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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지어 논문은 논리만 있고 실체가 없다”
9일 광진구의회-광진포럼 공동주최로 호사카유지 교수 초청 강연회
 
디지털광진   기사입력  2021/03/10 [23:00]

 광진구의회(의장 박삼례)와 광진포럼(광진주민연대, 건국대 산학협력단 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 디지털 광진, 광진시민허브)에서는 39일 오후 7시 동부여성발전센터 2층 대강당에서 세종대 호사카유지 교수를 초청해 램지어 교수 사태로 본 일제치하 위안부의 진실을 주제로 3월 정례포럼을 개최하였다. 호사카 교수는 강연에서 램지어의 논문은 논리만 있을 뿐 실체나 증거가 없다.”고 비판한 후 일본 극우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일왕을 국가원수로 만들고 일본군을 부활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 9일 광지포럼에서 강연하는 호사카 유지 교수  © 디지털광진


  

광진구의회와 광진포럼 호사카 유지 교수 초청 포럼 개회

광진구의회와 광진포럼이 공동으로 포럼을 개최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날 포럼에는 박삼례 의장 등 더불어민주당 소속 광진구의원들이 대부분 참여했으며, 광진포럼 소속 단체 대표자들과 회원들이 함께 했다.

 

포럼은 박삼례 의장과 광진주민연대 유혜경 상임대표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호사카 유지 교수의 강연과 청중과의 토론 순으로 진행되었으며, 포럼이 끝난 후 광진구의회는 램지어 교수를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광진포럼 소속 단체들은 미얀마의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퍼포먼스를 각각 진행하였다.

 

포럼에서 호사카 교수는 한국 위안부 운동의 역사를 시작으로 일본의 혐한 시위를 비롯한 위안부 역사 부정,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국의 상황, 미국과 국제사회의 움직임, 램지어 논문의 문제점, 일본 극우파들의 궁극적인 목표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했다.

 

▲ 호사카 유지 교수  © 디지털광진



 일본극우세력 고노담화와 무라야마 담화 무력화혐한세력 활발히 활동

호사카 교수는 한국의 위안부 진상규명 운동은 1991814일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사실을 최초로 공개 증언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김 할머니의 증언은 일본에도 큰 충격을 주었다. 1993년 일본에서는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이 위안부 분제에 관한 고노담화를 발표했다. 담화에는 위안소 설치와 관리, 여성들의 이송에 일본군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했고 여성들의 모집에 강제가 있었고 관헌 등이 직접 가담한 적도 있음을 인정했다. 아울러 위안부의 생활은 강제적인 상황하에서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점도 피력했다. 94년에는 사회당의 무라야마 총리가 담화를 발표해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공식 사과햇다. 하지만 이러한 담화에 일본 극우파가 반발했고 자민당 내에 역사검토위원회를 조직하여 일본의 전쟁은 아시아를 백인지배에서 해방시킨 전쟁이었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호사카 교수는 이후 일본의 극우세력은 고노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를 부정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당시 아베 신조 국회의원도 위안부 역사를 전면 부정하고 교과서에서도 관련내용을 모두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결국에는 97년도에 극우단체인 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일본회의가 창설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일본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은 좌익세력이며 과거를 반성하라는 자는 공산주의자라며 이는 자학사관이라 주장했다. 위안부 부정의 선봉에선 것은 우파 문화인, 정치인, 신사 관계자 등 4만 명의 회원을 거느린 일본회의로 정부에 우경화된 정책을 제시하는 비선실세였다. 현재 일본은 극우 아베에서 상대적으로 온건한 스가 정권으로 바뀌었지만 아베 정권 당시 장관이 50%가 남아 스가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고 지적했다.

 

계속해서 호사카 교수는 지난 98년 한일 양국은 파트너쉽을 체결하면서 일본정부는 일본이 가해자였고 한국이 피해자였음을 인정하는 내용의 사과를 공식 명기했다. 한국은 이것으로 한일간 화해가 현실화될 것으로 믿었다. 이후 한류가 일본에 상륙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2006년에 혐한조직인 재일 한국인의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이 결성되고 조직적인 혐한시위를 되풀이했다. 이들은 한국은 악이 아닌 적이다. 죽여야 한다. 홀로코스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 2010년부터는 혐한 시위에 대항하는 일본 양심세력들의 반 혐한 시위도 등장했으며 기타 다수의 반혐한 단체도 생겨났다. 하지만 일본에는 현재도 혐한서적이 넘쳐나고 있다. 혐한세력은 일본인구 12600만명의 1%라 해도 126만 명에 달한다. 반일종족주의는 40만부가 팔렸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적은 수다. 기본적으로 혐한서적은 7~80만부가 팔리고 있으며 한국인들이 쓴 책은 더욱 인기가 좋다. 돈을 벌려면 일본에 가서 혐한책을 내고 혐한 유튜버가 되면 된다.”며 일본의 혐한세력을 비판했다.

