현실속의 나는 부족한 엄마라는 좌절감에 빠져, 아이와 눈 맞추며 교감할 수 있는 순간을 놓쳐버릴 때가 많았다. 좋은 엄마가 되리라는 부담감만 가지고 있던 나는 정작 중요했던 것을 내내 놓치고 있었다. 잘 먹이고 잘 입혀서 유능한 엄마임을 인정받기 위해 에너지를 쏟기보다 아이와 눈 맞춰 웃는 그 순간이 행복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내 아이의 훌륭한 면만을 보여주기 위해 신경 쓰기보다 내 아이에게 집중하는 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 그림책에는 부담감과 책임감에 지쳐 있었지만 아기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가득한 미숙한 나의 모습이 있다. 행복감과 친밀감에 목말라하며 나의 어렸을 적 과거만 원망스런 마음으로 떠올려보던 나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나의 엄마도 나를 무한히 사랑하는 사람이었다고 나에게 해주는 말이 있다.

 

작가는 “늘 마음속에 숙제처럼 남아있던 이야기를 이제 조심스럽게 꺼내 놓습니다. 엄마가 웃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한 딸이 엄마에게 드립니다.” 라고 말한다. 엄마와 마주 보고 많이 웃고 싶다. 내 아이와 눈 맞추며 많이 웃고 싶다.

 

왕비가 깃털로 인해 웃을 수 있는 여유를 만났듯이, 나도 그림책을 통해 내 마음을 살펴볼 여유가 생기나보다. 이 그림책은 내가 부족한 사람이지만 엄마로서 또 자식으로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작가 윤지회 선생님께 말하고 싶다. “늘 마음속에 걸려있던 이야기를 꺼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웃을 때 까지 기다려주지 못했다는 자식으로서 성숙하고 따뜻한 말씀을 들려 주셔서 큰 위로를 받습니다.”라고 말이다.

 

 글을 써주신 주채영 님은 어린이책시민연대 광진지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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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3/17 [14:25]   ⓒ 디지털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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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땡비 2017/03/18 [15:02] 수정 | 삭제
  •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느끼는 기쁨과 더불어 잘 키워야겠다는 막연한 부담감이 있었어요. 엄마가 즐거워야 아이도 즐겁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다는 것을 다시한 번 되새기게 됩니다. 글을 읽고 나서 그림책을 읽어보았습니다. 부모교육을 받은 느낌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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