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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분수
최경식 글, 그림 / 사계절 /어린이책시민연대광진지회 유명자 회원
 
디지털광진
 

 아파트 한가운데에 마른 분수가 있다. 여름인데도 물을 뿜지 못하는 분수 가까이 한 아이와 강아지가 다가온다. 아이는 비록 말라 있어도 비 오는 날이면 푸른 바다 냄새를 올려주는 분수가 너무 좋다. 날이 어둑해지도록 분수 곁을 맴도는 아이의 표정과 행동을 보라. 네 컷으로 나뉜 이 장면에서 선의 교차와 덧칠로 점차 짙게 표현한 배경은 시간에 따라 점점 고조되는 아이의 상상 놀이를 암시해주는 듯하다.

 

 

▲ 파란 분수     © 디지털광진

다음 장면에서는 정말로 분수대 둘레 지표면이 쩍쩍 갈라지고 갑자기 거대한 고래가 땅을 뚫고 솟아오른다. 아이와 강아지를 태운 고래는 도시의 저녁 하늘 위로 날아오르다 바닷물 속으로 첨벙 뛰어든다.

 

줄곧 흑백으로만 이어지던 그림에 드디어 색을 입은 ‘파란’ 바닷물이 차오르고, 고래와 아이와 강아지가 헤엄치는 바닷속 장면이 전체 화면으로 아름답게 펼쳐진다. 아이에게 향한 고래 눈동자는 더없이 다정하고, 행여 놓칠세라 고래 지느러미와 강아지 다리를 꼭 붙잡은 아이의 두 손은 사랑스럽다. 여기서 고래와 아이를 품은 ‘파란’바다는 이야기에 선명한 생명력을 불어 넣어준다.

 

얼마 후 고래는 물 위로 헤엄쳐 나가 분수대로 힘차게 물을 뿜는다. 오랫동안 물을 뿜지 못하던 분수대에서 마침내 물이 뿜어져 나온다. 곧이어 저마다 다른 모양의 분수대를 이고, 고래들이 하나둘 모여들더니 시원하게 물줄기를 뿜는다. 세상 곳곳에 있던 낡은 고래 분수들이 몰려와 아이를 반갑게 맞아주는 것 같다. “어서 와! 왜 이제 왔니? 같이 신나게 놀자!”

 

고래들이 뿜어주는 시원한 물줄기가 아이와 강아지를 하늘 높이 통통 튀어 오르게 한다. 하늘에 점점이 퍼진 물방울 덕분에 아무리 높이 올랐다가 떨어져도 두려움 없이 맘껏 유영할 것 같다. 함께 책 읽기 하던 아이가 이 장면을 보더니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어휴, 쟤네 좀 봐. 좋아서 죽겠나 봐.” 주인공과 강아지가 그려내는 흐뭇한 표정 그리고 공중에서 펼치는 자유로운 몸의 움직임 속에서, 아이들은 무한한 상상의 즐거움과 해방감을 어렵지 않게 읽어내는 듯했다. 그 즐거움이 높이 솟구칠수록 검은색 물방울 쿠션은 서서히 붉은색으로, 푸른색으로 물들어 간다. 아이의 행복감도 어느덧 무지갯빛으로 살아난다. 특히 이쯤에서 작가가 선택한 무수한 물방울은 폭신폭신하고 안정감 있는 소재지만, 그 편안함과 안정감 덕분에 아이들이 한계를 부수고 온전히 상상하게 하는 큰 힘이 되어준 것 같다.

 

아이가 경험한 경계 없는 즐거움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서 멈춘다. 빗줄기를 맞는 아이 얼굴에는 아쉬움이 없다. 놀고 싶은 대로 마음껏 놀아서일까. 숨 쉬지 않던 분수를 살아나게 하는, 생명의 유희를 즐겨본 자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이다. 아이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분수와 고래와 놀았던 흔적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이 책은 맨 처음과 맨 마지막에만 글이 있다. 그 사이는 그림으로만 이야기하는, 온전한 글 없는 그림책이다. 채색을 최소화하면서 점과 선의 펜 터치로, 흑백 위주로 표현한 그림책이다. 작가는 절제된 색과 표현, 간결한 재료 사용으로 곁가지 없이 상상의 세계에 집중하려는 듯하다. 하지만 상상으로 빠져드는 구성 자체는 어디서 본 것만 같다. 상상에서 빠져나올 때도 이미지의 자연스러운 겹침이나 연결로 이어지지 않아 좀 아쉽다고 할까. 또한 표지와 맨 앞뒤 그림을 빼고는 모든 그림을 틀 안에 넣어 어떤 사람은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물리적인 틀이 곧 이야기 공간을 가르는 경계는 아닐 것이다. 이 틀을 뛰어넘어 이야기를 확장하는 독자도 있을 테니 말이다.

 

어쨌거나 틀 없이 만나는 맨 마지막 장면은 가슴을 뚫어준다. 이야기가 끝나는 장면이지만, 보이지 않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새로 시작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파란 물이 떨어지는 옷을 훌러덩 벗어 던지고 달려간다. 욕실로 가는 거다. 욕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너무 잘 안다. 물속에 몸을 담그면 언제나 재밌는 놀이가 시작되니까. 오늘은 ‘파란’ 바다 냄새를 데리고 가니 더 재밌겠지.

 

요즘은 아이들이 놀 때조차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스스로 놀아야 하는데, 어른들이 대신 놀아준다. 책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이 책을 보는 아이들이 누가 됐건, 그런 간섭과 방해 없이 자기만의 분수대를 차지하고, 고래와 함께 파란 바닷속을 헤엄치면서, 아무런 제약 없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으면 좋겠다.

 

 글을 써주신 유명자 님은 어린이책시민연대 광진지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기사입력: 2016/11/15 [10:32]  최종편집: ⓒ 디지털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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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싯다 꾸꾸꾸꾸 16/11/25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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