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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야 한다. 두번 세번 그러다 보면 - -
 
홍진기   기사입력  2000/06/13 [19:57]

다른 바램은 없디 그저 생사라도 확인하고 편지라도 하면 원이 없갔어
1.4후퇴때 1주일만 고향을 떠나 피신한다는 것이 50여년이 되도록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홍현식 선생님(76세)을 만나보았다.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13일 10시경 노유동의 선생님댁을 방문했을 때 선생님은 한참 TV를 보고 계셨다.
TV에서는 북으로 향하는 김대중 대통령의 성남공항 환송식 장면이 반복해서 방송되고 있었다.
황해도 수안군 연암면 연굼리, 평양에서 백리쯤 떨어진 황해도와 평안도의 경계에 위치한 고향자랑을 부탁드렸다.
자랑이랄 것은 없고 그저 평범한 농촌이디. 근방에 금광이 있었어. 홀동광산과 남정광산이라고 선생님은 고령이지만 광산의 이름도 바로 대실 정도로 고향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잊지 않으셨고 간간히 사투리도 쓰셨다.

아버님은 그전에 돌아가셨고 고향에는 큰형님(현재나이로 82세)과 작은 형님(79세) 그리고 부인과 갓 3세된 딸(홍영애 . 현재 53세)이 있었는데 혼자만 남으로 내려왔다.
형님들은 아마 돌아가셨을 것이고 조카들이라도 살아있으면 -- 큰형님 아들이 홍성언이라고 64살쯤이고 둘째형님 아들이 홍성수라고 했는데--- 친어머님은 돌아가시고 새어머니가 계셨는데 아마 돌아가셨을 거야.
여기까지는 무덤덤하게 말씀하셨지만 헤어진 처와 자식을 묻는 질문에 눈물을 글썽이시며 담배를 피우시기 시작했다.
내가 스무살에 결혼해서 딸이 하나 있어. 이름은 홍영애라고 내가 내려올 때 세 살였는데--- 말끝을 흐리시며 다시 TV를 응시 하셨다.

마침 TV에서는 김대중대통령이 평양의 순안 비행장에 내려 김정일 위원장과 악수를 나누는 장면이 방송되고 있었다.
이번에는 다르긴 다르게 보여. 그동안 말뿐인 협상이 얼마나 많았던지--. 별로 기대는 하지 않아.내 생전에 가볼수 있겠어?. 그저 소식이라도, 편지라도 할수 있으면 좋갔어. 허긴 그것도 쉽지는 않을 것 같애. 하지만 만나야 되지. 한번,두번,세번 만나다 보면 된다. 통일도 되고 이산가족들도 만날 수 있디. 그동안 남북한의 만남에 많은 실망을 하신 뒤라 일부러 큰기대를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홍현식 선생님을 볼수 있었다.
한 5년 안에는 최소한 생사확인은 가능 할겁니다. 아니 고향에 갈수 있을겁니다
라는 기자의 말에 선생님은 조용히 웃으시며 고개를 흔드셨다. 그게 어디 쉽갔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법, 애써 기대를 않으시는 모습이 오히려 더욱 만나고 싶은 간절함을 느끼게 한다.

그래도 이 양반 북한소식만 나오면 TV에서 눈을 떼지 않아 , 특히 명절때나 이럴 때 많이 외로워 하기도 하시지 옆에 계시던 사모님( 박필호 69세) 께서 말을 거드신다.
사모님과는 35세 되던해에 주위사람들의 권유로 혼례를 올리셨고 슬하에 1녀2남을 두었다.
글쎄 이 양반이 고향에 가볼수 있으려나---

선생님은 북한의 정권에 불만이 많았다. 하지만 만약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남한을 방문한다면 어떻게 하시겠느냐는 질문에는 쉽게 대답을 해주셨다.
나가야디 환영하러 나가야디화해를 한다면야 환영 나가야디 이젠 과거의 적대감은 잊어야지 화해를 할려면
혈혈단신 홀로 남한땅에 내려와 안해본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하며 외롭게 50여년을 보내신 홍현식 선생님은 그래도 마지막에는 기대의 말씀을 하신다.
만났다는 것 자체가 뭐 잘될 것 같은데--죽기전에 형님들 생사확인이라도 했으면 좋갔어

다시 TV를 응시하시는 선생님을 보면서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 건강하세요, 술좀 적게드시고요. 건강하시면 꼭 고향에 갈 수 있으실 겁니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신다.



마침 TV에서는 김대통령이 순안비행장에 내리는 장면이
방송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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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0/06/13 [19:57]   ⓒ 디지털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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