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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 은 장 아 기
서정오 글, 한태희 그림 / 봄봄 / 어린이책시민연대광진지회 신혜선 회원
 
디지털광진   기사입력  2016/03/15 [11:15]

옛날 옛날에 가난한 부부가 딸 셋을 내리 낳았는데 먹을 게 없었다. 동네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첫째는 은그릇에 쌀죽을, 둘째는 놋그릇에 보리죽을, 셋째는 검은 나무그릇에 담아준 겨죽을 먹고 살아나서 은장아기, 놋장아기, 감은장아기라 이름 지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집안 형편이 점점 나아져 딸 삼형제가 부엌일 배울 무렵이 되니 큰 부자가 되었다.

 

▲ 감은장아기     © 디지털광진


하루는 부모님이 아이들을 불러 놓고 ‘누구 덕에 먹고 사느냐’고 물었다. 아버님, 어머님 덕이라고 한 두 언니와는 달리 ‘내 덕에 먹고 삽니다’라고 대답한 막내딸은 부모님의 노여움을 사 집에서 쫓겨난다. 홧김에 내쫓긴 했지만, 어머니는 안타까운 마음에 언니들을 차례로 내보내면서 밥이라도 먹고 가라고 전하라한다. 그러나 은장아기, 놋장아기는 어머니 아버지가 때리러 나오니 빨리 가라고 말한다. 감은장아기는 그 말이 거짓인 줄 알고서 큰언니에게 지네나 되라고, 작은언니에게 버섯이나 되라고 하며 가던 길을 재촉한다. 두 딸이 돌아오지 않자 어머니 아버지는 문밖으로 허둥지둥 달려 나가다가 문설주에 눈을 부딪쳐 장님이 되고 말았다.

 

그동안 키워준 부모 입장에서 보면 막내딸의 대답은 참 버르장머리 없는 맹랑한 대답으로 들릴 수 있다. 그렇지만 감은장아기는 자신의 삶은 스스로 찾아야 함을 알고, 아는 대로 말하고 행동한 것이다. 필요한 짐을 챙겨서 암소 등에 싣고 앞을 향하는 감은장아기의 당당한 모습이 앞표지 그림을 장식한 이유도 여기 있으리라. 일정 나이가 되면 더 이상 품안의 자식이 아닌, 독립해서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봐줘야 하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여기서 볼 수가 있다. 언제까지고 부모에 기대서 얻어먹고 살려하던 언니들은 결국 어딘가에 빌붙어 살아야만 하는 존재인 지네와 버섯이 된 것이고, 부모님은 막내딸의 독립의지를 눈뜨고도 알아보지 못했기에 장님이라 할 수 있다. 옛이야기 속에 숨은 뜻을 헤아려 보면 그 이치가 딱 맞아 떨어져 더 재미있다.

 

길 떠난 감은장아기는 볼품없는 움막에서 마퉁이 아들 삼형제와 살고 있는 할머니에게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한다. ‘지나가는 나그네인데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합니다.’ 라는 말은 옛이야기 속에서 남성들이 주로 했다. 내가 이 책을 읽어주는 것을 듣고 있던 한 아이가 나그네는 남자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감은장아기는 오늘이, 바리데기와 더불어 몇 안 되는 길 떠나는 주체적인 여성 중 한명이다.

 

할머니의 움막에서 만난 큰아들, 둘째아들은 감은장아기와 암소를 천대하고, 자신들만 아는 이기적인 모습으로 두 언니를 연상케 한다. 반면 막내아들은 감은장아기를 귀한 손님으로 대한다. 어머니께 효도하고, 매사 감사하며,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지녔다. 감은장아기는 막내아들이 자신의 인연임을 알고 바로 신랑감으로 택해 결혼한다. 감은장아기가 막내아들과 함께 복 받고 행복하게 잘 살게 된 것은 그녀의 적극적인 삶의 태도에서 오는 것이다.

 

감은장아기가 큰 부자가 되어 살다보니 아버지 어머니 생각이 났다. 두 분 틀림없이 거지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되어 남편과 의논 후 거지잔치를 벌인다. 많은 이들에게 베풂과 동시에 부모님도 찾는다. 그동안 부모님이 어떻게 지내셨는지는 일일이 열거할 필요도 없이 그림으로 한눈에 보여준다. 막내딸을 알아보고 눈이 번쩍 떠진 어머니 아버지는 그 이후로 감은장아기와 함께 행복하게 잘 살았다. ‘제 복에 산다’고 대답했던 막내딸의 본 모습을 이제야 제대로 보게 되었다는 뜻이리라.

 

감은장아기는 그 후로 천년만년 잘 살다가 사람의 운명을 다스리는 신이 되었다고 한다. 날 때부터 지지리 복도 없이 태어난 막내딸이 제 복을 스스로 찾은 건 우연이 아니다. 주저앉지 않고 떨쳐 일어나 삶을 개척한 결과이다. 서정오 선생님이 신화를 옛이야기로 쉽게 풀어 썼다. 은은한 색깔의 수채화 바탕에 그려진 그림자책은 감은장아기의 강인한 생명력과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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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3/15 [11:15]   ⓒ 디지털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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