 

▲ 포럼 참가자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 디지털광진



 

일본극우, 일본에서는 위안부 부정, 한국친일파 지원, 미국입장도 바꾸려 해

호사카 교수는 일본에서는 아사히신문이 위안부 문제를 꾸준히 기사화했는데 2014년에 일본의 강제동원을 확실히 입증하지 못한 사례를 보도했다가 사과한 요시다, 세이지 증언 사건이 일어난 후 아사히신문은 크게 위축되었고 위상도 추락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를 기화로 아베정권은 고노담화를 한국과 일본의 정치가 타협한 산물이라며 강제연행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하면서 고노담화를 무력화시키기에 나섰고 무라야마 담화 계승도 중단했다. 일본군의 부활을 목표로 하는 이들에게 위안부 문제는 치명적인 사건으로 평화헌법개정에 악영향을 미치기에 진실을 왜곡하려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에서 발생한 정의연과 윤미향 의원 사건은 아사히신문 사건과 비슷한 사례로 이 사건으로 위안부 운동의 동력이 많이 약해졌다. 이러한 와중에 한국에는 신친일파가 등장해 반일종족주의라는 책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에 맞서 신친일파를 쓴 저는 극우세력들의 위협을 받기도 했고 반대시위에 시달리기도 했다. ”고 말했다.

 

이어 호사카 교수는 일본 극우세력들은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고 다음 타깃을 한국으로 했지만 현재까지는 실패하고 신친일파를 키우는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다. 유럽은 독일이 있어 불가능한 상황인 만큼 일본자본이 많이 들어간 미국과 유엔의 견해를 바꾸려 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1996년 유엔인권위는 크마라스와미 보고서를 수용하기로 결의하고 위안부는 성노예라는 결론을 내렸다. 1998년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인권위원회는 일본정부에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촉구하는 맥두걸 보고서를 채택한 바 있다. 미국에서도 하원에서 마이크 혼다 의원의 발의로 사죄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바이든 신임 대통령도 끔찍한 전쟁범죄다라고 언급한 바 있어 일본은 미국을 바꾸지 않으면 세계를 바꿀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이번 램지어 논문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다.”며 논문사태의 배경을 설명했다.

 

 

▲ 램지어 교수 규탄 퍼포먼스를 펼치는 광진구의회 민주당 의원들  © 디지털광진



   램지어 논문의 핵심은 논리만 있고 실체가 없다. 신친일파 목표는 돈” 

호사카 교수는 램지어 논문의 핵심은 여성과 모집업자가 계약을 맺었고 이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면서 자유로운 합의에 의한 계약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논문에 논리만 있고 실체가 없다. 역사적 사실을 제시하지 않았다. 1930년대 일본에서는 매춘이 합법적으로 운영됐다. 한국에는 매춘이 거의 없었고 한국여성을 해외의 위안소로 데려가려한 것이 위안부 사건이다. 한국이나 중국에서 폭력적인 방법으로 납치하기 어렵게 되니 상대방을 속여 데려가는 유괴라는 방법을 썼다. 아직까지 매춘계약서는 나온 게 없고 한 장 나와 있는 건 접대부 계약이다. 접대부는 매춘과 다르며 술자리에서 술을 따르고 하는 일이다. 전쟁터에서는 음주가 금지되어 있었다. 접대부 계약을 맺고 전쟁터에 간 여성들은 곧바로 매춘을 강요당했다. 일본 군인이 쓴 사례 중에 조선에서 온 학교 선생도 있었다. 이 선생은 도쿄에 간다는 거짓말에 속아 배를 탔다가 미얀마까지 끌려가 매춘을 강요당한 사례였다. 유사한 사례들은 일본군의 수기에 수도 없이 나온다. 하지만 매춘(창기)계약서는 존재하는 게 없다. 램지어 논문에는 논문으로 대응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저도 논문이 실리기로 한 학회지에 성매매 계약서가 없다는 내용을 써서 보냈고 꾸준히 편집장과 메일로 대화하면서 반박자료를 보내고 있고 전 세계 3~4천명의 학자들도 편집장에게 비판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하지만 학회지 편집장은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불쾌하다. 그래서 램지어에게 반론기회를 주기위해 학회지 게재를 연기한 것이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며 학회지 게재 유보는 일시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호사카 교수는 한국 신친일파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라고 비판한 후 일본의 궁극적인 목표는 헌법1조를 개정해 일왕을 국가원수로 만드는 것이다. 전시 최고책임자는 일본국왕으로 위안부 문제는 일왕의 책임이었다. 두 번째는 일본군의 부활이다. 일본은 대일본제국을 일본역사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때로 기억한다. 하지만 2차대전의 패배 이후 미국과는 싸우지 않고 협력하면서 전쟁하기를 원하고 있다. 영토를 침략하지는 못하지만 일본군의 부활은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위안부를 부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일본 우파의 현실이다.”며 결론을 맺었다.

