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눈물바다
서현 글·그림 / 사계절 / 어린이책시민연대 광진지회 김영희
 
디지털광진   기사입력  2018/03/20 [10:00]

살다 보면 내 의지와 무관하게 온종일 일이 꼬이기만 하는 날이 있다. 울고 싶을 만큼 되는 일은 없고 그 서러움과 분노를 다스리기도 쉽지 않다. 누군가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괜찮다고 다독다독 위로해 준다면 좋겠지만, 곁을 내주는 사람도 없이 홀로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내야 할 때는 소리 내어 펑펑 울기도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깊은 바닥에서 올라온 슬픔이 눈물로 흘러내리고 나면 촘촘히 접혔던 마음의 주름살이 펴지고 시원해진다. 그런 후에야 <눈물바다>의 주인공처럼 후아!’ 하고 후련하게 숨을 내쉬고 웃을 수 있게 된다.  

 

▲ '눈물바다' 표지     ©디지털광진

그림책 <눈물바다>의 주인공은 하루 종일 되는 일 없이 이런저런 일로 시달리기만 한다. 시험을 보는데 아는 게 하나도 없고, 점심밥은 온통 채소뿐이어서 맛이 없다. 뿔 달린 애벌레가 되어 꾸역꾸역 식사를 하는 주인공의 일그러진 얼굴이 괴로운 마음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짝꿍이 바보라고 놀려서 화가 났는데 선생님께 야단맞는 건 주인공 몫이다. 억울해서 짝꿍이 먼저 놀렸다고 소리치지만 배추머리 선생님은 막무가내다.

 

주인공의 불운이 이제 다 끝났는가 싶더니 그게 아니다. 의기소침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꾸물꾸물 몰려오는 회색 구름이 비를 뿌린다. 우산을 가져다주는 사람도 없어서 상자를 쓰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공룡 두 마리가 싸우고 있다. 뚝뚝 떨어지는 물을 닦지도 못한 채 아이는 얼른 방으로 숨어든다. 미끄러지듯 문에 기댄 아이의 표정이 너무 지치고 슬퍼 보인다. 이렇게 힘들고 우울한데 밥맛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여자 공룡은 화풀이라도 하듯 저녁밥을 남겼다고 아이를 혼낸다.

 

이쯤 되면 아이의 속상한 마음이 내 마음이 되어서 아이를 응원하기 시작한다. 작은 침대 위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아이의 서럽고 답답한 감정에 공감하며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이불 속에 얼굴을 묻고 누워있는 아이를 달님이 부드럽게 껴안듯이 환히 비추고 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 그림책을 읽는 아이들도 같은 마음이 되어 위로의 눈빛을 보이겠구나 싶다. 뒤이어 훌쩍훌쩍 아이가 울기 시작하면 나도 서러워져 코끝이 매워진다. 그러면서 언제 이 아이처럼,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고 눈물이 바다가 되도록 울어본 적이 있나 생각해 본다. 어느새 슬퍼도 울면 안 되는, 제대로 울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버린 내가 아이의 작은 어깨에 손을 얹고 있다.

 

아이의 격한 울음이 만들어 놓은 눈물바다에 자기를 괴롭히던 모든 것이 떠다니는 장면은 유쾌하기 그지없다. 10쪽에 걸쳐 그려진 눈물바다 속 상황과 다양한 인물들은 해학적이다. 알 만한 동화 속 주인공들이 등장해서 또 다른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주고, 과장된 현실묘사는 깔깔거리며 웃게 만든다. 글 없이 계속 이어지는 그림은 엉뚱하고 기발한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숨은 그림을 찾듯이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이야기 나라는 점점 커질 수 있다.

 

침대를 뗏목 삼아 바다 위에서 놀고 있는 아이의 눈빛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언제 울었냐는 듯이 한바탕 신나게 논다. 감정의 넘나듦이 자유롭다. 그 과정에서 나를 누르고 있던 나쁜 감정들은 사라지고 즐거움만이 남는다. 내 마음을 몰라줬던 이들에 대한 미움도 통쾌하게 날려버린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교감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눈물바다에서 한바탕 자기감정을 풀어낸 아이는 차분해진다. 얄미웠던 짝꿍도, 밉고 야속한 선생님과 부모님도 보인다. 그제야 아이는 그들을 힘겹게 건져 올려 빨랫줄에 널어놓고 속삭이듯 말한다. ‘모두들 미안해요. 하지만시원하다. 후아!’

 

 글을 써주신 김영희 님은 어린이책시민연대 광진지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8/03/20 [10:00]   ⓒ 디지털광진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