 

▲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기원하는 퍼포먼스  © 디지털광진



 

위안부 보다는 성노예가 맞는 표현, 광진구 어딘가에 소녀상 건립됐으면.

이어진 청중들과의 대화에서 참가자들은 한국에 신친일파가 많은가. 그 분들의 활동을 제한할 수 없나. 램지어의 논문을 취소하게 할 수는 없나. 이용수 할머니가 이 문제를 국제재판소로 가자고 하는데 정부는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어떤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가. 위안부라는 표현이 적절한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가 문제해결을 어렵게 하는 건 아닌가. 앞으로 한국극우들은 어떻게 움직일 것으로 예상되나. 소년상 건립운동의 의미는 무엇인가등의 질문을 쏟아냈다.

 

호사카 교수는 질문에 대해 “5.18 망언금지법이 통과됐다. 역사왜곡금지법도 만들어져야 하는데 사실 이문제는 학문의 자유와 충돌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인권유린이 더 심각한 만큼 인권의 문제로 접근할 수 있다고 본다. 학회지 편집장의 부정적 인식도 문제다. 미국내 시위가 격화되고 있다. 논문은 논문으로 반박해야 하는데 정의연이 위축되어 관련 학자들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더 적극적으로 연구하신 분들이 나서야 한다. 사실 정부는 활동의 폭이 넓지 않다. 정의연이 위축되어 있는 만큼 공동의 협의체를 만들어 대응할 필요도 있다. 권위있는 국제적인 단체로 만들어야 한다. 한국정부가 주도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독도문제는 연구자도 많고 정부가 잘 대응하고 있어 문제가 없다. 위안부 문제는 연구자도 적고 그 동안 운동을 주도해 온 정의연도 잘 나서지 못한다. 정의연의 권위를 다시 세우는 작업도 중요하다. 저도 적극 도우려 한다. 위안부라는 명칭은 맞지 않는다. 성노예가 맞는데 이용수 할머니는 싫다고 했다. 성착취 피해자 등 다른 용어도 고민해 보자. 한일 위안부 합의에도 현 정부의 피해자 중심주의는 변하지 않았다. 문제의 근거도 달라진 것은 없다. 극우세력들에 대해서는 일본 극우의 지시가 있을 것이다. 소녀상은 광진구 어딘가에 만들어져야 한다.”고 답했다.

 

광진구의원들 램지어 규탄포럼 회원들 미얀마 민주주의지지퍼포먼스

호사카 교수의 강연이 끝난 후 광진구의회 의원들은 거짓논문 철회하라. 램지어를 파면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램지어 규탄 퍼포먼스를 벌였으며일본군 위안부를 매춘부로 규정한 하버드대 램지어 교수를 규탄한다. 램지어는 논문을 철회하고 대한민국에 사죄하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램지어 파면 구호를 외쳤다.

 

이어 포럼 소속단체 회원들과 의원들은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손가락 세 개를 펼치면서 쿠데타를 즉각 중단하라. 미얀마에 민주주의를이라고 적힌 손 피켓을 들고 미얀마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 인사말을 하는 박삼례 의장. 박 의장은 인사말에서 광진포럼과의 공동개최에 의미를 부여한 후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램지어 규탄의 목소리를 더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 디지털광진

 

▲ 광진주민연대 유혜경 상임대표는 인사말에서 "일본우익에 왜 반대해야 하는지, 억압에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지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디지털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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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3/10 [23:00]   ⓒ 디지털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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